`남향집` 선호는 언제부터?
발행일 2013.01.28. 00:00
[서울톡톡] "신석기 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어요?"
갑자기 자녀에게 이런 질문을 받는다면 어떻게 대답을 할까? 시간을 벌어볼 요량으로 "글쎄..."라고 말하며 잠시 눈을 감고 학교 역사 시간을 떠올려본다. 분명 배운 것은 같은데,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당혹스럽기만 하다. 그래도 작은 기억을 되살려 간신히 대답을 한다. "그땐 지금과 달라서 움집을 짓고, 돌로 도구를 만들어 강가에서 수렵 생활을 했단다."
대답은 했지만 무언가 좀 부실한 느낌이 들어 기분이 찜찜하다면 명쾌한 해답을 얻을 수 있는 이곳을 추천한다. 바로 강동구 암사동에 위치한 <암사 선사주거지>다. 강동구 암사동은 한강 변에 인접해 있는 곳이라 신석기 시대 사람들이 집터를 이루고 살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었던 곳이다.
이곳이 사람들에게 처음 발견된 것은 1925년 한강 대홍수를 겪으면서부터다. 토기편이 발견되면서 이후 1967년에 첫 조사를 했고, 1971년부터 4년 동안 네 차례에 걸친 대규모 발굴 조사를 벌였다. 그 결과 빗살무늬 토기, 돌도끼, 돌화살촉 등 다양한 유적과 집터 30여 곳이 발견되었다. 이후 1979년 국가사적 제267호로 지정됐다.
유적지 입구에서 가장 먼저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움집이다. 이곳은 신석기 시대 사람들의 주거 형태인 움집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공간이다. 실제 집터 유적 위에 약 2m 두께로 흙을 덮고 9채의 움집을 복구했는데, 주로 남쪽을 향했던 입구까지 그대로 재현해 놓았다. 선사 시대에도 '남향집'을 선호했구나 싶어 신기했다.
움집의 내부가 궁금해질 때쯤 '체험 움집'이 나타났다. 움집의 입구는 무척 낮았다. 성인 남성이 겨우 허리를 구부려야 들어갈 수 있을 정도다. 매서운 영하의 날씨 때문이었는지, 움집 내부는 생각보다 아늑했다. 내부에는 신석기 시대 생활상을 보여주는 모형이 전시되어 있는데, 4명의 가족이 음식을 만드는 그대로 재현해 놓았다. 화덕에 불을 피워 음식을 만들었고, 연기를 빼 주는 환기구도 보인다. 화덕 자리 옆에는 토기를 거꾸로 박아 저장 시설로 활용한 흔적도 있다.
움집 내부에서는 신석기 시대 생활상을 유추할 수 있는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는데, 식량을 가공하고 채집하는데 쓰였던 괭이, 돌낫, 갈판 등과 수렵에 사용된 석촉, 강가에서 고기를 잡을 때 쓰던 그물추 등이 대표적이다. 지금에 비해 물자가 부족했던 시대에도 도구를 만들어 활용했던 것을 보니 삶의 지혜를 발전시켜 온 인류의 역사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움집을 빠져 나와 발걸음을 조금만 옮기면 전시관을 만날 수 있다. 전시관은 제1전시관과 제2전시관으로 나누어져 있다. 제 1전시관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움집터 발굴 현장의 모형이 눈에 들어온다. 전시관에는 신석기 시대에 일상 용기로 사용된 다양한 무늬의 빗살무늬 토기와 사냥 때 사용했던 돌도끼, 돌화살, 낚시 바늘 등이 다양하게 전시돼 있다. 아울러 선사 시대의 역사를 보여주는 다양한 자료들과, 움집 모형, 선사시대의 돌무덤, 불 피우는 다양한 방법을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도록 만든 전시물도 있다.
전시물을 모두 둘러보았다면 이제 밖으로 나가보자. 나무 계단을 너머로 <선사 체험 마을>이 자리 잡고 있다. 체험의 시작은 '시간의 길'이라 이름 붙여진 동굴 속 역사 탐험이다. 다양한 영상 자료를 통해 과거부터 현대에 이르는 영상 자료를 관람하다 보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 여행을 한 기분마저 든다.
이곳은 선사 시대의 모습을 보다 손쉽게 체험할 수 있도록 조성된 공간이다. 매주 다양한 체험 행사가 열리는 곳으로 특히 여름철에는 어로 체험이나 불 피우기, 토기 만들기 등과 1박 2일 체험 코스도 준비되어 있어서 자녀들을 둔 학부모들에게 인기 만점이라고 한다. 실제로 작년 한 해 동안 모두 23만 명의 관람객이 이곳을 찾았는데, 이 같은 인기는 바로 짜임새 있게 준비된 체험 교실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한편에 마련된 체험관에 들어서니 가족들과 함께 온 어린이들의 체험이 진행 중이었다. 움집 만들기 체험. 비록 작은 모형 움집을 짓는 것이지만 재료를 손질하고 하나씩 붙여나가는 손길이 진지해 보였다. 이미 나무로 화살과 활 만들기 체험을 마친 어린이들은 직접 과녁을 겨냥하며 소중한 추억 만들기에 여념이 없었다.
며칠 전 암사 선사주거지 와 관련된 기쁜 소식을 들었다. 유네스코 세계 유산 등재 신청이 바로 그것이다. 6천여 년의 오랜 역사에 걸맞은 가치를 인정받고, 세계적인 문화유산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것이다. 앞으로 절차가 남아 있긴 하지만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등재되면 그 역사와 가치를 세계 곳곳에 알릴 수 있어 기대가 크다. 이미 확정된 한 가지는 한강과의 연결이다. 선사시대와 달리 현재 유적지는 도로가 생기면서 한강과는 단절되어 있다. 유적지와 한강변을 잇는 이 '암사 초록길 사업'이 올해 시작되면 선사 시대의 모습과 더 근접해질 것이고, 단절된 역사의 복원이라는 의미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6천 년 역사를 품은 암사 선사주거지
인터넷과 스마트폰 등 첨단 IT기술이 어우러진 발전된 시대를 살고 있지만 의식주를 해결해야 하는 삶의 본질은 선사 시대의 그것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오히려 필요한 만큼 자급자족하며 소박한 삶을 이어갔던 그 시절이 지금보다 훨씬 더 행복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무엇보다 이런 소중한 역사의 현장을 눈으로 보고 느낄 수 있는 곳이 서울에 있다는 것은 좋은 기회이자 축복이다.
■ 관람 정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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