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 얼마나 알고 계세요?

시민리포터 고태윤

발행일 2013.01.16. 00:00

수정일 2013.01.16. 00:00

조회 2,228

[서울톡톡] 광화문을 정면으로 눈앞에 두고 보았을 때 혜화동 고개로 넘어가는 우측 길목에 자리 잡고 있는 창덕궁은 조선왕조가 건재했던 당시에 법궁(法宮)인 경복궁에 이어 이궁(離宮)으로 창건되었지만, 임진왜란 이후 경복궁이 소실되면서 조선의 임금들이 실질적으로 거주하여 정궁의 역할을 해왔던 곳이다.

최근에는 일제에 의해 헐렸던 옛 규장각 건물 등이 복원되어 예전의 모습을 거의 되찾아 가고 있다. 지금은 전각의 배치와 자연의 조화가 어울려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주고 많은 외국 관광객들로부터 진정한 한국의 아름다움이란 평가를 받지만, 그 아름다움의 이면에는 조선왕조의 비애와 경술국치 이후 망국의 한과 설움, 그리고 대한민국 건국 이후 옛 조선왕조 일가의 마지막 숨결이 고스란히 간직된 곳으로 역사의 큰 물줄기를 담고 있다.

역사는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라 했다. 창덕궁을 단순한 문화유산으로 여겨 즐기는데 그치지 말고 역사와 문화가 어우러진 우리의 과거로써 둘러보기 위해 창덕궁 담겨 있는 구한말 조선왕조의 발자취와 건국 이후 마지막 숨결에 대해 찾아보기로 한다.

망국의 한이 서린 장소, 대조전(大造殿)

대조전은 창덕궁에서도 왕비의 침전이 있는 생활공간이었다. 그런데 대조전에 달린 부속 건물 중 흥복헌은 국권을 일제에 의해 피탈당하는 역사의 아픔이 서린 곳이다. 1910년 흥복헌에서는 어전회의가 개최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조선왕조의 마지막 어전회의가 되었고, 이후 일제는 우리의 국권을 피탈하여 나라가 없어지는 경술국치를 맞게 되었다.

조선왕조 일가가 여생을 마무리 한 곳, 낙선재

낙선재는 조선 24대 임금인 헌종이 지은 서재 겸 사랑채로 일반 사대부의 주거 형태를 궁궐 안에 지었다는 점이 특이하다. 창덕궁에서 유일하게 단청을 하지 않은 소박한 건물로 자연스런 멋과 함께 검소함을 중시했던 헌종의 성품이 느껴지는 곳이다. 헌종은 낙선재 건축 이후 그 옆에 석복헌과 수강재를 나란히 지어 자신의 후궁과 순조의 비인 대왕대비 순원왕후를 모셨는데, 낙선재와 수복헌이 바로 조선왕조의 마지막을 지켜본 비운의 인물들이 여생을 마무리 한 곳으로 사실상 조선왕조의 마지막을 함께 한 곳이다.

조선의 마지막 황후, 순정효황후

순정효황후는 조선의 마지막 황제 순종의 정비로 조선이 일제의 손에 피탈되는 역사적 현장을 지켜본 인물이다. 앞서 설명한 대로, 당시 흥복헌에서 개최된 마지막 어전회의 시 친일파가 한일합방을 수락하라고 순종을 압박하며 강요하자 이를 저지하고자 병풍 뒤에서 치마 속에 옥새(玉璽)를 감추고 내놓지 않았던 비운의 황비다. 이후 석복헌에 머물며 1966년까지 조선이 나라를 빼앗기고 일제가 패망하고 대한민국이 건국하는 역사의 흐름을 지켜보았다.

조선의 마지막 왕위 계승자 영친왕의 비, 이방자 여사

순종의 이복동생이자 고종의 막내아들인 영친왕은 순종 승하 후 이왕이 되어 형식적으로 조선의 왕위를 계승한 인물이다. 어릴 적 볼모로 일본에 건너가 일본 육사를 졸업하고 일본군 장성까지 지낸 비운의 인물인데 일제는 조선왕실과 일본 황실의 결합이라는 미명하에 영친왕과 일본 황실의 딸을 정략결혼 시켰다. 이에 영친왕과 결혼한 사람이 이방자 여사다.

그녀는 일본왕족 나시모토의 장녀로 영친왕과 결혼 후 일본에서 지내다가 영친왕의 국내 귀국이 허락된 1963년 영친왕과 함께 입국하여 여러 자선사업을 하면서 조선왕조의 유물 지키기 등 왕조의 마지막을 수습하는데 여생을 보냈으며 1989년까지 낙선재에서 지내다 사망하였다. 일본 왕족출신이면서 조선의 왕과 결혼한 그녀는 우리나라와 일본의 미묘한 역사적 운명의 산증인이라 할 수 있다.

고종의 금지옥엽, 덕혜옹주

몇 년 전 고종의 막내딸이자 마지막 공주인 덕혜옹주의 파란만장한 삶이 알려지며, 다양한 대중매체로 그녀의 일생이 소개되었는데 덕혜옹주가 마지막을 보낸 장소도 바로 낙선재이다. 덕혜옹주는 고종의 고명딸로 큰 사랑을 받았으나, 일제가 신교육을 명분으로 내세우며 일본으로 보냈고, 이후 대마도주의 아들과 강제로 결혼시켰다.

조선이 망한 것과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다 조발성치매증이란 병을 얻어 강제 이혼을 당해 버림받은 후, 수십 년간 병원에서 갇혀 지내다시피 했다. 대한민국 건국 후 귀국이 허락되었으며 귀국 후에도 차도 없이 도리어 병증이 심화되어 사람을 잘 알아보지 못할 정도였다고 한다. 비운의 덕혜옹주는 1989년 낙선재에서 일생을 마감하였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서울시민은 물론 외국 관광객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사랑을 받고 있는 창덕궁이지만, 우리의 아픈 역사적 사실도 함께 담고 있다. 날씨는 춥지만 창덕궁을 찾아 고요함 속에 우리 문화유산에 녹아 있는 잊지 못할 과거도 함께 느껴보는 것이 어떨지 권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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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덕혜옹주 #조선왕조 #영친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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