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물면 도시요, 나서면 대자연인 곳

시민리포터 김종성

Visit1,788 Date2012.12.07 00:00


[서울톡톡] 서울만큼 복 받은 도시가 또 있을까 싶다. 조금 걷거나 지하철, 버스를 타면 한 시간 안에 크고 작은 강과 산을 만날 수 있는 곳이 서울이다. 국립공원 북한산 외에 동서남북 42개의 산이 뼈대를 이루고 한강과 안양천 중랑천을 비롯해 36개의 하천이 서울의 핏줄을 만들고 있다. 머물면 도시요 나서면 대자연인 곳이 서울이라 할만하다. 하지만 빠르게 변화하는 도시는 우리들의 기억을 자꾸만 지워간다. 기억상실의 도시 서울… 서울에서 산다는 것은 무엇보다 잊어버리는 것, 그리고 그 망각에 익숙해지는 것을 뜻한다.


이 책 <서울은 깊다>(전우용 지음, 돌베게 펴냄)는 그런 점에서 먼저 도시의 인문학적 의미와 ‘서울’의 본뜻을 묻는 데서 출발한다. 신이 자연을 만들었다면 인간은 도시를 만들었다는 말에서 보듯 서울은 ‘높이 솟은 울’, 즉 신과 가장 가까운 도시, 가장 신성한 공간이고 정치와 문화와 예술의 중심지라는 뜻이다. 책의 저자가 서울의 역사와 문화, 사람을 들여다보자고 주장하는 중요한 이유가 되는 요소들이다.


서울이 세계의 다른 도시들과 구별되는 독특한 점은 바로 조선 초 서울의 틀을 구상한 정도전과 이방원의 경복궁 계획에서부터 드러난다. 여타의 오래된 중심도시들과 달리 서울에는 거대한 경기장이나 극장 등 스펙터클의 공간이 존재하지 않는다. 세간에 잘 알려진 정도전과 무학대사의 갈등에서 저자는 도시 서울에서 종교성을 탈색시키고자 했던 정도전의 뜻을 읽어낸다. 또 경복궁을 <주례>에 따른 철저한 공적 공간으로 계획한 정도전과 그 ‘공’을 왕의 사적 권위와 등치시키고자 했던 이방원의 갈등 역시 경복궁과 서울이라는 장소에 고스란히 그 흔적을 남기고 있다.


“정도전은 새 도시에서 ‘괴력난신'(怪力亂神)이 거처할 곳을 아예 없애버리려 했다. 정도전은 종묘와 사직, 궁궐과 관아, 저자와 민가, 학교와 사당만으로도 도시를 만들 수 있다고 믿었다. 세부 위치를 선정하는 문제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새 도시를 공적 건물과 공적 기관만으로 채우고자 했고, 왕에게조차도 예외를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 본문 가운데


저자는 바로 이런 공간에 아로새겨진 역사의 흔적, 무늬를 섬세히 짚어가며 그 구체적인 서사(徐事)를 되살려내는 것이 곧 도시연구의 본무(本務)라고 강조한다. 특히 서울을 다룰 때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근대적 공간으로서의 서울 ‘경성’이다.


‘종로, 전차’에서는 종로의 역사를 서울의 통신교통 수단의 변화(전차의 부설과 철거, 지하철의 부설 등)와 함께 살펴본다. 조선시대와 구한말을 거쳐 1960년대까지도 서울의 중심으로 기능했던 종로의 화려한 시절이 ‘전차 철거’와 함께 막을 내리는 쓸쓸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덕수궁 돌담길’에서는 고종의 도로 정비, 경운궁 정비와 관련된 일화가, ‘팔각정’에서는 오래 전부터 신성한 형상으로 여겨지던 ‘팔각’이 이승만 시대를 거치며 세속화된 사연 등이 펼쳐진다.


또 다산이 “이(里)가 귀한 이름이고 동(洞)은 천한 이름인데 지금은 풍속이 어그러져 사람들이 서울 지명을 모두 동으로 쓴다”고 했던 것에서 출발해 조선 초기 잘 다듬어져 있던 곧은길이 왜 구불구불한 작은 길, 막다른 뒷골목들로 바뀌었는지 생각해보게 한다.


이렇게 당시의 역사와 그로 인한 풍속과 습속의 변화를 연결짓는 서술은 `똥물, 똥개`, `등 따습고 배부른 삶`, `땅거지`, `무뢰배`, `촌뜨기`, `압구정과 석파정` 등의 장에서 흥미롭게 이어진다. 더불어 눈길을 머물게 하고 사료적 가치가 높은 옛 사진들이 함께 들어있어 흥미진진한 역사 소설을 읽는 것 같은 즐거움을 선사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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