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 잡았다`와 `황 잡았다`의 차이

시민리포터 오인철

Visit2,219 Date2012.11.20 00:00


[서울톡톡] 얼마전 서울 궁성의 사대문과 서울성곽 사대문의 홍예 천장 벽화를 찾아보았다. 이제 마지막으로 서울성곽 동서남북 중간에 있는 사소문의 홍예 천장 벽화에 대해 알아보기로 했다.


먼저 사대문과 사소문의 역할을 잠시 살펴보면 그 기능이 다르다. 숭례문은 도성의 정문으로 임금의 행차나 사신 왕래 때 이용하던 문이다. 단 일본의 사신은 광희문(남소문), 여진의 사신은 혜화문(동소문) 등 소문을 이용하였다고 한다. 이렇게 문의 격에 따라 이용도 다소 달랐는데, 서울성곽 사소문에는 어떤 벽화가 그려져 있을까.


혜화문(동소문)은 도성 동북 방향의 성문으로, 지금의 수유리을 거쳐 의정부·양주로 이어지는 동북쪽 관문 역할을 했다. 그런데 서울의 북대문인 숙정문을 폐쇄하고, 혜화문을 북문으로 부르기도 했다. 완공 당시는 홍화문이었는데 창경궁의 정문인 홍화문과 같아 혜화문으로 변경되었다.


혜화문의 홍예는 1939년 허물어져 1994년 조금 다른 곳에 지어졌는데, 그 천장 벽화를 보니 봉황이 그려져 있다. 전해오는 이야기로는 혜화문 주변에 새가 많아 새들의 왕인 봉황을 이용해 막으려고 했다고 한다. 성문을 지나갈 수는 없지만 홍예 천정벽화를 가까이서 올려 볼 수가 있다.


소의문(서소문)은 서대문과 남대문 사이 서소문동에 위치하였고 창건 당시는 소덕문이라고 했다. 광희문과 함께 시구문(시체를 내가는 문) 역할을 하였다. 서소문 밖에서 주로 사형이 집행됐다고 한다. 1914년 강제 철거되었고 지금은 주차장이 들어서 있는데, 화단에 작은 표석만 남아있어 홍예의 천장 벽화는 찾아볼 수가 없다.


광희문(남소문)은 도성이 완성될 당시 동남쪽에 건립되었으나 문루가 망가져 1975년 문을 남쪽으로 옮겨 복원했다. 이 역시 도성의 장례행렬이 통과하는 시구문으로 이용됐다. 광희문 홍예 천장에는 청룡과 황룡이 그려져있다. 동대문과 비슷한 위치로 용이 서로 마주보는 있으나 형상과 크기 등은 다르게 그려져 있다.



창의문(북소문)은 경복궁의 주산인 북악산의 서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1396년에 창건됐다. 조선시대에 이 일대를 자하동이라고 부른데서 성문도 자하문으로 더 알려져 있다. 창의문은 서울도성 사소문 중 온전하게 남아 있는 유일한 문이고, 또한 시민이 지나 갈 수 있는 유일한 문이기도 하다. 천장에는 봉황이 그려져 있다. 광화문 중앙 홍예 벽화와 유사하다. 이 지역에 지네가 많이 살고 있어 닭과 유사한 봉황을 그렸다는 이야기도 있다.



봉황은 수컷인 봉과 암컷인 황을 함께 이르는 말로 용과 학 사이에서 태어난 상상의 새이라고도 한다. 봉황은 음양오행에서 이야기하는 오덕을 가지고 있다. 머리가 푸른 것은 인(仁), 목이 흰 것은 의(義), 등이 붉은 것은 예(禮), 가슴이 검은 것은 지(智), 다리 아래가 누른 것은 신(信)을 상징한다고 한다.


‘봉(鳳) 잡았다’하면 좋은 일이고, ‘황(凰) 잡았다’하면 나쁜 일로 전해진 것은 봉황이 암수로 예전 남아선호사상의 풍조에서 나왔다는 이야기도 있다. 두 마리의 봉황이 그려진 것을 주작이라 하는데, 광화문의 중앙 홍예와 창의문, 혜화문에 그려져 있고, 인정전과 명정전 천장에서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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