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두막, 갤러리가 있는 도심 속 오아시스

시민기자 시민리포터 김종성

발행일 2012.10.25. 00:00

수정일 2012.10.25. 00:00

조회 2,712

[서울토톡] 책도 읽고 녹음 속에서 계절을 느끼며 정원을 산책할 수 있는 곳. 정독도서관은 단순히 책을 읽거나 빌리러 가는 곳이 아니다. 수도권 전철 3호선 안국역 1번 출구에서 내려 바로 오른쪽의 골목길로 들어서면 나타나는 북촌의 번잡하고 소란스러운 분위기를 지나 정독도서관의 언덕진 입구를 오르면 장소는 더 이상 대도시 서울이 아니다. 경기고등학교였던 당시 운동장은 도서관의 정원이 되어 도시의 소음을 흡수하고 혼란스러움을 걸러주는 필터가 되었다. 무성한 수초 사이를 흐르는 물이 자연스레 정화되는 것처럼 도심 한복판의 너른 정원은 대도시의 소란스러움을 잊게 해준다.

도서관 입구엔 웬 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다. 바로 서울교육박물관으로 학창시절의 아련한 추억 속으로의 시간여행을 떠날 수 있는 곳이다. 박물관 입구, 선생님과 아이들 인형이 마주 인사하는 모습은 사람들에게 흐뭇한 미소를 자아내게 한다. 박물관으로 들어서면 그 미소는 개구진 옛 아이들의 모습과 아기자기한 전시물 덕에 함박웃음이 된다.

과거 텅 빈 운동장이었던 도서관 마당은 녹음으로 채워지고 분수대와 작은 연못, 그 주변에 작은 오두막 정자를 갖게 되었다. 비도 새지 않을 것 같이 빽빽한 등나무 지붕이 시원한 그늘을 드리운다. 봄이면 흐드러지게 피는 벚꽃나무는 여의도의 윤중로가 부럽지 않고 겨울이면 잔디 위에 하얀 눈밭이 만들어진다. 산으로 둘러싸인 보기 드문 도시 서울이지만 도심 속에 녹음 짙은 공원 하나 찾기 힘든 메마른 풍경 속에 정독도서관은 최고의 휴식공간이다.

정원이 워낙 넓어 보기에도 시원한 연못과 분수대, 물레방아까지 있고 여름이면 매미가 자장가처럼 길게 울어대는 큰 나무 밑에 만들어 놓은 원두막엔 몇몇 사람들이 옹기종기 앉아 도시락을 나눠 먹고 있다. 정원 한쪽엔 옛날엔 관아였다는 조선시대의 건축물도 있어서 도서관의 고즈넉한 분위기를 더해준다. 잠시 이곳이 도서관임을 잊을 뻔 했다.

정독도서관은 올해로 35주년을 맞았다. 옛 학교건물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정독 도서관의 하얀 건물은 1938년에 지어진 것으로 나이가 지긋한 할아버지뻘이다. 도서관 전체 건물은 3개의 동으로 나눠져 있어 필요한 책을 찾아 이곳저곳 다니다 보면 옛 학교에 온 듯하다. 정독도서관은 1977년 서울시가 경기고 자리를 인수해 설립한 시민도서관이자 장서 50만여 권, 하루 평균 이용자 수 6,000명, 하루 열람·대출되는 책이 7,000권이 넘는 전국 최대 규모 중의 하나인 공공도서관이다. 학교 건물을 그대로 살려서 그런지 공부를 하는 열람실도 많고 각종 문화, 예술 활동을 위한 공간도 많다.

그 중 '정독 갤러리'와 '족보실'은 다른 도서관에선 보기 힘든 이채로운 곳이다. 예전엔 교실이었을 곳에 정독 갤러리가 있다. 게다가 보통 갤러리라고 하면 작가나 예술가나 전시를 할 수 있는데 이 갤러리는 단체나 개인 누구도 자기 작품을 전시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이다. 작품 전시는 일주일 단위로 하며 도서관 홈페이지(http://jdlib.sen.go.kr)에 신청 방법 및 전시 일정이 잘 나와 있다.

이 세상에 나를 존재하게 해준 조상들의 흔적 족보를 보고 싶다면 '족보실'에 꼭 가볼 일이다. 자신의 본관이나 파(派), 항렬자(돌림자) 중 하나만 알고 있어도 족보실의 담당 할아버지가 잘 찾아 주신다. 족보 속에 등장하는 내 할아버지 이전의 조상들의 흔적엔 생년월일은 물론 과거합격, 벼슬, 학문이나 행실에 대한 논평까지 기록된다니 무척 흥미롭다.

아르헨티나가 낳은 대문호 보르헤스는 스스로를 "작가로서보다 오히려 독자로서 더 뛰어나다"고 말했다. 보르헤스의 경우를 통해 모든 독서가 창작을 전제 한다는 가설을 세운다면 뛰어난 독자들이 많이 찾는 도서관에서 훌륭한 작가가 탄생할 확률도 높지 않을까? 책을 읽는 도서관을 넘어 책을 만드는 도서관으로 발전하여 세계적인 작가가 탄생하는 날이 어서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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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독도서관 #안국역 #족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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