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없는 시인’이 찍은 사진은 어떤 느낌일까?

시민기자 시민리포터 김종성

발행일 2012.08.22. 00:00

수정일 2012.08.22. 00:00

조회 2,290

[서울시 하이서울뉴스] 지난 1980년 군부독재시대 노동자들의 처절한 삶을 표현한 <노동의 새벽>이란 시집을 발표하고도 당시 서슬 퍼런 정권 때문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얼굴 없는 시인' 박노해(본명 박기평)가 '사진작가'로 돌아왔다.

아프리카, 중동, 아시아, 중남미 등 10여 년간의 사진 기록을 통해 위기에 처한 현대 문명과 삶에 대한 화두를 던지고 있는 시인의 사진들은 과연 어떤 느낌이 들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전시회 타이틀은 <노래하는 호수>. 한껏 낭만적이고 서정적인 느낌이 들지만 실은 세계 최장기 독재정권이 철권을 휘두르고 있는 나라 '미얀마'가 배경이다. 평화를 사랑하는 지극한 불심(佛心)의 나라에 군사독재정권이라니…. 모순된 현실이 가슴 아픈 곳이다.

'아시아의 가장 아픈 땅'이라고 불리고 있는 것도 그 이유다. 시인은 그 땅의 심장 인레호수와 그곳에 삶을 의지하고 사는 사람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인레호수는 해발 880m 고원지대에 있어 '산 위의 바다'라 불린다. 이곳은 온후한 기후와 아름다운 자연풍광, 순박한 인심이 살아 숨쉰다. 인타족과 소수 민족들이 농사를 짓고 물고기를 잡으며 대를 이어간다.

저마다의 삶이 어우러지는 호수에서는 희망의 등불이 밝아오고 있었다. 호수 곳곳의 풍경과 사람들…. 평화활동의 도구로서 들기 시작한 카메라는 그에게 인류 보편의 언어인 '빛으로 쓴 시(詩)'가 되었다. 그가 낡은 필름 카메라 하나 들고 가서 찍어온 흑백사진들은 그의 아름다운 글귀를 머금고 너무나 훌륭한 사진이 된다.

인레 호수에 붉은 노을이 물들면
평온한 저녁을 맞이하는 귀가의 시간이다
당당한 하루의 노동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인레 사람들의 뒷모습은 충만한 기쁨으로 빛나고
물 위의 파문도 뒤따라 동그란 미소를 짓는다.
"오늘 무슨 일을 했는가 못지않게
어떤 마음으로 했는가가 중요하지요.
모든 것은 물결처럼 사라지겠지만
사랑은 남아 가슴으로 이어져 흐르겠지요"
- 박노해 사진전 <노래하는 호수> 中

그가 내건 사진들은 보는 이로 하여금 한 장 한 장이 한편의 시를 떠오르게 한다. 키 큰 사탕수수밭에서 전사처럼 우아한 몸짓으로 수확을 하는 소녀를 보며 설탕 한 알에 얼마나 짠 땀방울이 배어 있을지 생각해 봤다. 부초를 끌어다 물 위에 만든 밭 '쭌묘'에서 조각배를 타고 다니며 채소를 재배하는 노동자 모습은 장엄하다. 호수에 이는 잔잔한 물결은 노동의 신성함과 삶의 평온함을 선사한다.

시인이 찍은 사진을 보고 필자처럼 감탄하는 사람들에게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사진 속의 사람들을 찍은 것이 아니라 그들이 내 카메라를 통해 내 가슴에 진실을 쏜 것이다." 박노해 사진전 수익금은 국경 너머 가난과 분쟁으로 고통 받는 이웃들을 위한 평화 나눔과 생명을 살리는데 쓰일 계획이다. 사진전이 열리는 라카페 갤러리는 생명, 평화, 나눔의 세계를 열어가는 비영리 사회단체 <나눔문화>에서 운영하는 대안 삶의 문화공간이다. 관람시간이 저녁 10시까지로 작품 감상에 한결 여유가 있어 좋다. 부암동 자락 언덕 위에 호젓하게 자리잡고 있는 갤러리는 공기도 맑고, 사색하기에 참 좋은 공간이라서 나들이 겸 다녀와도 좋은 곳이다.

- 전시기간 ; 10월 31일까지 (관람료 무료)
- 전시장소 ; 라카페 갤러리(www.racafe.kr)
- 관람시간 ; 오전 11시 ~ 오후 10시 (매주 목요일 휴관)
- 문의전화 ; 02-379-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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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박노해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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