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싱계 'F4'가 똘똘 뭉쳐 따낸 통쾌한 금메달

하이서울뉴스 이효순

발행일 2012.08.08. 00:00

수정일 2012.08.08. 00:00

조회 3,208

[서울시 하이서울뉴스] 경기 종료 1초를 남기고 갑자기 시계가 멈췄다. 우리 선수는 그 사이 독일 선수에게 공격을 당하고 말았다. 다 이겼다고 생각한 선수는 이 어이없는 상황에 서럽게 울기만했다. 그 누구도 그녀의 슬픔을 달래주지 못했다. 여자 펜싱 신아람 선수가 이처럼 억울하게 메달을 빼앗겼는데도 속수무책인 상황에서 우리 펜싱 대표팀 선수들은 똘똘 뭉칠 수밖에 없었다.

마치 신 선수의 한을 풀어주기라도 하려는 듯 우리 대표팀은 기적같은 승부를 펼쳤다. 지난 8월 4일 남자펜싱 사브르 단체전에서 45:26이라는 압도적인 점수차로 루마니아를 누르고 금메달을 따낸 것이다. 안방에서 TV를 지켜보던 국민들 모두 "진짜 잘한다. 잘해~"를 연발했다. 이들의 선전이 시발점이 돼 펜싱은 올림픽에 출전한 단체전 세 종목에서 모두 메달을 따내는 진기록을 썼다. 금 2, 은 1, 동 3으로 사상 유례 없는 성적을 거뒀다.

일순간에 비인기 종목 펜싱이 온 국민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원우영, 구본길, 김정환, 오은석 금빛 칼날의 주인공 4명은 이렇듯 국민에게 큰 감동을 선물했다. 나란히 서서 금메달을 목에건 선수들을 본 국민들이 펜싱계의 F4라는 별명을 붙일 정도로 모두 훤칠한 대한민국 청년들이다.

남자 사브르 단체전 마지막 선수로 출전해 화려한 기술로 금메달을 확정지은 주장 원우영(30) 선수는 금메달 획득 후 "우리는 무대 체질이다. 큰 무대에 올라가면 120% 실력을 발휘하는 동료들이 믿음직했다"라며 덧붙여 "결승이 비교적 쉬운 경기였지만 금메달을 땄을 때는 꿈만 같았다"라고 감격적인 소감을 전하기도 했다. 서울메트로 소속인 원우영은 상대가 공격에 들어가려는 순간을 포착해 파고드는 역습이 주특기인 선수다. 

올림픽 경기를 볼 때마다 매 경기 매 순간 순간을 노심초사 지켜보는 선수 가족의 마음은 어떨까 생각해봤다. 원 선수의 경기를 지켜보던 어머니 신순임 씨도 아들의 칼 끝의 움직임에 따라 숨을 멈췄다 쉬었다 가슴을 졸인다. 남자 사브르 단체전 마지막 주자인 아들이 대미를 장식, 금메달을 확정짓고 포효하자 어머니는 너무 기쁜 나머지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며 주저앉고 말았다. 원 선수 어머니에게 영광의 순간의 감동과 금메달이 있기까지의 피땀 어린 노력에 대해 들어봤다.

-금메달 딴 후 원 선수와 연락은 했나?

▲전화는 못하고 핸드폰 메신저로 간단하게 소식을 주고받았다. 금메달 획득 후 매우 바쁜 것 같았다. 개인전에서 16강 탈락하고는 '엄마 감사합니다. 그리고 죄송해요. 하지만 단체전이 남았어요. 이제 시작입니다'라는 메시지를 보내오기도 했다. 그렇게 스스로 굳게 다짐한 후 정말 금메달을 딴 아들이 자랑스럽고 대견하다.

-집에서는 어떤 아들인가?

▲듬직한 장남이다. 별명이 순둥이다. 바른생활맨으로도 통한다. 선수 생활을 하려면 자신과의 싸움에서는 독하게 이겨내야 하지만 남에게는 항상 너그럽다. 친구들이 아들을 "어, 그거 좋아"라고 부른단다. 아들이 입에 달고 사는 말이라서.

-펜싱을 하게 된 계기는?

▲원래 운동을 잘했다. 초등학교 중학교 때 체육부 선생님들이 운동시키라고 따라 다닐 정도였다. 축구, 육상 뭐든지 잘해 적극적인 권유를 많이 받았는데 당시 생각으로는 운동은 1등만이 인정받는 세계인 것 같고 또 너무 고단한 일인 것 같아 내가 반대 했다. 그러다 서울 서연중학교에 입학했는데 그곳이 서울시 펜싱지정학교더라. 선생님께서 펜싱을 시키라는 권유를 해서 1달만 시켜보겠다고 시작했는데 중학교 1학년 때 같은 학교 출전 선수 중 유일하게 혼자만 서울대회 16강을 통과했다. 2학년, 3학년이 되자 전국대회에서 메달을 땄다. 그렇게 잘하는데 안 시킬 수가 없었다.

-운동 선수는 대부분 슬럼프도 있고 부상으로 힘든 시기를 보낸 경험도 있다. 원우영 선수는 어떤가?

▲대학교 1학년 때 어깨 탈골로 수술을 받았고 뼈를 많이 긁어냈다. 당시 주치의 선생님이 '이 친구 이 정신력이면 뭘 해도 잘하겠다'라고 하셨다. 6개월간 재활하면서 팔을 쓸 수 없으니 다리를 단련하겠다며 올림픽공원 근처 한국체육대학교에서 삼성의료원까지 자전거타고 다녔다.

2009년 신종플루에 걸려 열심히 준비한 세계선수권대회 출전이 좌절됐을 때, 정말 가슴으로 피눈물을 흘렸다. 부모가 속상해 할까봐 아들은 혼자 병을 다 앓고 상황이 마무리 됐을 때야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 더 가슴이 아팠다.

-아들 뒷바라지 하면서 부모님도 고생을 많이 했을 것 같다.  

▲펜싱은 장비 가격도 만만치않다. 그래도 하는데까지는 뒷바라지 하려고 노력했다. (원)우영이 동생도 대학교 다닐때까지 펜싱을 했다. 둘을 운동시키려니 넉넉지 않은 형편에 버거울 수밖에 없었다. 애들 아버지와 함께 나도 늘 밖에서 일을 하며 빠듯하게 살다보니 남들처럼 잘해주지 못해 속상해 운적이 많다.

남들은 보약으로 산삼을 먹인다기도 하고 온갖 값비싼 보약도 철마다 척척 먹인다고 하는데 우리는 그러지 못해서 늘 미안했다. 어려운 형편에 맞춰 가르치려니 늘 부족했을 수밖에 없다. 그래도 반항 한 번, 볼멘소리 한 번 안한 아이다. 합숙 훈련을 하다보면 명절 때나 어버이날 같은 기념일에도 집에 못 오는 경우가 많다. 그때마다 전화를 하거나 죄송하다며 문자 메시지를 보낸다.

아들의 금의환향을 기다리는 엄마는 요즘 하루 하루 날아갈 듯하다. 여기 저기서 축하 전화 받느라 정신이 없고 "네, 모두 마음 써주신 덕분입니다.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하루에도 수십 번, 수백 번 반복하지만 목도 아프지 않다. 불굴의 정신력으로 스스로와의 싸움을 이겨낸 아들이 자랑스럽고 한편으론 힘들어도 내색 한번 안하고 버텨온 자식이 안쓰러워 가슴이 아플 때도 많았지만 지금 이 순간 어머니는 아무 여한이 없다. "빨리 보고 싶어요. 우리 아들 얼른 안아보고 싶고, 밥도 해주고 싶어요. 정말 장해요. 자랑스러워요." 어머니뿐 아니라 국민 모두가 소리 높여 외치고 싶을 것이다. "자랑스럽다. 우리 선수들~"

■ 원우영 선수 주요전적
 - 2006 세계선수권대회 개인 3위
 - 2006 도하아시안게임 개인 2위, 단체 2위
 - 2010 세계선수권대회 개인 1위
 - 2010 광저우아시안게임 단체 2위
 - 2012 런던올림픽 단체 1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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