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세련된 길(?) 촌스러운 옛날 동네(?)

시민기자 시민리포터 김종성

발행일 2012.07.16. 00:00

수정일 2012.07.16. 00:00

조회 3,632

[서울시 하이서울뉴스] 서울 시민들의 안식처이자 휴식처 남산에 오르는 길은 여러가지가 있다. 명동, 남대문 시장, 장충단공원 등 그 중에 가장 핫(Hot)하고 흥미로운 길은 단연 '경리단길'이다. 모두 남산을 향해 이어진 경사진 오르막길이라는 점은 같지만 경리단길은 '거리'에 가까운 길이어서 그런 것일 게다. 그것도 흔하고 그저 그런 거리가 아닌 무척이나 다채로운 풍경과 정취를 지닌 거리. 이름도 특이한 '경리단길'은 수도권 전철 6호선 녹사평역에서 내리면 이어진다.

전철역에서 내리자 웬 외국인들이 동네 주민처럼 자연스럽게 오간다. 털이 복실복실한 커다란 개와 거리를 산책하는 백인 아가씨가 있는가 하면, 어느 커피숍에 앉아 통화 중인 흑인 아저씨는 큰 덩치 덕택에 서너 평의 작은 커피숍을 만석처럼 보이게 한다.

경리단길의 초입에 있는 '이태원 제일시장'이 맨 먼저 리포터를 반긴다. 시장 간판에 써있는 '이태원' 글자를 보니 새삼 이 길이 '이태원동'에 있음이 실감난다. 바로 이웃 동네가 관광지로도 유명한 이태원 상가거리다. 제일시장 주위의 숯불생고기집에서 갈비 냄새가 밴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라 나도 모르게 쳐다보았더니, 글쎄 아이부터 어른들까지 서양인 가족이 철제 식탁에 둘러앉아 상추에 삼겹살과 갈비를 쌈싸먹고 있다. 우리에겐 아주 일상적인 모습이지만 벽안의 얼굴을 한 서양인들이 입을 크게 벌리고 열심히 상추쌈을 먹는 풍경에 왠지 웃음이 나온다.

시장에 이어 '이천 쌀 상회', '기쁨 전파사'를 마주치니 이거 어디 지방 소도시의 작은 동네에 온 것 같은 기분도 잠깐, 한껏 세련되고 도회적인 풍의 가게 '무명 여배우', '핫토리 키친'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나타난다. 경리단길은 여러모로 독특한 길이라는 걸 초입부터 실감하게 된다.

그뿐만이 아니다. 이탈리아, 미국, 일본, 터키, 멕시코 등의 음식 전문점들이 '숯불바비큐치킨', '남산김치찌개집' 등의 토속적인 간판과 머리를 잇대고 같은 길에 옹기종기 모여 있다. 그래서 그런지 트렌디한 카페와 레스토랑이 즐비함에도 도시적이고 세련된 느낌보다는 동네 맛집처럼 푸근하게 느껴지고 묘한 낭만과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외국인들과 주민들 뿐 아니라 외부인들의 발걸음까지 끌어당기게 하는 경리단길만의 강력한 매력이 아닐까 싶다. 오르막 경리단길 양편을 마음껏 두리번거리며 천천히 걷다보면, 다국적이고 다양한 카페들과 음식점의 서로 약속이나 한 듯 공통점을 발견할 수가 있다. 테이블 수가 서너 개, 큰 가게도 열 개 미만이라는 것과, 도무지 누가 직원인지 손님인지 구분이 잘 안 된다는 것이다. 수제 샌드위치를 파는 가게에 들어가 주문을 하려는데, 손님과 얘기를 나누던 주인장이 커피 한 잔을 손에 들고 뒤에서 나를 반긴다.

보통 '한 뼘 가게'라고 말하는 것들이 대부분으로 한껏 도시적인 멋을 낸 가게에서도 정취가 느껴지는 이유였다. 재미있는 이름의 가게 '병영슈퍼'에 들어가 음료수와 간식을 사먹으며 이 길을 들어서면서 궁금했던 '경리단길'의 유래를 주인장 아저씨에게 물어 보았다.

예전에 이 길 입구에 '육군 중앙 경리단'이라고 하는 부대가 있어서 '경리단'길로 불리기 시작했다는 것. 원래는 이태원동 '회나무길'이라는 공식 행정명이 따로 있단다. 이 길 주변의 다세대 주택에 비교적 싼 월세를 찾아 각국의 이방인들이 둥지를 틀면서 자연스레 외국인 상대의 카페와 식당이 하나 둘 문을 연 것이 5년 전이었단다. 육대주 곳곳에서 이곳을 찾아 둥지를 튼 외국인이 약 400명 정도라니 길가에 외국인들이 흔히 보일만하다.

'병영 슈퍼'만큼이나 흥미로운 가게 이름이 길가에서 눈길을 사로잡았다. '폴란드 그릇 가게'가 그곳으로 폴란드의 그릇이 얼마나 독특하고 예술적이기에 그 나라 그릇만 가져와 이곳에서 가게까지 할까 궁금하게 한다. 한 겨울 동해바다의 바다색깔을 '코발트블루'라고 표현하곤 하는데, 그 코발트블루의 원조색감을 놀랍게도 폴란드 그릇들이 보여준다.

주인장이 매혹당한 이 색은 천연재료인 코발트 광물에서 얻은 색으로 페르시아(이란을 위시한 부근 중동지역) 제국이 처음 발견한 색이며 유럽 도자기의 기초가 되는 색이라고 한다. 폴란드에서는 현대식 가마와 시설을 갖추고 아직도 이런 예술적인 수공예 핸드 메이드 그릇들을 만든다고 하니 부럽기도 하고 폴란드라는 나라가 새롭게 보인다. 가난한 작가 지망생 혹은 아마추어 예술가를 위해 무료로 빌려준다는 차고(garage) 전시장도 이채롭다.

차고 전시장을 끝으로 리비아, 스리랑카 대사관을 쳐다보며 경리단길 오르막을 다 오르면 하얏트호텔 앞의 남산 야생화 공원이 수고했다며 맞이해 준다. 시원한 약수터와 연못, 애국가 '남산위의 저 소나무'에 나오는 울창한 소나무들이 있어 걷기 좋은 공원 평지를 산책하니 오르막길을 오르느라 내내 앞으로 굽었던 허리가 이제야 펴지는 것 같다. 남산 야생화 공원을 산책하다보면 '남산타워'로 안내하는 팻말이 나온다. 서울의 다른 명물거리 삼청동길, 신사동 가로수길과는 또 다르게 도시의 '세련스러움'과 '촌스러움'이 묘하게 뒤섞여 푸근한 정취를 불러일으키는 경리단길. 이 거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체취와 추억이 구석구석 기억되고 유지되어, 경리단길 고유의 분위기를 오래도록 잃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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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 #경리단길 #녹사평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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