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없이 밤새도록 이야기하고 싶을 땐 이곳으로~

시민기자 시민리포터 김종성

발행일 2012.06.26. 00:00

수정일 2012.06.26. 00:00

조회 2,645

[서울시 하이서울뉴스] 얼마전 신문을 읽다가 서울시장의 집무실 사진이 눈에 띄었다. 서로 기대어 있는 듯 삐딱하게 서 있는 두 책장과 그곳을 가득 메운 책들이 참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이 집무실을 디자인한 사람의 헌책방이 내가 사는 동네 가까운 곳에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그 주인공은 30대 후반의 헌책방 주인 윤성근 씨. 그는 은평구 응암동에서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을 운영하는 책방지기다.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은 평범한 동네의 평범한 건물 지하 1층에 있다. 그러나 이 평범하기 짝이 없는 건물 지하의 문을 열면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입구에서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주인장이 아끼며 소장한다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시리즈. 거꾸로 가는 시계, 앨리스와 다스베이더 가면, 피노키오와 레고 등으로 장식한 아늑한 공간이 나타난다. 약 99m²(30평) 크기의 가게 첫 인상은 책방이라기 보다 카페 같은 느낌으로 실제로 간단한 음료와 간식도 판다. 자기가 읽은 책만 판다는 책방지기의 취향을 알 수 있는 5천 권의 헌책과 마주하니 절로 '책향기'에 빠져들게 된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답게 얼굴이 새하얀 책방지기와 인사를 나누며 책방 입구에 간판이 없어서 좀 헤맸다고 하니 "처음 헌책방을 낼 때 돈이 없어서 간판을 달지 못했는데 6년이 지나고 보니 이젠 간판이 필요 없다는 생각이 든다"라고 한다. 한쪽에는 주말 저녁에 열리는 공연을 위한 작은 무대가 있고 편안히 누워 책을 읽고픈 큰 소파, 공연 외에 영화도 상영하는지 프로젝터와 하얀 스크린이 벽에 붙어있다.

정말로 이상한 나라에 들어온 것 같은 이 책방은 도대체 무슨 공간일까? 단순히 책방으로는 설명이 부족할 것 같다. 카페이기도 하고, 공연장도 되고, 영화관이나 세미나실도 되니 말이다. 헷갈려 하는 내게 책방지기는 이 안에서 편안한 대화를 나누며 아는 사람끼리 모임을 할 수 있는 것은 물론, 모르는 사람들이 모여 독서모임도 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뿐만 아니라 공연, 영화 상영 등 이벤트도 종종 마련해 동네 사람들에게 열린 공간으로 이용된다고 한다.

그는 원래 컴퓨터 공학을 전공해 야근, 특근을 불사해야 하는 아이티 회사에 다녔는데 20대 후반에 갑자기 자신의 일이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어 한 달 만에 사표를 냈다. 그리고 어릴때부터 좋아했던 책과 관련된 일을 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책이 그렇게 좋았다면 새책방도 있는데 왜 헌책방을 차렸을까?

"새책 서점은 내가 원하는 책만 팔 수 없어요. 특히 대형 출판사의 홍보와 영업에 좌우되는 게 일반 서점의 현실이죠."

하지만 이곳의 책들은 주인장 마음대로 갖출 수 있다. 그래서 자기가 읽은 책만 파는 독특한 경영철학이 가능했나보다. 좋은 책인지 읽을 만한 책인지, 진정성이 있는 책인지… 주인장은 그런 기준으로 책꽂이를 채운다. 서고에 있는 책들 대부분은 사회학, 철학, 과학 그리고 다양한 소설들로 자기계발서나 참고서 같은 책들은 안 보인다. 생각해보면 자본과 홍보에 의해 떠들썩하게 태어나는 베스트셀러보다 오래 묵은 스테디셀러가 더 좋지 않은가.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은 그런 책이 대접받는 책방이다. 책방지기 답게 그도 부지런히 책을 읽고 글을 쓴다. 2009년 책과 책방에 얽힌 이야기를 담은 책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을 낸 데 이어 최근엔 후속작 <심야책방>을 펴냈다. 그가 원하는 서점은 이곳을 공동체 공간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한다.

단순히 책을 파는 곳이 아니라 문화에 대한 갈증을 채우고 사람들에게 편안함을 주는 안식처이자 동네 사랑방이 되는 것. 그래서인지 책방엔 트레이닝복 입고 나온 동네 주민들이 보이고 교복을 입은 동네 청소년들도 여럿 앉아있다. 아이들은 이곳에서 숙제며 공부도 한단다. 책방이 동네 청소년 공부방으로 변신하는 순간이다.

이곳엔 다채로운 프로그램들도 준비돼 있다. 그 중에서 눈에 띈 건 '심야책방'. 매달 둘째, 넷째 주 금요일 밤에는 책방 문을 밤새 여는데, 자정녘엔 쥔장이 섭외한 연주가나 가수가 공연을 한다. 안내문 문구가 인상적이다. '읽을 책이 많거나 써야할 글이 많은 분, 헤어진 이성친구 생각에 몸서리치는 새벽을 맞을 때, 진짜 좋아하는 단짝 친구와 술 없이 밤새도록 이야기하고 싶을 때, 홧김에 가출하고 싶은 어른들, 누구라도 좋습니다. 심야책방에 놀러오세요. 입장료 그런 거 없습니다.' 평일에는 많아야 하루 10명인 손님이 이날만큼은 두 배 이상 늘어난다고. 이런 동화 같은 공간을 왜 진작 찾지 않았을까? 다음번 '심야 책방'을 찾아 밤새 책을 읽고 음악을 들을 생각을 하니 가슴이 두근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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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 #이상한나라의헌책방 #윤성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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