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2세의 정체성 찾기

안미향

발행일 2011.11.07. 00:00

수정일 2011.11.07. 00:00

조회 2,508

[서울시 하이서울뉴스] 지난 겨울, 텍사스 북부 지역에 있는 한 대학에서 한인 유학생끼리 연말 파티를 열었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유학생들은 삼삼오오 모여 술을 마시며 흥겨운 시간을 보냈고 자연스레 같은 학교에 다니며 알게 된 한인2세들까지 합류하게 됐다.

술자리가 무르익어 얼큰하게 술에 취한 한인2세들이 시간이 늦어 그만 가야겠다고 하며 자리에서 일어나자 유학 생들은 어딜 가느냐며 붙잡았고 결국 말다툼으로 이어졌다. 원하면 언제든지 자리를 뜰 수 있다고 생각하는 한인2세들과, 선배가 아직 안 갔는데 나이 어린 후배가 먼저 술자리를 뜨면 안 된다는 사고방식을 가진 한인 유학생간의 대립이었다. 결국 한인2세들이 먼저 일어났고 유학생들은 “역시 바나나는 안 돼” 하며 ‘한국적인’ 술판을 이어갔다.

이처럼 ‘한국적인’ 한국인과 ‘미국적인’ 한국인, 한국인의 피를 지닌 ‘한국적인 미국인’ 사이의 대립은 이제 이민사회에서 흔한 일이 되어 가고 있다. 이러한 갈등에서 생겨난 말이 ‘바나나’ 다. '바나나'란 미국에서 나고 자란 재외동포 후세대를 일컫는 말로 겉껍질은 노랗고 알맹이는 하얀 바나나처럼 겉은 동양인이지만 속은 백인과 같다는 것에서 유래했다. 미주 한인사회가 형성되던 초기 이민 시절 많은 한인이 자신의 자녀가 미국 사회에 융화되어 미국인처럼 자라길 기대했고 그들이 유창한 영어로 말을 하면 이민 세대 부모는 어깨를 으쓱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무리 영어를 잘하고 머릿속 사고를 미국인처럼 한다 해도 뼛속까지 미국인일 수는 없는 것. 시간이 흐르고 한인 사회의 몸집이 커지면서 한인2세들의 정체성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큰 문제로 부각된 이 문제는 지구촌이 하나로 연결되는 글로벌 네크워크 시대를 맞이하면서 사회문제로 고착화 했다.

좋은 대학에 좋은 성적으로 입학한 뒤 미국 주류사회의 일원이 된 사람에게 한민족의 피가 한 방울이라도 섞여 있으면 ‘자랑스러운 한국인’으로 추앙하다가도 조금이라도 문제를 일으키면 당장에 ‘Yankee, go home’을 외치는 한인 이민사회의 정서 속에서 한인2세들은 더욱 큰 혼란에 빠졌다. 한국인이면서 한국말을 하지 못한다 하여 역차별을 받는 사례도 기하급수적으로 늘며 ‘이민 한국인의 정체성 확립’이 화두로 떠올랐다. 현재 미주 한인사회는 한인2세들에게 한민족의 긍지를 심어주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접근하고 있다.

그러나 기성세대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 자란 한인2세와 3세의 ‘정체성 혼돈’ 문제는 여전하다. 간혹 자신이 미국인이라 생각하며 자라온 한인2세들이 한국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다는 질책을 받으며 자존감을 잃는 경우도 종종 있다. 2009년 8월, 17세인 노아블랙은 연세대학교에서 개최한 교환학생 프로그램에 참가해 3개월의 한국어 과정과 한국 역사 속의 한미관계에 대한 수업을 수료했다. 노아군은 한국인 어머니와 미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한국계 미국인이지만 어릴 적부터 어머니의 나라에 대해 궁금해 했다. 하지만 한국에 대해 알 길이 없어 답답하던 차에 연세대학교에서 마련한 교환학생 프로그램에 지원한 것이다.

프로그램에 참가한 교환학생 대다수는 미국인으로 한인2세, 3세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노아군은 홈스테이를 하면서 한국 가정을 경험했고 경복궁을 비롯한 고궁을 돌아보며 어머니의 나라가 가진 반만 년의 역사가 자랑스러웠다고 회고했다. 미국 역사에서 유럽을 빼놓을 수 없듯이 한국 역사에서 한국과 중국의 관계를 묵과할 수 없음을 알았다며 오늘날 중국의 한국 역사 침탈 행위에 대해서 비판할 만큼의 식견도 갖추게 되었음을 뿌듯해하는 그는 이미 ‘한국인’이었다. 한인2세에게 한국인으로서 정체성을 확립하게 하는 최선의 방법을 찾기는 쉽지 않을 뿐더러 시간 제약에 부딪히게 된다.

한국문화가 단순히 언어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며 음식을 통해서만 얻어지는 것도 아니다. 한국의 모든 것을 알고 몸으로 익히고 한국인임이 자랑스러워지는 순간에 비로소 한국인의 정체성이 마음속에 자리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미주 한인사회에서 말하는 ‘바나나’에서도 알 수 있듯 속은 이미 하얗게 변해버려 속은 이미 백인이 되어버린 한인2세들에게 한국어만을 가르친다고 해서 한국인의 자부심이 일시에 형성되기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정체성’이라는 추상적 의미를 구체적 내용으로 이끌어내기란 쉽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한인 2세들의 정체성 혼란을 손 놓고 보고만 있을 수 없음은 많은 이가 공감하고 있으며 이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미국 내에서 한인 사회의 위상이 더욱 높아지길 기대하는 이도 많다.

한국인으로서 정체성을 확립하고 한국에 대해 잘 모르는 후세에게 한국을 알게 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재외동포 중에는 자녀와 함께 한국을 방문해 한국을 직접 보여주고자 하는 부모도 많다. 그러나 단순 한 관광이 아니라 교육 측면에서 고국을 방문하는 것도 자녀의 정체성 확립에 도움이 될 것이다.

글/안미향(뉴스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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