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크리트 속에서 벗어날 줄 모르는 서울사람이여!

유제원

발행일 2011.07.25. 00:00

수정일 2011.07.25. 00:00

조회 2,393

북한산에는 노적봉(716m), 영봉(604m), 비봉(560m), 문수봉(716m), 보현봉(700m) 등 이름난 봉우리만 해도 무려 40여 개에 달하지만 이번 취재에서는 비봉을 오르는 응봉 능선을 택했다. 인천공항에서 서울로 들어오면서 보이는 바로 그 멋진 봉우리 가운데 하나가 비봉이기도 하고, 비봉을 오르는 여러 코스 가운데 하나인 응봉 능선은 왼쪽으로 의상 능선, 오른쪽으로 진관 능선과 같이하며 북한산의 주봉인 백운대를 바라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마치 안을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밖으로 나와야 하는 것처럼 정작 백운대를 오른다면 백운대를 비롯한 삼각산의 자태를 감상할 수 없다. 이러한 이유에서 많은 사람이 북한산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코스로 응봉 능선을 추천한다.

토요일 아침, 지하철 3호선과 6호선이 만나는 연신내역 주변에서는 삼삼오오 일행을 기다리는 많은 등산객으로 분주한 가운데 산을 찾는 즐거움에 들뜬 사람들의 열기를 느낄 수 있다. 세계 여러 관광지를 소개하는 여행 가이드북 《러프 가이즈(Rough Guides)》에서도 이미 주말마다 산을 찾는 서울 사람들의 열기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혼자 하든, 둘이 하든, 혹은 여럿이 함께 하든지 간에 산행은 다 나름대로의 재미와 기쁨이 있다. 도심의 어느 길에서 무심코 스쳐 지나갔을지 모르는 사람도 산행에서 만나면 다 이웃이고, 서로 정상에 오를 수 있도록 아낌없이 격려하며 결국 모두가 정상에 선다. 나 혼자 올라서야 하는 도심 속에서의 경쟁과 달리 가장 높은 곳에 올라서 가장 낮은 사람의 마음이 된다.

이번 산행을 함께 한 인터넷 산행 동호회 ‘북빨대’의 서영종(44세, 쉐난도) 씨는 반복된 일상의 고단함을 극복하기 위해 한때는 술과 담배로 위안을 받기도 했으나 어느 날 우연히 찾은 북한산 산행에서 비로소 고단한 일상의 탈출구이자 삶의 휴식처를 찾았다고 한다. ‘산이조아’라는 별명만큼이나 북한산을 좋아한다는 곽인찬(49세, 산이조아) 씨도 산에 가야 비로소 자신이 살아 있음을 느낀다고 한다. 도심에서, 사무실에서 느끼지 못했던 자연 속에서의 원래 내 모습을 산에 가야 찾을 수 있다는 것이 바로 산을 찾는 이유라고 설명한다.

800m급의 그리 높은 산은 아니지만 북한산은 설악산이나 지리산 등 전국 여러 명산의 장점을 두루 갖춘 산이기도 하다. 산행은 물론 야생화 사진 찍기가 취미라는 최미숙(50세, 아이리스) 씨는 흙길을 비롯해 바위길, 암벽등반 등 수십 년을 다녀도 질리지 않을 산이 바로 북한산이라고 단언한다. 또 곳곳에서 만나는 ‘잉어 바위’, ‘개구리 바위’, ‘웃는 돼지 바위’ 등 오랜 세월에 걸쳐 자연이 빚어낸 신기하고 재미있는 조각 작품을 발견하는 것도 북한산의 매력이라고 한다.

산행대장 강준원(51세, 카타리) 씨 역시 평생을 다녀도 싫증나지 않을 만큼 다양한 묘미를 느낄 수 있는 산이 바로 북한산이라고 말한다. 그는 도심 한복판에 자리한 산이라 하더라도 1~2시간의 짧은 코스뿐 아니라 9시간이 넘는 산행이 가능한 북한산은 차를 타고 멀리 가지 않더라도 누구나 손쉽게 산행을 즐길 수 있는 가장 경제적인 산이라고 강조한다.

주말마다 산을 찾는 일이 마치 중독과 같아 산에 가지 않고 주말을 보내는 건 상상할 수 없다는 조경희(51세, 조아내스) 씨는 많은 사람이 건강을 위해 운동 삼아 산에 오르기도 한다지만 자신은 산에 오르기 위해 건강을 생각한다고 한다. 언젠가 나이가 들어 더 이상 산에 오르지 못하게 되는 것이야말로 인생의 가장 큰 즐거움을 잃는 일이 될 것이라고 걱정한다.

이렇듯 북한산은 이곳을 찾는 많은 사람들에게 단순히 취미 이상의 삶을 살아가는 이유가 되기도 하고 여유를 잃어버린 도시의 분주함 속에서 자신의 존재 의미를 찾는 철학적인 질문에 답하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서울의 모습은 그렇게 조물주와 피조물, 자연과 문명 등 극명한 대조를 통해 살아가는 이치를 깨닫게 한다. 그렇게도 벗어나고자 했던 도심을 힘들게 산에 올라 바라다보면 새삼 자연 앞에서 작아지는 인간에 대한 연민과 함께 다시금 그곳으로 돌아가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기도 한다.

자연을 찾아 산을 보고 오르지만 그 정상에 서면 다시 세상을 돌아보게 된다. 내가 나 자신을 볼 수 없는 것처럼 정신없이 살았던 세상에서 벗어나야 비로소 그 세상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산행의 묘미는 말로 다 표현할 수도 없고 아무리 성능 좋은 카메라라고 해도 그대로 담아낼 수 없는, 직접 산에 오르는 사람만이 맛볼 수 있는 감동적인 경험이다.

해외 한인들은 모처럼의 서울 방문 일정에서 산행을 생각하기가 그리 쉽지 않다. 업무상 만나야 할 사람도 있고 친지나 친구들을 만나다 보면 몇 주가 하릴없이 지나가게 마련이다. 여유가 생기면 청계천같이 관광 명소가 된 시내 구경을 하고 쇼핑을 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저녁에는 술도 한잔하며 서울의 밤 문화를 즐기기도 하지만 결국 피곤하고 지쳐서 그저 그런 서울 방문이 되기 십상이다. 하늘 아래 살면서 하늘 한번 쳐다보기 힘든 것처럼 서울에 가서도 지척에 산을 두고 콘크리트 속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못한다. 서울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세계가 부러워할 만한 매력을 지닌 북한산을 자랑스러워하고 감사해야 할 것이다.

항상 그 자리에 그렇게 있어 무심할 수도 있으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비단 찬란한 문화유산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오랜 역사와 정기를 간직한 북한산의 아름다움이야말로 진정 인생의 의미를 아는 만큼 볼 수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림 동화책 같은 생텍쥐페리의《어린 왕자》가 10대, 20대, 30대 그리고 60대가 되어 읽어도 그때마다 다른 감동을 주는 것처럼 복잡하게 많은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다. 북한산도 마찬가지다. 북한산은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그 자리에서 그렇게,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사람들에게 감동과 용기를 줄 것이다.

정상을 향해 오르는 것도 중요하지만 함께 오르는 사람들도 좋고 산행하며 나누는 이야기도 좋고, 미끄러운 바위에서는 서로를 의지하기도 하고, 계곡을 만나면 발을 담그기도 하고 그늘을 만나면 잠시 쉬어 가기도 한다. 불현듯 만나는 이름 모를 꽃이 반갑기도 하고, 돌탑을 보면 돌 하나를 보태며 무언가를 빌어보기도 하고, 산중턱에 자리 잡은 사찰의 풍경 소리나 향내도 좋다. 얼마 오르지 않았는데도 어느새 세상은 저만치 발아래로 한눈에 보이고, 어느덧 정상에 올라서면 서울에 북한산이 있는 것이 아니라 북한산에 서울이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서울을 방문해 잠깐이라도 북한산의 매력을 경험한 다음에는 바로 그 북한산 때문에 다시금 서울을 방문하게 될 것이다.

글/유제원(라디오 워싱턴)

#서울 #북한산 #서울이야기 #재외동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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