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속 사찰 여행

황현숙

Visit2,582 Date2011.07.04 00:00


나는 천주교 신자지만 불교 문화와 철학에도 관심이 많아 한국에 올 때마다 기회가 닿는 대로 해인사나 통도사 같은 큰 절을 찾거나 작은 산사를 찾아가 스님과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종교의 분파를 따지기 이전에 정적과 고요함이 감도는 곳에서 인생을 논할 수 있는 자리를 즐기기 때문이다. 오래전부터 꼭 한번 방문하고 싶었던 곳이 서울 중심부에 위치한 봉은사와 길상사였다. 도심 속에 자리 잡은 절과 산속에 있는 산사가 어떻게 다를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불교 신자인 선배 언니와 강남 삼성동에 위치한 봉은사를 먼저 찾았다. 봉은사는 신라시대의 고승 연회국사가 원성왕 10년(794년)에 창건하여 1200여 년의 역사를 지닌 고찰이다. 절대 불변의 진리를 찾아간다는 뜻을 지닌 진여문을 통과하면 사찰의 중심부에 놓인 거대한 미륵대불을 발견할 수 있다. 미륵불 앞에서 절을 올리며 소원을 비는 여신도들의 모습이 진지하고 간절해 보였다. 속리산에 있는 은진미륵과 닮은 모습이다.


깊은 산속에 와 있는 듯 조용한 봉은사 경내에는 경건한 분위기가 감돌았고, 바닥에 엎드려 삼배를 올리는 신도들의 모습은 중생의 업보가 무엇인지를 떠오르게 했다. 봉은사에서는 일반 사람들이나 외국인을 위한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언젠가 한국을 다시 방문한다면 ‘템플스테이’를 꼭 한번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봉은사 방문을 기념해 예쁜 색깔의 염주를 선물로 받고, 발걸음을 길상사로 향했다.


《무소유》의 저자인 법정스님이 1995년에 설립한 길상사는 서울 성북동에 자리 잡고 있는 대중 사찰이다. 유신 정권 시절에 권력의 뒷거래가 이루어지던 장소로, 안방 정치의 요정(대원각)으로 사용하던 건물이라고 한다. 정권이 바뀌면서 독실한 불교 신자였던 주인이 법정스님께 기부해서 사찰로 바뀌었고, 이로써 길상사가 탄생한 것이다. 길상사는 1997년에 ‘맑고 향기롭게 근본도량 길상사’라고 이름을 바꾸고 대중 속으로 친근하게 다가서는 전교를 펼쳤다. 법정스님은 단 한 번도 주지 직을 맡지 않고 회주 스님으로서 간혹 대중을 위한 설법만 행했다.


무소유를 몸소 실천하며 대중들이 스스로 불법을 깨우치기를 바랐던 수행자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대웅전을 끼고 오른편을 바라보면 합장하고 있는 작은 보살 조각상을 볼 수 있다. 성모마리아의 자태를 닮은 얼굴에서 우아함이 느껴졌다. 계곡 물 흐르는 소리와 고풍스러운 정자가 깊은 산속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경내는 아늑했다. 도심 한가운데에 길상사 같은 운치 있는 사찰이 있다는 것은 서울 시민들에게는 행복한 일일 터다. 법정스님의 무소유 철학이 향불처럼 오랫동안 좋은 향기로 퍼져나갔으면 하는 바람을 기도에 담아보았다.


글/황현숙(호주 동아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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