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속 사찰 여행

황현숙

발행일 2011.07.04. 00:00

수정일 2011.07.04. 00:00

조회 3,296

나는 천주교 신자지만 불교 문화와 철학에도 관심이 많아 한국에 올 때마다 기회가 닿는 대로 해인사나 통도사 같은 큰 절을 찾거나 작은 산사를 찾아가 스님과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종교의 분파를 따지기 이전에 정적과 고요함이 감도는 곳에서 인생을 논할 수 있는 자리를 즐기기 때문이다. 오래전부터 꼭 한번 방문하고 싶었던 곳이 서울 중심부에 위치한 봉은사와 길상사였다. 도심 속에 자리 잡은 절과 산속에 있는 산사가 어떻게 다를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불교 신자인 선배 언니와 강남 삼성동에 위치한 봉은사를 먼저 찾았다. 봉은사는 신라시대의 고승 연회국사가 원성왕 10년(794년)에 창건하여 1200여 년의 역사를 지닌 고찰이다. 절대 불변의 진리를 찾아간다는 뜻을 지닌 진여문을 통과하면 사찰의 중심부에 놓인 거대한 미륵대불을 발견할 수 있다. 미륵불 앞에서 절을 올리며 소원을 비는 여신도들의 모습이 진지하고 간절해 보였다. 속리산에 있는 은진미륵과 닮은 모습이다.

깊은 산속에 와 있는 듯 조용한 봉은사 경내에는 경건한 분위기가 감돌았고, 바닥에 엎드려 삼배를 올리는 신도들의 모습은 중생의 업보가 무엇인지를 떠오르게 했다. 봉은사에서는 일반 사람들이나 외국인을 위한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언젠가 한국을 다시 방문한다면 ‘템플스테이’를 꼭 한번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봉은사 방문을 기념해 예쁜 색깔의 염주를 선물로 받고, 발걸음을 길상사로 향했다.

《무소유》의 저자인 법정스님이 1995년에 설립한 길상사는 서울 성북동에 자리 잡고 있는 대중 사찰이다. 유신 정권 시절에 권력의 뒷거래가 이루어지던 장소로, 안방 정치의 요정(대원각)으로 사용하던 건물이라고 한다. 정권이 바뀌면서 독실한 불교 신자였던 주인이 법정스님께 기부해서 사찰로 바뀌었고, 이로써 길상사가 탄생한 것이다. 길상사는 1997년에 ‘맑고 향기롭게 근본도량 길상사’라고 이름을 바꾸고 대중 속으로 친근하게 다가서는 전교를 펼쳤다. 법정스님은 단 한 번도 주지 직을 맡지 않고 회주 스님으로서 간혹 대중을 위한 설법만 행했다.

무소유를 몸소 실천하며 대중들이 스스로 불법을 깨우치기를 바랐던 수행자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대웅전을 끼고 오른편을 바라보면 합장하고 있는 작은 보살 조각상을 볼 수 있다. 성모마리아의 자태를 닮은 얼굴에서 우아함이 느껴졌다. 계곡 물 흐르는 소리와 고풍스러운 정자가 깊은 산속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경내는 아늑했다. 도심 한가운데에 길상사 같은 운치 있는 사찰이 있다는 것은 서울 시민들에게는 행복한 일일 터다. 법정스님의 무소유 철학이 향불처럼 오랫동안 좋은 향기로 퍼져나갔으면 하는 바람을 기도에 담아보았다.

글/황현숙(호주 동아일보 칼럼니스트)

#서울 #재외동포 #언론인 #이야기 #사찰
매일 아침을 여는 서울 소식 - 내 손안에 서울 뉴스레터 구독 신청 내가 놓친 서울 소식이 있다면? - 뉴스레터 지난호 보러가기

댓글은 자유로운 의견 공유의 장이므로 서울시에 대한 신고, 제안, 건의 등
답변이나 개선이 필요한 사항에 대해서는 전자민원 응답소 누리집을 이용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상업성 광고, 저작권 침해, 저속한 표현, 특정인에 대한 비방, 명예훼손, 정치적 목적,
유사한 내용의 반복적 글, 개인정보 유출,그 밖에 공익을 저해하거나 운영 취지에 맞지
않는 댓글은 서울특별시 조례 및 개인정보보호법에 의해 통보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응답소 누리집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