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종교가 살아 숨 쉬는 서울[2]

박종권

발행일 2011.06.20. 00:00

수정일 2011.06.20. 00:00

조회 2,286

종교와 윤리 사이에서, 유교

유교는 종교인가? 유교는 대한민국 사회에 살아 있는가? 과연 그렇다면 어디에 살아 있는가? 구한말 이후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천주교, 기독교는 가혹한 박해를 받으면서도 한국에서 그 유례를 찾지 못할 정도로 성장한 반면, 종교로서 유교는 인구가 20만 명에서 10만 명으로 계속 줄어 전통 종교 문화로서 입지가 사라지는 듯 보인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 유교는 15개의 향교 재단과 234개의 사원, 신주 또는 위패를 모시기 위한 1,237개의 사우(寺宇)가 현존하고 있으며, 한국 종교 인구의 90% 이상이 일상생활에서 제사를 모시고 추석과 명절에 성묘를 하는 유교적 신념 체계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또 조선 왕조의 수도이자 대한민국의 수도인 서울에도 유교적 전통은 그대로 살아 있다. 공자에게 제사를 드리는 석전제(釋奠祭)가 매년 열리고, 조선 시대 궁궐부터 종묘사직에 제사를 드리는 종묘제례, 사대문(흥인지문, 돈의문, 숭례문, 숙정문)의 이름에 이르기까지 유교의 근본 사상이 잘 나타나 있다.

특히 대한민국의 고유 문자인 한글은 유교의 근본 사상을 바탕으로 만들어졌으며, 태극기 역시 유교의 경전인 역경의 기본 사상을 잘 반영하고 있다. 유교 사상의 핵심 원리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한글이 배척과 천대를 받다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한글이라는 정식 명칭을 얻었고, 기독교 성서를 번역하면서 비로소 한민족의 문자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는 사실은 역사적 아이러니다. 조선시대의 ‘사농공상’, ‘적서차별’, ‘남녀차별’처럼 ‘언문’으로 천시된 한글이 오늘날에 와서 정보 혁명 시대에 새로운 문명의 힘으로 기능하듯이 유학 사상은 시대를 초월해 각 시대에 맞는 새로운 창조적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안동에서 세계 보편 가치로서의 가능성과 미래 비전의 모색 등을 주제로 세계 각국 학자들을 초청해 2010년 세계유교문화축제를 연 것은 이러한 창조적 가능성을 모색하는 과정의 일환이다. 유학 사상은 새로운 시대에 맞게끔 변모하고 있으며, 한국인은 이러한 전통 사상으로서 유교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지니면서 새로운 한민족의 창조적 미래를 만들어나가고 있다.

세계가 놀라는 한국 기독교와 천주교의 성장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다. 부활 신앙이 없다면 아예 기독교 자체가 성립되지 않을 정도로 중요하다. 역사적으로 기독교는 박해 속에서 성장했고, 기독교인들의 죽음을 무릅쓴 희생으로 신앙을 지켜냈다. 천주교와 개신교는 한국으로 유입된 시기가 서로 다르지만 둘 다 세계가 놀랄 만한 성장세를 보여주었다. 이는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 그리고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받은 수많은 박해와 시련을 부활의 신앙으로 이겨냈기 때문이다.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방한해 한국 천주교 200주년 기념행사에서 순교자 103위를 성인으로 선포한 것은 그 절정이다. 1989년에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주례로 제44차 세계 성체 대회를 서울에서 개최하기도 했다. 초기 천주교의 전래부터 박해 그리고 현재에 이르는 천주교의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 있는데, 바로 서울시 마포구 합정동에 있는 천주교 성지인 절두산순교박물관이다.

한국 천주교의 초기 100년은 박해의 연속이었다. 병인박해라 불리는 대원군의 천주교 탄압은 1866년부터 그가 실각할 때까지 무려 8년이나 계속되었고 전국에 걸쳐 8,000명 이상이 순교했다. 절두산순교박물관은 바로 이 당시의 상황을 체험할 수 있도록 잘 꾸며졌다. 한국 천주교회는 세계 교회 역사상 유례가 없이 자생적으로 설립되었다는 특징이 있다.

반면 한국 개신교는 외국인 선교사들의 희생을 토대로 발전했다. 교육, 의료 등 각 분야에서 선교사들은 조선의 발전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던졌다. 선교사 헐버트는 고종의 밀사 자격으로 미국에까지 가서 조선의 독립을 위해 일했다. 그는 해방 후 고인의 유언에 따라 양화진에 안장되었다. 143명의 외국인 선교사가 안장된 양화진에서 한국 개신교의 전래와 희생의 뿌리를 잘 확인할 수 있다. 한국 개신교는 100여 년이 조금 지난 지금 세계 선교의 역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속도로 성장했다. 현재 대한민국 인구의 18.3% 정도가 개신교 신자이며, 세계 10대 대형 교회 안에 한국 교회가 1위와 2위를 포함해 5개가 들어 있다.

한국정교회는 1900년 1월 러시아인 크리산토스 스켓콥스키Chrysanthus Sketkovsky 신부가 처음 선교사로 파견되어 조선 땅에 들어온 지 올해로 110년이 된다. 일제강점기와 러시아 볼셰비키 정권으로 말미암아 한국정교회는 큰 시련을 겪었다. 그러다 1950년대 한국전쟁의 폐허 속에서 유엔 참전국의 일원인 그리스군의 종군 사제 안드레아스 할키오풀로스 신부가 한국정교회 공동체를 서울에 설립했다. 1968년에는 서울시 마포구 아현동에 성 니콜라스 대성당을 비잔틴 양식으로 건축했다. 그 후 2004년 한국정교회는 자치행정제로 승격했으며, 현재 세계총대주교에 소속되어 있다.

글/박종권(겨레일보)

매일 아침을 여는 서울 소식 - 내 손안에 서울 뉴스레터 구독 신청 내가 놓친 서울 소식이 있다면? - 뉴스레터 지난호 보러가기

댓글은 자유로운 의견 공유의 장이므로 서울시에 대한 신고, 제안, 건의 등
답변이나 개선이 필요한 사항에 대해서는 전자민원 응답소 누리집을 이용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상업성 광고, 저작권 침해, 저속한 표현, 특정인에 대한 비방, 명예훼손, 정치적 목적,
유사한 내용의 반복적 글, 개인정보 유출,그 밖에 공익을 저해하거나 운영 취지에 맞지
않는 댓글은 서울특별시 조례 및 개인정보보호법에 의해 통보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응답소 누리집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