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대한 사유, 탐구, 철학, 그리고 재발견
발행일 2011.06.07. 00:00
집짓기 0일째, 포크레인이 다가와 헌집을 허물다. 집짓기 6일째, 반장과 대장이 희섭이가 표시해 놓은 실금을 따라 집의 기초를 잡다가 기초가 비뚤어진 것을 발견한다. 집짓기 7일째, 아버지집이 비뚤어진 불법집이라는 것을 안다. 집짓기 15일째, 동네사람이 구경을 왔다. 집짓기 22일째, 설계도가 바뀌게 돼 가족회의를 한다. 집짓기 27일째, 비가 온다. 집짓기 41일째, 옹벽이 서 있다. 집짓기 47일째, 콘크리트가 굳는데 약 2주의 시간이 걸렸다. 집짓기 51일째, 집짓기가 멈추고 지붕틀이 내려온다.
서울시와 서울문화재단이 운영하는 남산예술센터와 극단 놀땅이 2011 시즌 공동제작 프로그램으로 선보이는 최진아 작․연출의 <1동 28번지, 차숙이네>가 2011년 6월 4일부터 6월 19일까지 남산예술센터에서 앙코르 공연을 가진다. 이 연극은 지난해 대산문학상 희곡부문 수상에 이어 동아연극상 작품상 수상, 월간 한국연극 올해의 공연베스트7 선정까지 2010년 한국 공연계 주요한 상들을 휩쓸며 화제에 올랐던 수작이다.
집짓기 첫날부터 실제로 집이 지어지는 과정이 그대로 관객들 앞에서 펼쳐진다. 주인공은 사람이 아닌 사물, 바로 집이다. 지방의 어느 시골. 차숙이네가 옛날집을 허물고 그 자리에 새 집을 짓고 있다. 집의 기초공사가 마무리 될 무렵 차숙이의 큰아들이 기초가 비뚤어진 것을 발견한다. 공사는 중단되고 땅을 바로잡으려는 와중에 차숙이네 삼남매는 옛날집이 택지가 아닌 농지 위에 불법으로 지은 집이었으며, 돌아가신 아버지가 군청 몰래 집을 늘려짓고 살았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이제 다시 새 집을 반듯하게 고쳐 지으려는데 셋째 딸이 이의를 제기한다. 새 집을 비뚤게 짓자는 것이다. 집에 대한 의미와 가치가 각자 다른 삼남매와 어머니 차숙이는 회의를 계속한다.
공연이 시작되면 땅에 선을 긋고 밑그림을 그리고 거푸집을 얹고 콘크리트를 채우고 거푸집을 떼어낸다. 공연이 끝날 때쯤이면 집 한 채가 그럴 듯하게 무대에 세워진다. 최진아 연출가는 "실제 어머니가 사는 시골동네에서 집을 짓는 모습을 보고 감동해 아이디어를 얻었다"며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도 중요하지만 무엇을 논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항상 더 관심이 간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그런지, 연극 <1동 28번지, 차숙이네>는 단순한 집짓기가 아니고 집에 대한 사유와 탐구와 철학이다. 그리고 집에 대한 재발견이다. 박사 아들, 포크레인 기사 아들, 기타들고 음악 하는 딸과 어머니 차숙이, 이들의 대화 속에서 관객들은 가족을 떠올려 보고 가정 안에서의 자신의 정체성도 찾아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집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서도 더 진지해질 것이다.
극에서 자주 등장하는 ‘아버지’와 ‘돈’ 때문에 원하는 집도 짓지 못하고 불법을 저지를 수밖에 없는 상황들이 가슴 뭉클하게 했다. 가끔 코믹한 장면에서 킥킥거리기는 했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짓누르고 답답하게 하는 무거운 작품이었다. 자수성가하여 큰집, 작은집까지 인부들과 손수 세 채의 집을 나란히 지으셨던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자랐기 때문에 오늘의 이 연극은 그저 연극으로 보여지지 않았다. 마당이 너른 그 집에서 20년이 넘게 성장했는데 도로계획선에 걸려 집이 뜯겼을 때의 그 슬픔은 아직까지도 아물지 않은 상처로 남아 있다. 집은 단순히 가족이 모여 사는 거주지로서의 의미만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한 가정의 애환과 가족사가 그려지고 씌어지는 영혼 그 자체다. 집이 지어지는 그 과정을 보노라니 더욱 그렇다. 집짓는데 물과 흙이 얼마나 중요하고, 땅을 굳게 하고 건조시키는데 바람이 또한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연극 중간 중간 집의 변천사, 발전사를 설명하는 대목에서는 귀를 쫑긋하게 한다. 창덕궁의 인정전 앞마당을 비뚤게 지어 옥에 갇힌 박자청 이야기, 한 집에 두 개가 생기는 화장실, 집의 중심이 돼야 하는 거실의 중요성 등... 동네사람으로 나오는 연보라 씨의 까치집 이야기와 마지막 에필로그가 한 폭의 동화와 동시로 와 닿는다.
- 집이다
작고 비뚤어진
사람들은 집을 짓는다
집은 사람보다 나이가 많다
집이 거기 있다
집들이 점점 많아진다
마을을 이룬다
산 아래 마을이
하나
둘
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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