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동과 부암동의 한국 문학 자취

하치스카 미쓰히코

Visit3,519 Date2011.04.18 00:00


평창동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조화로운 자연과 아름다운 경관을 가진 고급 주택가로서 ‘한국의 베벌리힐스’로 불린다. 수많은 예술가와 작가들이 거주하고 있는 이 동네는 그래서인지 개성이 풍부한 미술관이나 갤러리도 여럿 보듬고 있다. 또한 이곳에는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과 그의 부인 강인숙 건국대학교 명예교수가 2001년에 개관한 ‘영인문학관’이 있다. ‘영인’이란 두 사람의 이름에서 비롯한 명칭이다. 문학관 안에는 이어령 씨가 중심이 되어 오랜 기간에 걸쳐 수집한 여러 작가들의 육필 원고와 판본, 초상화, 편지, 서화, 문구, 유품, 사진 등으로 구성된 소장품을 상설 전시하고 있으며 가끔씩 기획 전시도 열고 있다.


이렇게 깔끔하고 멋진 주택가 안에 얌전히 자리 잡고 있는 낡은 한옥 한 채를 발견했다. 바로 역사소설가, 월탄 박종화의 고택이다. 그는 일제강점기에 창씨개명을 거부하면서 일본에 맞서 싸우는 주제로 민족문학을 전개하여 <전야>, <여명>, <민족> 등의 작품을 탄생시켰다. 이 집은 현재까지 자손이 거주하고 있어서 내부는 볼 수 없으나 정취 있는 한옥을 밖에서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그 가치는 충분하다.


평창동에서 세검정 길을 따라 홍제천을 끼고 걸으면 부암동으로 이어진다. 바위를 타고 흐르는 물소리가 맑고 상쾌하다. 조선 후기의 문신 정약용의 <유세검정기遊洗劍亭記> 등 다양한 문학 작품의 배경이 된 육각 정자 ‘세검정’에서 잠시 쉬면서 아름다운 경관을 즐겨본다. 세검정이란 이름은 ‘검을 씻고 평화를 기원하는 장소’라는 의미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세검정 길을 걷다가 자하문 사거리에서 오른편에 난 오르막길로 오르면 춘원 이광수의 별장이 나온다.


이광수는 한국 근대문학의 선구자로 일컬어지지만 일제강점기에 전향함으로써 친일파라는 낙인이 찍혀 한국전쟁 중 서울을 점령한 북한군에게 납치된 후 북한에서 죽은, 역사에 번롱(翻弄:이리저리 마음대로 놀림을 받음)당한 작가라 할 수 있다. 이 별장은 경사가 심한 오르막길 중턱에 위치한 전통 한옥으로 역시 내부는 볼 수 없다. 하지만 이광수가 사랑한 세검정과 주변의 산 등 아름다운 자연 풍경은 별장 밖에서도 즐길 수 있다. 또 이 부근에는 홍지문과 인접한 홍예교가 자리 잡고 있고, 흥선대원군의 별장인 석파정도 있다. 석파정의 사랑채를 개조한 한식당 ‘석파랑’에서는 다소 가격대가 있기는 하나 조선시대의 궁중 요리를 즐기며 왕이 된 듯한 분위기에 흠뻑 젖어볼 수도 있다.


부암동은 북악산과 인왕산 기슭에 위치한 동네로 역사가 담긴 사적도 많지만 현대적인 스타일의 집과 가게도 많아서 전통과 현대가 잘 어우러진 인상을 준다. 아름다운 산과 성곽을 바라보면서 자하문터널 오른쪽 길로 올라가면 소설가 빙허 현진건의 집터와 비석이 나온다. 현진건은 <술 권하는 사회>, <추락자>, <운수 좋은 날> 등의 대표작으로 유명하며, 사실주의 단편소설의 기초를 다졌다는 평가를 받는 작가로 잘 알려져 있다. 1936년 당시 동아일보 사회부장으로 있던 그는 베를린 올림픽의 마라톤에서 우승한 손기정의 사진에서 일장기를 말소한 사건으로 기소되었다. 그 사건으로 1년의 옥중 생활을 하고 불굴의 반일 사상을 관철시킨 작가이기도 하다. 그는 출옥 후 이곳에서 양계를 하며 <무영탑>을 집필하고 조국의 해방도 보지 못한 채 1943년 결핵으로 사망했다.



글/하치스카 미쓰히코(광고 회사 ADK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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