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가장 긴 돌다리의 전설

시민기자 시민리포터 이승철

발행일 2011.04.05. 00:00

수정일 2011.04.05. 00:00

조회 3,535

원형이 보존되어 있는 한양대학교 쪽 살곶이다리, 성수동 쪽은 현대식 콘크리트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때는 조선이 건국된 직후 한양 땅 중랑천 하구에 있는 작고 나지막한 봉우리 응봉에서였다. 새로운 도읍지를 찾아 한양 땅에 왔다가 잠시 사냥터를 찾은 태조 이성계와 삼봉 정도전. 천년사직을 누릴 도읍지를 찾아 헤매다가 우여곡절 끝에 신비한 노인의 말에 따라 십리를 더 들어가 찾아낸 도읍지는 참으로 흡족한 곳이었다. 인왕산과 백악산을 좌청룡 우백호로 거느린 도성 터는 길지 중의 길지임에 틀림없어 보였다. 임금과 신하가 새로운 도성 터를 멀리 바라보며 흐뭇한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푸드득~ 꿩 두 마리가 등 뒤쪽에서 날아올랐다.

세종대왕의 효심에서 시작된 다리

본능적으로 뒤돌아선 태조가 시종이 들고 있는 전통에서 날렵하게 화살 하나를 뽑아들어 활시위를 당겼다. 이성계가 누군가? 전쟁터를 누빌 때면 적장의 눈과 투구 끈을 명중시키던 신궁이 아니던가. 다음 순간 시위를 떠난 화살은 공중으로 날아오른 꿩을 정확하게 꿰뚫었다. 화살을 맞은 꿩은 개천 건너 들판에 뚝 떨어졌다.

“전하! 개천 건너 들판 이름은 ‘전곶(箭串)벌’이라 하옵니다.” “전곶벌? 매우 특이한 이름이구먼” “전하의 화살을 맞은 꿩이 떨어진 곳이니 전곶벌이라는 이름이 옳지 않사옵니까?” “허허~ 그렇구먼” 임금과 신하가 기분 좋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이런 연유로 지금의 성수동 일대는 옛날부터 ‘전곶벌’ 또는 ‘살곶이벌’이라 불렸다. 성동구 행당동과 성수동 사이를 흐르는 중랑천 하류에 가로 놓여 있는 옛 다리 이름이 ‘전곶교’(箭串橋) 또는 ‘살곶이다리’라고 불리는 것도 같은 연유에서다. 세종 2년(1420)에 착공하여 성종임금 때 완공된 이 다리를 놓게 된 것은 세종임금의 효심 때문이었다. 상왕인 태종이 형님인 정종과 함께 개천 건너 살곶이벌에 있는 낙천정을 자주 찾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선시대 가장 긴 돌다리는 당대에 완공을 보지 못했다. 공사를 시작한지 2년 후에 태종이 세상을 떠나자 다리를 세워야할 이유가 사라졌고, 세종 3년부터 시작된 도성 안 개천(청계천)제방축조공사로 인해 도성 밖 이곳까지 지원할 겨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성종임금 때에 이르자 이 길을 이용하는 수많은 백성들로 인하여 다리를 만들 필요성이 다시 제기되었다. 이 다리는 7년 후인 성종 13년 완공되었다.

성동구 행당동 58번지와 성수동 사이 청계천과 중랑천이 합류해 흐르는 조금 아래지역에 있는 이 다리는 현재 길이 78미터, 너비가 6미터로 조선시대에 세워진 돌다리 중 가장 길다. 살곶이다리 조금 아래에는 지하철 2호선 철교와 성동교가 가로 놓여 있다. 1483년 완공당시 다리 바닥이 넓고 판판한 것에 감동한 성종에 의하여 본래 이름은 제반교(濟盤橋)라고 불렸다.

다리의 구조는 가로로 세워진 기둥이 4열, 세로로 세워진 기둥이 16열이어서 모두 64개의 돌기둥이 세워져 있다. 다리 좌우의 교안을 기다란 장대석으로 쌓고 돌기둥은 마름모꼴이며 기둥 위에 석장의 장대석을 건너질렀다. 그리고 그 위에 다시 귀틀돌을 놓아 청판돌을 얹은 구조다.

다리는 모두 64개의 돌기둥이 떠받치고 있다

기둥 아래 부분에는 받침돌이 네모난 주춧돌을 받쳐 기둥을 지탱하는데 안정감을 주었으며, 주춧돌 사이에는 포석을 깔아 기초를 단단히 했다. 따라서 물이 줄었을 때는 이 포석 면이 드러나 마치 지금의 잠수교처럼 ‘이층다리’라 불렀다고 전한다. 돌기둥은 흐르는 물의 저항을 줄이기 위해 마름모꼴로 만들었다. 바닥 표면을 판판하게 하기 위해 조립할 때 잔돌을 많이 사용하여 뜬 곳을 메웠고 돌난간은 없다.

이렇게 아름답고 멋진 모양으로 건축된 다리는 한양도성과 동남 쪽 지방을 잇는 요긴한 다리로 많은 백성들이 편리하게 이용했다 그러나 이 다리는 조선 말기에 수난을 당했다고 전한다. 고종임금 시절 대원군에 의해 경복궁을 중수할 때 부족한 석재를 충당하기 위해 이 다리의 일부를 해체하여 궁궐 건축에 사용했다고 하나 기록된 문헌은 전하지 않는다.

근래 복원되어 시민들이 이용하고 있는 현재 살곶이 다리는 한양대학교 쪽에만 원형이 보존 되어 있고, 성수동 쪽에는 현대식 콘크리트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날마다 수많은 시민들이 청계천과 중랑천 길을 걷다가 무심코 건너는 다리, 특이한 이름만큼 특이한 전설과 역사를 간직한 다리가 바로 살곶이다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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