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작가들의 무한 창작 공간, 난지창작스튜디오
윤오순
발행일 2011.02.15. 00:00
입주 작가 프로그램 혹은 레지던시(residency) 프로그램은 제한된 기간 동안 창작에 전념할 수 있도록 작가에게 일정 공간을 지원해주는 예술 창작 지원 활동이다. 한국의 경우 국립현대미술관이 운영하는 고양·창동미술창작스튜디오, 서울시립미술관이 운영하는 난지창작스튜디오(이하 난지스튜디오)가 여기에 해당한다. 입주 기간 동안 말 그대로 작업 공간만 제공하는 곳도 있고, 정해진 공간 내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작품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생활비와 함께 일체의 가재도구를 제공하는 곳도 있다. 입주 기간은 운영 기관에 따라 천차만별인데, 1~2개월 단기로 운영하는 프로그램과 1~2년 장기로 운영하는 프로그램이 있다. 입주 작가에게 제공하는 조건도 기간만큼이나 다양하다. 해외에서 참가하는 작가에게는 항공권을 비롯해 초기 정착 비용을 제공하는 경우도 있고, 전기세 등의 부대 경비는 작가가 부담하고 작품 활동 공간만 제공하는 경우도 있으므로 작가 본인이 목적에 맞는 프로그램을 선택하면 된다.
서울시가 지원하고 서울시립미술관이 운영하는 난지스튜디오는 서울 난지도의 유휴 시설인 침출수 처리장을 작업 스튜디오로 리모델링하여 2006년에 처음 개관했다. 총 17개의 작업실이 있는 제1스튜디오가 2006년에 개관했고, 총 11개 작업실로 이루어진 제2스튜디오가 2008년에 개관했다. 이 두 스튜디오 외에 주요 시설로는 침전조와 농축조의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여 리모델링한 난지갤러리, 대형 작품을 위한 공동 야외 작업장, 서울시립미술관의 소장품 중 주요 조각 작품을 전시하고 있는 야외 조각 공원이 있다. 개인 스튜디오가 있는 건물 내에는 휴게 공간, 샤워실, 그리고 세탁기·냉장고·전자레인지·인터넷 전용선 등을 갖춘 다용도실이 마련되어 있다. 난지스튜디오의 기본적인 운영 프로그램에는 창작 및 학술 활동 지원, 오픈 스튜디오 운영, 입주 작가 전시회, 도록 등 출판물 발간, 워크숍, 강연회, 세미나, 국내외 교류 활동, 지역 연계 프로그램 등이 있다. 특히 입주 작가 프로모션에 적극적인데 주요 행사 때마다 서울시립미술관의 학예사들이 대거 참여해 다양한 형태로 작가들의 작품 활동을 지원, 홍보하고 있다.
난지갤러리에서는 입주 작가가 참여하는 ‘릴레이 전시’가 2주마다 열리며, 주말에는 노을공원과 하늘공원을 찾는 이들에게 야외 조각 공원을 개방하고 있다. 현재 난지스튜디오는 모집 공고일을 기준해 만 40세 이하의 미술 작가만 지원할 수 있고, 해당 홈페이지를 통한 온라인 지원을 받는다. 분야는 평면·입체·영상·사진·뉴미디어 등 시각예술 전 분야에 걸쳐 선정하고, 입주 기간은 1년으로 제한하고 있다.
개인 스튜디오 안에는 간이침대가 마련돼 있으며, 입주 기간 동안 수도세와 전기세는 무료이나 기타 스튜디오 안에서 필요한 취사 및 가재도구는 본인이 직접 준비해야 한다. 모집 요강에 따르면 한국 작가만 입주가 가능하지만 4기 입주 작가 중에는 미국 국적의 교포도 있었다. 2009년 초에 쌈지스튜디오가 폐관한 이후 난지스튜디오는 젊은 작가들이라면 한 번쯤 지원서를 냈을 정도로 인기가 많은 레지던시 프로그램으로 급부상했다.
난지스튜디오를 찾아간 날, 4기 입주 작가인 판화가 강정헌 씨를 만날 수 있었다. 4기는 1차 서류 전형에 약 700여 명이 응시해 심사위원 8명의 심사를 거쳐 60명을 1차 선정했고, 그중에서 다시 25명을 최종 선정했다고 한다. 강정헌 작가는 그 영광스러운 얼굴 중의 한 사람이었다. 강정헌 작가로부터 작가의 입장에서 본 난지스튜디오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봤다.
2010년 10월에 입주 1주년을 맞이한 작가는 난지스튜디오에서의 생활에 대해 대단히 만족스러움을 나타냈다. 여름에 모집 공고가 나고 최종 선정된 작가는 그해 가을에 바로 입주해야 하는데 일정이 너무 빡빡한 게 아니냐고 궁금한 마음에 물었더니, 결정이 빨리 나야 또 다른 계획을 세울 수 있기 때문에 발표가 빨리 날수록 작가한테는 좋단다. 만일 모집에 떨어졌다면 바로 다른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지원해야 하니 일리가 있는 말이다.
강 작가에게 난지스튜디오만의 매력을 묻자 무엇보다 1년 동안 무료로 작업 공간을 제공받고 창작에만 전념할 수 있다는 점을 들었다. 이 외에도 다른 지역에서의 교류전, 난지갤러리에서의 릴레이전 등도 난지스튜디오만의 장점으로 꼽았다. 전시를 할 경우, 외부에서 하더라도 도록을 비롯한 홍보물 제작은 물론 다양한 방법으로 작가의 활동을 지원해준다고 한다. 게다가 난지스튜디오의 운영 주체가 서울시립미술관이기 때문에 서울시립미술관이 개최하는 다양한 행사에 초대받을 기회도 많고, 미술관 큐레이터들과의 교류 활동도 큰 매력이라고 전한다.
입주 작가에게는 세 가지 정도 지켜야 할 의무 조항이 있다고 한다. 첫째는 프로그램이 끝나기 마지막 3일간은 스튜디오를 오픈하고, 둘째는 2주일에 한 번씩 열리는 입주 작가 릴레이전에 참여해야 하며, 셋째는 한 달에 14일 이상 스튜디오에 머물러야 한다는 것이다. 이 가운데 셋째는 사실 강제 조항은 아니라고. 해외 전시나 개인 사정으로 14일 이상 체류가 불가능할 경우, 사전에 스튜디오 사무실에 알리면 문제가 없다고 한다. 그러나 워낙 스튜디오가 필요한 사람들인데다 스튜디오 안에서의 창작 활동이 입주 목적이기 때문에 이를 어기는 작가는 거의 없단다.
입주 기간이 끝난 후 특별한 사후 관리 프로그램이 있는지도 궁금했다. 정해진 것은 따로 없지만 프로그램이 끝난 후에도 홈페이지에서 작가 검색을 하면 작가와 작품의 정보를 볼 수 있고, 특히 네트워크 구축에 도움을 많이 준다고 한다. 스튜디오 입주 목적이 작품 창작 활동에 매진하기 위함이지만, 작가들은 지역 교류 활동에도 적극적인 편이라고 한다. 작가가 직접 교류 프로그램을 제안하는 경우도 있고, 계획된 프로그램에 참여하기도 하는데 그 과정은 비교적 자유로워 보였다.
강 작가는 지역 교류 활동의 좋은 예로 보육원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미술 교육 프로그램을 소개했다. 이러한 지역 연계 활동 프로그램에 참여할 경우, 재료비를 비롯해 활동에 필요한 경비는 운영 주체인 서울시립미술관이 전부 부담한다고 한다. 이러한 일련의 활동은 난지스튜디오의 운영 목표 중 하나인 ‘입주 작가와 지역 주민, 일반인과 연계한 다양한 미술 교육 프로그램 및 현장 체험 학습을 통해 예술가들의 창작 세계를 보다 가까이에서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여 현대미술의 이해를 도모하고 예술과 일상이 소통하는 창고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의 고양·창동미술창작스튜디오, 서울시립미술관의 난지스튜디오 이외에도 서울문화재단의 서교예술실험센터·금천예술공장·문래예술공장·신당창작아케이드·성북예술창작센터·연희문학창작촌·관악어린이창작놀이터·홍은예술창작센터, 서울시관리공단의 청계창작스튜디오, 청주시립도서관의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경기도미술관의 경기창작센터, 인천문화재단의 아트 플랫폼 등 전국적으로 약 15개의 국공립 기관이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 가운데 해외 작가들에게 프로그램을 개방한 곳은 그리 많지 않다. 난지스튜디오처럼 모집 요강에 아예 대한민국 국적의 작가만을 대상으로 한다고 못 박아놓은 곳도 있고, 모집 요강에는 국내외 작가를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이라고 나와 있어도 외국어로 된 홍보 자료를 배포하지 않기 때문에 결국 한국인 작가만 대상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각 프로그램 운영 기관은 언어를 비롯해 운영상의 문제점을 들어 해외 작가를 초청하지 못한다고 하는데, 이는 외국어가 능숙한 프로그램 매니저를 채용하는 등 여러 가지 방법상의 고민이 필요한 부분이다.
장르나 국경을 초월한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제대로 운영할 경우, 프로그램 내에서 국내외 작가들 간의 활발한 교류 활동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현대 예술 시장을 세계에 알릴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프로그램에 참가한 해외 작가들로부터 우리나라 작가들이 놓치고 있는 해외 문화·예술 시장에 대해 직접 들어볼 수도 있고, 그들 나라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이나 전시 정보도 교환할 수 있을 것이다. 또 한국에 온 해외 작가들이 입주 작가뿐만 아니라 주변 지역의 예술가나 시민들과 함께 교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운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 외국 작가들이 한국에서 활동한 후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자국으로 돌아가게 되면 그들이 잠시 머물다 간 한국의 서울, 인천, 청주, 경기도 등의 지명이 그들의 작가 프로필에 기재될 것이고, 그들의 입을 통해 현지인이나 지인들에게 알려질 것이다.
레지던시 프로그램의 운영 목적이 유망한 작가들에게 개인 창작 스튜디오를 제공해 보다 안정된 작업 환경 속에서 창작 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대한민국의 역동적인 예술 시장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좋은 통로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레지던시 프로그램 운영 주체들은 이를 잘 활용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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