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긴 경주가 아닙니다!

시민기자 시민리포터 신운영

발행일 2011.02.01. 00:00

수정일 2011.02.01. 00:00

조회 2,536

1월 26일 오후 3시, 은마아파트 사거리에서 461번 버스를 탔다. 일원동에 있는 대모산을 가기 위해서였다. 등산도 산책도 즐기지 않아 꽃피는 봄에도 산행 한 번 않다가 영하 5도를 밑도는 추운 날씨에 느닷없이 길을 나선 건 순전히 그 산에 있다는 불국사를 가보기 위해서였다.

얼마 전, 경주 말고 또 다른 불국사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처음엔 믿어지지 않았다. 우리나라는 산마다 절 없는 곳이 거의 없다. 사찰의 개수는 지난 해 4월 문화관광부에 등록된 935개에 미등록까지 합치면 전국에 2만여 개가 넘는다. 1만 5천여 개인 전국의 편의점보다 많은 수다. 같은 이름의 절이 있는 건 당연하다. 부석사, 조계사, 해인사 같은 이름이 전국 곳곳에 있는 것처럼.

하지만 불국사는 다르지 않는가. 불국(佛國)이란 ‘부처의 나라’라는 뜻이다. 이름만으로도 곧 부처님과 맞먹는 위상을 지닌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국사는 경주에 있는 절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서울에도 불국사가 있다. 이상한 것은 석가모니를 모신 대웅전이 없단다. 약사여래를 주불로 모신다고 했다.

버스를 타고 일원동 한솔아파트 앞에서 내려 대모산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등산객들의 발에 다져진 눈길이 제법 미끄러웠다. 대모산은 높이 293m의 나지막한 산으로 구룡산과 더불어 주민들의 휴식 공간으로 사랑받는 곳이다. 은마 사거리에서 버스로 10여분 밖에 떨어지지 않았는데도 공기가 달랐다. 산 속 옹달샘 물처럼 차고 달았다. ‘도심 속에 산중 기도도량 불국사’. 오르막 입구에 서 있는 표지판은 속세와 극락의 경계가 여기라고 일러주는 듯 했다.

불국사로 향하는 폭 2.5m의 오르막길은 가파르지 않아 체력이 약한 사람도 걸을 만하다. 푸른 하늘과 칼칼한 바람, 산등성이 위에 한 뼘쯤 남아있는 겨울 햇살을 동무삼아 부지런히 올라갔다. 20분 정도 지났을까? 숨이 턱에 찬다 싶을 무렵 절이 나타났다. 맑은 풍경 소리가 먼저 객을 반겨주었다. 절 마당으로 올라가는 돌계단 옆에 ‘불국사 연혁’이 붙어있다.

절은 고려 공민왕 때 창건했다. 창건 당시 이름은 약사 부처님을 모신 절이라 해서 약사절로 불렸다. 약사부처의 등장에는 전설이 있다. 한 농부가 소를 몰고 논길을 가는데 소가 갑자기 멈추었다. 농부가 앞으로 가보니 돌부처가 땅 속에서 솟아 나왔다. 농부는 부처를 논두렁에 모셔놓고 기거할 곳을 추천했다. “봉은사가 큰 절입니다. 그리로 가시지요.” 그러나 부처는 요지부동이었다. 하는 수 없이 농부는 부처를 뒷산에 모셨다. 그 뒤 진정국사가 지금의 자리에 절을 지어 부처를 봉안했다. 600여 년 전의 이야기다.

불국사로 이름을 바꾼 것은 조선말. 고종 17년에 대모산 남쪽 헌인릉에 물난리가 났다. 고종이 약사절 주지에게 해결책을 물었다. “대모산 동쪽의 수맥을 차단하시옵소서.” 주지의 말대로 하니 신기하게 물이 나오지 않았다. 이를 고맙게 여긴 고종은 불국정토를 이루라는 뜻에서 불국사란 이름을 내렸다. 그러나 6.25 전쟁 때 건물이 모두 소실되고 돌부처인 약사여래불만 살아남았다. 1964년 관악산 삼막사 권영선 주지스님이 법당, 칠성각, 나한전, 요사 2동을 건립했다. 현재의 불국사는 1993년 현 주지 김영길 스님이 새로 건립한 것이다. 나한전을 제외하고는 모두 최근 건물이다.

11개의 돌계단을 밟아 절 마당으로 들어섰다. 한 줄기 바람이 불자 법당을 울타리처럼 둘러싼 소나무 숲으로부터 눈가루가 날렸다. 추위 탓인지 늦은 시간 탓인지 인기척이 없다. 아담한 절이 한 눈에 들어온다. 마당을 중심으로 아늑하게 탑과 건물이 배치되어 있다. 정면에 5층 석탑과 약사전이 보이고, 오른편에 삼성각, 왼편에 단층 건물 1채가 보였다. 나한전은 약사전의 왼쪽 뒤편에 높이 올려져 있다.

나한전은 부처님의 제자인 아라한을 모신 법당이다. 건물 중에서는 가장 오래되었다. 나한은 아라한의 준말이다. 아라한은 성자라는 의미로 일체의 번뇌를 끊고 해야 할 일을 완성하고 다시 더 배울 바가 없으며(無學), 세상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공양을 받을 가치가 있는 경지에 도달한 사람을 말한다. 석가의 제자 중에 가장 뛰어난 16명을 십육나한이라고 하는데 나한전에는 부처님과 함께 십육나한을 모셨다.

대모산 불국사에는 석가모니를 모신 대웅전이 없다. 여기는 본존이 약사전이다. 약사전에는 불국사의 상징인 약사여래불이 모셔져 있다. 약사여래란 모든 중생의 병을 고쳐주는 부처님 즉, 약사 부처님(Medicine Buddha)을 말한다. 약사여래는 왼손에 약단지를 들고 있어 다른 부처와 구분된다.

600년이 넘은 약사여래불은 불국사의 긴 내력을 말해준다. 높이는 79.5cm. 몸에 비해 얼굴이 좀 크다. 귀도 큼직해서 환자들 말을 잘 들어줄 것 같다. 흰 피부에 검은 머리인데 머리에는 나발(부처님의 곱슬머리)이 새겨져 있다. 약사여래 앞에서 가족의 건강을 기원해봤다.

서양에서 의사들이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하듯이 옛 의원들은 약사여래불 앞에서 자비의 인술을 베풀어달라는 기도를 올렸다고 한다(이규태, 한국인의 주거문화 참고). 약사여래불상은 2007년 5월 10일 서울특별시 문화재자료 제36호로 지정되었다.

절이 작아 둘러보는데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는다. 약사전을 나오는데 돌계단으로 누군가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절의 사무장 김현욱씨였다. 어린아이 둘과 함께였다. 여기서 사냐고 물었더니 출퇴근한단다. 스님 세 분이 계시는데 모두 출타하셨다 한다.

내려오는 길에 잠시 시내 쪽으로 눈을 돌렸다. 강남은 콘크리트 건물들로 빈틈이 없다. 대모산의 우거진 숲은 청량하기만 한데 콘크리트 숲은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혀온다. 저만치 올라갈 때 보았던 표지판이 눈에 들어온다. 극락과 속세의 이정표. 약사여래부처님 덕분에 모처럼 산행 잘했다.

- 가는길 : 지하철 3호선 수서역 6번 출구, 지하철 3호선 일원역 4, 5번 출구
               버스 401, 402, 4419, 461, 강남01(마을버스) 승차 후 일원동한솔
               아파트 하차
- 문의: 불국사 ☎02)445-4543

#불국사 #대모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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