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와 함께 물길 따라 걷는 문학순례길

시민기자 이은자

발행일 2010.10.15. 00:00

수정일 2010.10.15. 00:00

조회 2,937


하이서울페스티벌 기간 동안 꽤나 많은 문화행사에 직접 참여했으면서도, 또 한 가지 혼자서 잔뜩 기대하고 있었던 문학 프로그램이 있었다. 그것은 연희문학창작촌의 가을문학축제 중 하나로 선유도에서 연희문학창작촌까지를 작가와 함께 대화하며 걷는 ‘작가와 함께 걷는다’ 행사였다. 매스컴이나 펜 사인회를 통해서가 아니라, 작가들을 만나 2~3시간을 걸으며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은 쉽지 않은 기회다. 함께 한 작가는 소설가 이순원, 김선재, 젊은 시인 서효인이었다. 출발지인 선유도에서도 다양한 문학축제가 열리고 있어서 출발부터 도착까지가 온통 문학에 발을 담그고, 문학으로 물든 문학순례였다.

과거의 정수장 건축구조물을 재활용하여 국내 최초로 조성된 환경재생 생태공원 겸 '물(水)공원'인 선유도는 양화대교 중간에 있다. 총부지가 11만 4000㎡나 되며, 테마공원인 수질정화원, 수생식물원, 녹색기둥의 정원, 시간의 정원 등의 시설과 디자인서울갤러리, 소프트서울전시실, 강연홀, 야외원형소극장, 안개분수, 월드컵분수대, 선유교, 선유정, 환경물놀이터 등 독특하고 다양한 시설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지난 봄에는 안양천에서 절두산까지 물길 따라 걷는 순례길을 다녀왔는데, 가을에는 거꾸로 강 건너부터 반대편의 물길 따라 걷는 문학 순례길이었다. 은빛으로 출렁이고 인파로 생기가 도는 한강변으로 내려와 이야기꽃을 피우며 걸었다. 양화대교와 성산대교 사이 강변 북단에 있으며, 길이가 6.2㎞나 되는 망원 한강공원에는 여러 가지 운동시설과 낚시터, 보트장, 수영장, 모터보트나 수상스키 등을 이용할 수 있는 수상업체, 유람선선착장, 수상훈련장 등이 있었다. 확 트인 공원 그리고 수상에서의 레저 활동이 건강한 서울, 건강한 시민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아 한강에서 얻는 것이 참 많다는 생각으로 뿌듯했다.



제주도에 올레길이 있다면, 강원도에는 바우길이 있다며, 대관령에서 시작해 동해바다까지 이어지는 바우길을 주민들과 함께 힘을 모아 일군 이순원 작가의 바우길 사연을 들으며 걷는 동안, 어느 새 한강변을 지나 한강과 홍제천의 합류지점까지 와버렸다. 작가는 강릉 출신으로 장편소설 <압구정동엔 비상구가 없다>와 <그대 정동진에 가면> 등으로 잘 알려진 인기작가다.

3인의 작가들과 대화를 나누며 걷는 참가자들은 단풍이 물드는 한강변을 지나, 석양의 홍제천을 걷는 길이 마치 한 편의 시와 같다며 매우 흡족해했다. 2006년 등단한 29세의 젊은 시인 서효인은 도시의 비주류 인생들의 정서를 생생하게 담은 시 50편이 실린 <소년 파르티잔 행동 지침>이란 첫 번째 시집을 내놓아, 길 위에서도 벌써 젊은 독자들과 소통이 잘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이미 '2010 연희 여름특강'에서 ‘80년대를 산 소년 파르티잔의 시 쓰기 분노 체험담’으로 일부 독자들에게 시 쓰기의 신선함과 독특함, 재미를 선물한 바 있다. 여류소설가 김선재 씨 역시 출발부터 독자들에 둘러싸여 도착할 때까지 인기가 많았다. 소설로는 <어두운 창들의 거리>, <코끼리가 들어온 집>이 있고, 시집 <피오르드식 정원>과 <배후>도 있다. 이미 수필가로 등단했고 70 가까운 나이에 또 시인 수업을 열정적으로 하고 있는 참가자 김경애 씨는 3시간이나 걸었는데도 시와 수필을 얘기하며 걷는 길이라 아주 즐겁고 유익하고 보람 있었다며 동인카페에 올리겠다고 연신 카메라에 한강풍경과 홍제천변의 가을꽃들을 담기도 했다.

홍제천에 대해서는 설렘과 기대가 남달랐다. 디자인한마당에서 서대문구의 홍제천 과거 모습을 담은 ‘그린 정원 파노라마’라는 주제로, 생태하천으로 복원된 홍제천을 담은 친환경 작품 전시를 관심 갖고 봤기 때문이다. 전시작품 중에 과거 홍제천에서 볼 수 있었던 빨래하는 여인들 모습을 모티브로 하여 역사와 문화와 자연이 함께 숨쉬는 서대문을 표현한 ‘빨래하는 여인들’이란 작품이 떠올라 그 시절, 그 옛날의 풍광이 눈앞에 펼쳐졌다.



홍제천은 북한산(北漢山)의 문수봉·보현봉·형제봉에서 발원해 종로구 평창동 49번지에서 시작해 서대문구 홍제동과 홍은동을 굽어 돌아 연희동, 가좌동을 지나 마포구 성산동, 망원동을 거쳐 한강으로 흘러간다. 수계로는 제1지류인 불광천(佛光川)과 제2지류인 녹번천(碌磻川)이 있고, 경의 1철교·2철교와 12개의 도로교가 놓여 있다. 조선시대에 이 하천 연안에 중국의 사신이나 관리가 묵어가던 홍제원(弘濟院)이 있었던 까닭으로 '홍제원천'이라고도 하며, 하천 본류에 모래가 많이 싸여 물이 늘 모래 밑으로 스며들어 흘렀던 까닭에 일명 '모래내' 또는 '사천(沙川)'으로 불리기도 했다.

홍제천으로 접어들어 1km 정도 가면 월드컵 경기장으로 나갈 수 있다. 홍은동 백년교 부근을 홍제천의 중심부로 삼고, 인근 안산 산자락 밑을 물레방아와 황포돛배 등 다양한 시설로 정비해 놓은 곳까지 갔다가 다시 연희동 쪽으로 가는 방법도 좋겠지만, 어둑어둑한 해거름이어서 일행은 연희 삼거리 방향 중간 지점에 있는 연희문학창작촌을 가기 위해 홍제천 건너편으로 가서 연희동 육로로 올라갔다. 이때까지도 이순원 작가의 바우길 이야기는 1구간부터 10구간까지 계속됐다. 소설보다 더 진하고 흥미로운 바우길 이야기를 들으며, 어느 새 ‘물들다’의 플래카드가 동네 입구에서부터 펄럭이는 연희문학창작촌에 도착했다.

완전히 까만 밤이 돼버린 연희의 솔밭은 여전히 문학터로서의 빛깔을 내뿜고 있었다. 소설가 은희경 씨가 이곳 창작촌에서 쓴 인터넷 소설 <소년을 위로해줘>의 낭독회가 있어서 걷기 일행은 그대로 야외 열림무대에 앉아 관객이 됐다. 프로젝트 그룹 이루펀트(Eluphant)의 멤버인 키비의 노래 중 '소년을 위로해줘'라는 곡이 있어서 이루펜트의 열광적인 공연까지 함께 있었다. 출발지인 선유도와 도착한 연희문학창작촌이 풍성한 문학행사를 하고 있어서 여느 도보여행과는 다른, 아주 특별한 문학순례에 참가자 모두는 환호하였다.

대낮에 버스나 전철로 연희문학창작촌을 찾아가려면 좀 번거롭고 복잡하다. 그런데 한강변과 홍제천변을 따라 걷는 길은 참으로 단순하고 가까워서 물길 따라 걷는 이 코스를 적극적으로 추천한다. 외국인과 나들이 계획이 잡힌다면 한 번쯤 시도해 봐도 좋을 것 같다. 연희창작촌은 평일이면 자유롭게 차 한 잔과 함께 얼마든지 산책할 수 있다.(문의: 02-324-4600, 4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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