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직원, 투어에 참석한 관람객 모두 전시의 일부다

시민기자 이은자

발행일 2010.09.30. 00:00

수정일 2010.09.30. 00:00

조회 3,111


세계 각국의 미디어아트를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서울국제미디어아트비엔날레인 ‘Media City Seoul 2010’이 서울시립미술관에서 9월 7일부터 11월 17일까지 열린다. 벌써 20일이 지난 9월 28일 저녁시간대에 시민기자와 블로거, 시민작가들을 초청하는 도슨트 투어가 있었다.

미술관 안으로 들어가 절차를 마치고 자리를 옮기는데, 리플렛을 건네는 여직원이 느닷없이 “김정은이 후계자가 됐다”고 큰소리로 말했다. 마치 '삐라'를 주워든 것 같았다. 종일 뉴스를 접하지 못한 터라, 빅뉴스에 귀가 쫑긋해지면서도 황당해하며 바라보고 있는데 영어로도 한 마디 하는 거였다. "This is New" 같았다. 오늘의 뉴스 헤드라인을 관객에게 던지며, 답변을 기다리고 반응을 살피는, 이것도 이번 행사에서 중요한 시추에이션이고, 글 첫머리처럼 행사의 문을 여는 첫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도슨트로부터 설명을 듣고 나서야 고개를 끄덕였다.



2000년부터 격년제로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개최해왔으며 올해로 6회째를 맞는 서울의 유일한 국제 비엔날레인 ‘미디어시티 서울 2010’. 참여 작가 대부분은 미디어 작가로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미디어의 다양한 요소들을 작품에 활용하고 있다. 인쇄물, 도시 폐기물, 사진과 비디오의 기술적 요소, 다큐멘터리와 픽션적 형식들을 차용하고 재조합하여, 관객들에게 일련의 허구적인 상황을 암시함과 동시에 현대사회를 바라보는 또 다른 시각을 열어줄 것이라고 했다. 또한 국내 비엔날레 행사로서는 최초로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활용하였고, 움직이는 영상들을 직접 보고 들을 수 있도록 전시 가이드북과 오디오 가이드가 무료로 제공되기도 하고, 홈페이지에서 다운받을 수 있어서 누구나 전시에 관한 다양한 정보를 쉽게 공유할 수 있고,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전시 총감독을 맡은 김선정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전시 주제를 ‘신뢰(Trust)’로 정하고, 21세기 현대 기계문명의 발전과 가능성에 대한 찬사가 아닌, 20세기 초 미디어의 출현과 함께, 오늘날 현대사회의 구조가 어떻게 변화되고 있는지 되돌아보고자 한다며 이번 전시에 대해 설명했다. "미디어의 보급은 개인으로 하여금 미디어를 적극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주었으며, 실제로 현대인은 일상생활에서 미디어와 분리되어 단 하루도 생활할 수 없다. 개인은 미디어의 크고 작은 커뮤니티들에 참가하면서 사회정치적 담론들을 공유하고 발언하며, 더 나아가 대안의 커뮤니티를 스스로 만들어내기도 한다. (중략) 이번 전시는 ‘신뢰’를 통해 구체적으로 어떠한 사회정치적 이념을 시사하고자 하지 않으며, 미디어의 기술적이고 학구적인 이론을 제시하고자 하지 않는다. 하지만, 미디어가 가지고 있는 폭넓은 의미를 좀 더 인간적인 방법으로 접근하고자 하며, 좀 더 개인적인 시각에서 현대사회의 트라우마를 공유하고자 한다.”

이러한 이해와 바탕 위에서 이루어진 도슨트와의 투어 감상은 우선 작품을 건성으로 지나지 않고, 작가의 의도와 방향에 귀 기울이며 몰입할 수 있어서 무엇보다 유익했다. 도록을 받아들고서야 첫 작품이 바로 현재 베를린에 거주한 티노 세갈의 <이것은 새롭다, This is New>라는 작품이라는 것을 알았다. 미술관 입구에서 수표원과 관객과의 대화를 즉흥적으로 끌어내는 일련의 상황극인 것이다. 다음 작품 역시 로비에 화려한 꽃장식물인 네덜란드 빌럼 데 로이의 <부케 7>이었다. 작가와 플로리스트 김다라 씨의 협업으로 진행된 이 작품은 다양한 종류와 크기의 분홍색 꽃으로 생화와 조화가 반반씩 섞여 있는데, 무엇이 진짜이고 가짜인지 그 구분이 사라지면서 경계가 모호해지는 과정을 담고 있단다. 도슨트 정보람 씨의 해설이 없었다면 전시를 축하하기 위한 화려한 꽃 장식이라고 그냥 지나쳐버렸을 것이다.



2008년 하계올림픽이 열린 북경을 소재로 한 84분짜리 필름, 사라 모리스의 <베이징>이나, 시카고에 살고 있는 폴란드 이민들의 축제인 앨런 세큘라의 엄마와 아이, <폴로니아의 맛>도 투어단의 이목을 끌었다. 국내작가 노순택의 <얄읏한 공>은 ‘평택 대추리의 너른 들녘에 우뚝 솟은 흰 공 모양의 대형 구조물이 대체 무엇인가’를 추적해 가는 과정을 담고 있는데, 지름 30m인 거대한 고성능 레이더라고 한다. 8년이 지나도록 그 정체가 무엇인지 아무도 모른 이 레이더돔은 주위 풍경과 묘하게 어울리며 자신의 존재를 은폐 또는 부각시킨다는 해설이나 국어사전 어디에도 없는 ‘얄읏한’도 ‘얄밉고 야릇하다’의 합성어라는 도슨트의 설명이 숲 속에서 새하얗게 드러낸 공의 정체에 시선을 오래 머물게 했다.

3층까지 이어지는 90분 동안의 투어, 한 작품 한 작품 꼼꼼하게 설명해 주는 도슨트의 안내로 엉뚱하고 황당하고 괴기스럽기까지 한 작품들을 지루하지 않게 친근감과 흥미진진으로 잘 감상할 수 있었다. 특별히 소개하고 싶은 작품들이 있다. 그 중 하나는 중국의 첸 샤오시옹, 한국의 김홍석, 일본의 오자와 츠요시가 결성한 프로젝트 협력그룹인 ‘시징맨’에 관한 것이다. 북경, 남경, 동경은 존재하지만, 서경은 지구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데 세 작가는 자신들 스스로를 서경인(시징맨)으로 정하고 서경이라는 도시를 둘러싼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1장은 '시징을 아세요?', 2장은 '이것이 시징입니다', 3장은 '웰컴투 시징', 4장은 '시징을 사랑해요'이다. 2장의 경우 서유기가 각색돼 다양한 캐릭터들이 인형극에 등장하여 관심을 끌었다. 3장 시징 올림픽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이 열리는 동안 시징맨들은 베이징으로 가서 자신들만의 올림픽을 개최하는데 담뱃불 성화에서 수영장으로 표현된 세 개의 파란 세수대야, 피망 메달 수여에 이르기까지 등장하는 소꿉놀이 수준의 도구들 때문에 폭소를 자아내게 했지만, 그들만의 유토피아 표현이 내내 씁쓸하게 했다.



베트남 종전 이후 미국으로 건너간 베트남인 2세의 사회, 문화적 고민을 주제로 한 작품인 <힙합의 역사를 샘플링하는 힙합의 역사 : 레드리믹스>는 ‘베트남’이라는 단어가 들어있는 미국 힙합 60여 곡을 리믹스한 음악이 나오는 설치작업이다. 베트남식 구식자전거 위에 놓인 스피커를 통해 강렬한 힙합사운드가 울려퍼지는데, 미국을 대표하는 힙합과 구식자전거의 어색한 조합은 미국문화 속으로 편입되고자 하는 열망을 지닌 동시에 폭력과 전쟁의 과거를 뛰어넘고자 투쟁하는 베트남인 2세들의 사회, 문화적 딜레마를 반영한다고 한다. 그냥 명동 같은 번화가에서 울리는 음악이 흘러 나오는 빨간 스피커라고 단순하게 바라봤는데…….

율리카 루델리우스의 <영원히, Forever>는 중년을 넘긴 5명의 여성이 아름다움과 행복에 대한 질문에 답하는 인터뷰 영상이다. 질문은 없고 답변의 모습만 보여주는데 내면의 아름다움이 외적인 미로 연결됨을 시사하면서도, 한결같이 자신감이 넘치고 여유로운 그녀들의 모습을 통해 자화상을 그려보게 했다. 라이너 가날의 <나는 칼 맑스를 증오한다>는 작품은 2045년의 베를린을 배경으로 한 독일여성이 맑스 동상을 향해 중국어로 독일과 유럽은 중국의 거대자본과 바른 성장에 의해 더 이상 설 곳이 없어졌음을 토로하고 있는 장면을 담고 있다. 서양인이 중국어로 하소연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중국을 거부하면서도 이미 중국화 돼버린 미래의 아이러니 상황을 보여주는, 서구의 중국에 대한 두려움을 표현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것은 2045년이 아니라, 지금 지구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 분노라는 생각이 들어, 실제로 동서가 다 우려하는 현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투어를 마치고, 시립미술관 지하1층 제1강의실로 내려가 30여 분 간담회 시간을 가지면서 감상한 작품들에 대한 정리를 해볼 수 있었다. 이번 행사의 주제가 ‘신뢰(Trust)’인 이유도 떠오르는 작품들 속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이번 비엔날레는 서울시립미술관뿐만이 아니라, 시울시립미술관 경희궁 분관, 서울역사박물관, 이화여고 심슨기념관 등에서도 함께 펼쳐지고 있다. 11월 17일까지 여유롭기도 하다. 늦가을에서 초겨울까지 허허로운 마음들을 가족과 친구, 연인과 함께 미디어아트의 새로운 주인공이 돼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우리들 사이에 신뢰를 가로막은 것들이 또 무엇인지 성찰하면서.

미디어시티서울 2010 안내

- 전시일정 : 9월 7일 ~ 11월 17일 (서울시립미술관 본관)
                  9월 7일 ~ 10월 24일 (서울시립미술관 경희궁 분관, 서울역사박물관, 심슨 기념관)

- 관람시간 : 평일: 10시 ~ 21시, 주말 및 공휴일: 10시 ~ 19시(9, 10월),
                 10시 ~ 18시(11월), 월요일과 10월 3일(개천절) 휴관
               * 도슨트투어 : 1일 2회(11시, 14시)

               * 입장은 관람종료 1시간 전까지 가능(관람 무료, 오디오가이드 사용시 신분증 지참 요)
- 문의 전화 : 02) 2124-8981 또는 다산콜센터 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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