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한 잔과 함께 한 최부잣집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admin

발행일 2010.07.20. 00:00

수정일 2010.07.20. 00:00

조회 2,397

'남산골 우리종가 이야기'가 매월 남산골 한옥마을에서 열리고 있다. '남산골 우리종가 이야기'는 ‘명문 종가이야기’의 저자 이연자 선생이 전국에 산재하고 있는 전통 종가를 소개하고 있는 한옥마을의 독특한 체험 프로그램의 하나이다. 이번 달 행사는 다섯 번째로 오랜 세월동안 명예와 부를 유지한 비결이 화제가 된 ‘경주 최부잣집의 사성공파 최의기의 종가’ 이야기와 우리 전통차인 오미자차 시음이 함께 소개되었다.

경주 최부잣집은 10대를 걸쳐 300년간 부를 유지한 우리나라 부의 상징인 명문 종가였다. 그 정신의 기둥이 된 것이 집안을 다스리는 가훈인 ‘육훈(六訓)’과 자신의 몸을 닦는 ‘육연(六然)’이었다. 이 날 해풍부원군 윤택영댁 재실의 마당 한가운데에는 경주 최부잣집의 전통음식과 백자에 잣을 띄운 오미자차의 붉은 향기가 함께 전시되었는데 조금은 색다른 종가의 먹빛 가훈(家訓)이 전시장을 둘러보는 시민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그리고 차를 마시며 육훈과 육연을 조용히 읊조리는 목소리도 여기저기서 간간히 울렸다.

“첫째는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의 벼슬을 하지 마라. 둘째는 만 석 이상의 재산을 모으지 말며 만 석이 넘으면 사회에 환원하라. 셋째는 흉년기에는 남의 논밭을 매입하지 말라. 넷째는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다섯째는 며느리들은 시집온 뒤 3년 동안 무명옷을 입어라. 여섯째는 사방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라는 육훈(六訓)의 가훈을 통해 부를 이루는 근본이 검소함, 절제, 나눔에 있음을 일깨워 주고 있었다. “스스로 초연하게 지내고, 남에게 온화하게 대하며, 일이 없을 때는 마음을 맑게 가지고, 일을 당해서는 용감하게 대처하며, 성공했을 때는 담담하게 행동하고, 실의에 빠졌을 때는 태연히 행동하라”라는 육연(六然)도 귀담아 들을 이야기였다. 가헌과 처신은 종손 최염(77세) 씨가 어려서부터 어른들께 문안을 드릴 때 선친이 하루에 한 번씩 꼭 써보게 했던 정무군 할아버지 때부터 내려오는 최부잣집만의 중요한 교육비법의 하나였다.

종로구 평창동에서 왔다는 최재준(64) 씨는 “인내천 사상의 교리로 동학을 창시한 최제우와 그를 이은 최시형이 경주 최씨의 조상인데 선조에 대한 뿌리의 연결고리에 대한 의문이 평소에 많았지만 풀 곳이 없었어요. 그래서 사성공파인 최씨 문중의 한 자손으로서 경주 최씨 종가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일부러 시간을 내서 왔어요. 어떤 신문 칼럼에서 오늘 행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문중에 대한 자부심이 굉장이 크거든요”라고 말했다. 방문객 중에서 유난히 종손과의 대화에서 질문이 많아 행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까지 이어졌다.

경주 최부자는 최치원이 17세손인 최진립(1568~)과 그 아들 최동량이 터전을 이루고 손자인 재경 최국선으로부터 최의기, 28세손인 문파 최준(~1970)에 이르는 10대 약 300년 동안 만석군의 부를 누린 일가를 일컫는 말이라고 한다. 이날 행사를 위해 특별히 참석한 경주 최부잣집의 종손 최염 씨는 “재물은 분뇨와 같아서 한 곳에 모아두면 악취가 나는 법이지. 그러나 골고루 뿌리면 정말로 좋은 거름이 되지……”라며 서로 나누고 사는 것이 진정한 부의 출발임을 상기시켜 주면서 종손이 들려주는 이야기의 대미를 장식했다.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것일까? 취재를 통해 진정한 부(富)란 물질적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풍요로운 마음가짐에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가까운 사람을 기쁘게 하면 멀리 있는 사람도 찾아온다(近者悅 遠者來)'라고 공자는 말했다. 절제를 통해 나눔과 검소한 삶을 살다보면 자연히 사람이 모일 테고 사람이 모이면 부와 명성도 따라오지 않겠는가. 300년 동안 마르지 않고 샘물처럼 솟아나는 최부잣집 부의 비법은 인(人)을 바탕으로 한 사랑의 실천에 있었을 것이다. 또한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정신, 즉 부와 권력과 명성이 사회에 대한 도덕적 책임으로 이어진 최부잣집 가문만의 엄격한 가헌을 잘 실천하고 계승해 왔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예(禮)와 차(茶)의 향기가 있는 '남산골 우리 종가 이야기'에 가면…

행사체험에는 남산골을 방문한 수많은 내외국인과 어린이들이 참여했다. 또한 종가문화 사진전, 종가에서 내려오는 종부의 음식과 레시피 전시 등 입맛을 돋우는 오마자차와 인절미 시음회도 가졌다. 특히 전시장은 이연자 선생의 섬세한 준비와 정성 덕분에 종가의 검소한 기품이 느껴지는 다구들이 있어서 종가의 음식과 차를 더욱 군침 돌게 했다. “차는 내 삶의 오아시스다”라며 차 문화 연구로 평생을 걸어온 이연자 선생은 차 연구를 하다가 종갓집 차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종가 이야기 전도사에까지 이른 계기가 되었다고 했다. “차례상에도 차(茶)를 올려야 된다”며 차례상 차림에 대한 선생님의 독특한 시각도 들었다. 다음 9월 프로그램은 추석특집으로 차례상과 제례에 대한 행사가 준비될 예정이라고 했다. 예(禮)와 차(茶)의 향기가 있는 '남산골 우리 종가 이야기'에 가면 매월 셋째 주(토ㆍ일요일 오전 11시~오후 4시, 8월 한 달만 쉼) 해풍부원군 윤택영댁 재실의 마당에서 이색적으로 펼쳐지는 전국 명가의 특별한 전통문화를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시민기자/석성득
ssd631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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