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이란 이름에도 역사가 있다
admin
발행일 2010.04.28. 00:00
한양(한성)시대 역성혁명에 성공한 조선 태조는 3년(1394) 10월 18일(양력 11월29일) 한양으로 천도를 단행한다. 이는 한반도에 ‘서울의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획기적인 사건이다. 태조 이성계로서는 적지 않은 피를 흘리고 왕위에 오른 만큼 파란의 현장을 떠나 새로운 곳에서 정치를 펴고 싶은 심리적 요인도 있었겠지만, 불안한 인심을 달래고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였음을 실증으로 보여주고자 하였음에 다름 없다. 즉, 지금까지의 개성은 왕씨의 나라이지만 한양(漢陽)은 이씨의 세상인 것을 대내외적으로 선포해 보인 것이다. 조선의 개국과 함께 한 한양(서울)천도는 삼국시대부터 병참, 군사적인 요충지로만 인식되어 왔던 서울지방이 이후 6백여 년간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로 성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태조는 한양천도를 결정한 그 해에 ‘신궁궐조성도감(新宮闕造成都監)’을 설치하여 새로운 수도의 도시계획을 완성하게 하는데, 이때의 도시계획은 조선 초부터 오늘날까지 서울 시가지계획의 기본이 되고 있다. 태조는 4년(1395) 6월 6일 한양부를 한성부(漢城府)로 개칭하였다. 고려시대부터 3경의 하나로 남경(南京)으로 불리우던 한양은 이날로서 옛이름이 되고 ‘한성’이 조선왕조의 새 서울 명칭이 된 것이다. 도읍을 개성으로부터 옮겨온 지 8개월 만에 이렇게 한성부라 고쳐 부르게 된 데에는 각별한 뜻이 담겨 있다. 곧 한양은 새 도읍지의 땅 이름이요, ‘한성’은 새 서울 건설을 다짐하는 새 나라의 수도 명칭이라는 의미다. 이 한성부는 태조 4년 6월 이래 제27대 순종 융희(隆熙) 4년(1910) 9월까지 만 515년 동안 서울을 일컫는 정식 이름이었다. 경성시대 경술국치(1910) 후 조선총독부는 서울의 행정구역과 기능을 크게 축소, 한성부를 경성(京城)부로 개칭하고 경기도 관할로 격하해 수도의 위상을 훼손시켰다. 그 다음해에는 성내를 5부로, 성외를 8면으로 개편하였다가 1914년에 이르러서는 8개면 중 대부분을 고양군으로 편입시켜 경성부의 행정체계는 성내의 5부로 축소시켰다. 이 제도는 해방 때까지 이어진다. 서울시대 1945년 우리는 36년 일제의 압제에서 해방되었다. 1945년 9월 9일 하지 미군사령관이 조선 총독 아베에게서 항복문서를 받은 다음 컬로프 소령을 서울시장에 임명하였다. 당시 미군정은 해방 후 1년이 지나도록 서울의 명칭에 관해서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당연히 미 군정청 지발행정처가 사용한 서울의 공식 명칭은 일제 시기의 이름인 ‘경성부’일 수밖에 없었다. 1946년 8월 14일 조선주둔 미군사령관인 A.L.러쉬 소장이 “헌장에 의해 서울시가 경기도 관할에서 이탈해 하나의 도 수준으로 승격됐다”고 발표했다. 러쉬 소장이 언급한 헌장의 이름이 바로 ‘서울시 헌장’이다. 이로서 미 군정청은 ‘서울시 헌장’ 제1조에서 우리나라 수도의 이름을 ‘서울(SEOUL)로 명확히 사용하기 시작했다. 미 군정청은 1946년 9월 18일 ‘서울특별시의 설치’라는 군정법률 제106호를 공표하여, 9월28일 법이 발효되며 비로소 새 공식명칭을 얻었다. 미 군정은 서울을 경기도에서 분리시킨 뒤 지방자치제를 시행하고자 했다. 이때 참고한 것이 미국 버지니아주 등지에서 시행되고 있던 ‘독립시(Independent City)' 제도였다. 독립시는 중앙정부에 직속된 독자적인 지방정부로, 모나코나 바티칸과 같은 '도시국가'와는 다른 개념이다. 그런데 원래 영문으로 작성됐던 군사법령을 직역하면 '서울독립시(Seoul Independent City)'가 돼 어색하였기 때문에 결국 ‘서울특별시’로 번역됐던 것이다. (이 때문에 일부 서적에서는 ‘서울특별자유시’로 번역한 것도 발견된다.) 서울이란 명칭의 유래 서울이란 말은 한글이 창제되기 전부터 우리민족이 써오던 정겨운 순수 우리말이다. 임금이 있는 도성을 뜻하는 말로, 삼국시대 때부터 써 왔으며 ‘이두’로 적다가 ‘한문’으로 그리고 드디어 한글로 기록되기 시작했다. [삼국유사]에서는 서벌을 ‘지금 우리말로 경(京)의 뜻을 서벌이라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라고 주기하여 신라 국호의 하나인 서벌은 한자 ‘경(京)’과 같은 말이라고 하였으니 그것은 신라의 국호 서벌이 곧 신라 수도의 명칭이기도 했던 연유이다. 신라에 한문이 제일 늦게 들어왔고, 또 삼국을 통일한 신라 천년의 역사가 이두로 표현되던 우리말 ‘서울’을 살아남게 하였다. 물론 신라시대의 ‘서울’은 지금의 ‘경주(땅이름)’를 가리키는 말이다. 따라서 ‘서울 깍쟁이’, ‘서울이 무섭다니까 과천부터 긴다’라든가 ‘사람의 새끼는 서울로 보내고 마소새끼는 시골로 보낸다’라는 옛말들에서 서울은 수도 또는 큰 도시라는 뜻이지 어떤 지역을 지칭하는 말은 아니다. 역사가 흐르며 지역 이름은 바뀌었지만 ‘서울’은 언제나 우리 마음속에 수도, 왕도 또는 큰 도시로 인식되어왔던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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