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금이 사르르 녹다

시민기자 고은빈

발행일 2014.04.23. 00:00

수정일 2014.04.23. 00:00

조회 1,207

[서울톡톡] 죽이나 스프를 먹을 때, 앙금이 덩어리져 가라앉아 있으면 음식이 맛없게 된다. 근데 이 '앙금'이 먹는 음식에만 있는 게 아니다. 사람 마음속에도 있다. 사람 마음속 앙금도 풀어주지 않으면 문제가 된다. 마음속 풀리지 않는 앙금이 있다면 '속마음버스'에 올라 천천히 녹여보자. 수저로 천천히 저어줘야 앙금이 풀리듯, 버스를 타고 천천히 서로를 이해하다보면 더욱 맛난 음식이 기다리고 있지는 않을까?

속마음버스 내부

서로가 서로를 치유한다

속마음버스는 작년 8월 서울시 정신보건사업지원단에서 기획됐다. 버스 한쪽에 적혀 있는 '누구에게나 엄마가 필요하다'는 문구는 이 사업의 핵심 가치인 '엄마성'을 내포하고 있다. 모성과는 유사한 것 같지만 성별과 무관하게 한 사람의 본질적인 부분을 완전히 이해하고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여주는 극진한 존중을 뜻한다. 서울시는 이 엄마성이 누구에게나, 심지어 아기에게까지 존재한다고 봤다. 그리고 엄마성을 주고받으며 사람들의 마음이 치유될 수 있다는 전제 하에 가까운 사람들과의 소통 창구부터 마련하기로 했고 국내 소통채널의 대표주자인 ㈜카카오와 함께 속마음버스를 만들었다.

속마음버스는 평일에 2번, 토요일에 3번 운영되며, 여의도역에서 출발한다

속마음버스는 평일에 2번(18시 30분, 20시 40분), 토요일에 3번(16시, 18시 10분, 20시 20분), 2명씩 2개 팀으로 운영된다(각 팀별로 별도로 분리된 공간에서 진행, 1시간 50분 소요). 두 사람이 서로와의 대화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원하는 탑승일 2주전에 홈페이지(https://www.momproject.net/)에서 신청이 가능하다. 사연을 통해 탑승자를 선정하는데 평균 경쟁률은 12:1 정도라고 한다. 주 신청자는 부부, 부모-자녀, 연인 관계로 남편들은 아내가 무슨 힘든 일이 있는지 알고 싶어서, 부모는 커가는 자녀들과 계속 소통을 하고 싶어 신청한다고 한다.

속마음버스에 탄다는 것

다른 버스와 달리 속마음버스에는 좌석이 많지 않다. 두 사람의 진솔한 대화를 위해 대화 공간에는 벽과 가림막이 설치되어 있다. 테이블을 중심으로 두 사람은 마주보고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버스 곳곳은 보자기로 장식되어 있는데 마음을 따스하게 감싸 보듬어주는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속마음버스 내부, 두 사람의 진솔한 대화를 위해 공간이 분리되어 있다

80분 내내 대화가 자유롭게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공감을 극대화하기 위해 대화에는 작은 법칙이 있다. 테이블에 있는 모래시계의 모래가 다 떨어지는 3분 동안 한 사람은 이야기를 하고 다른 한 사람은 상대방의 마음에 집중하며 듣기만 한다. 대화 전반, 특히 상대방이 이야기하는 도중에 판단이나 평가의 말을 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3분이 지나면 이야기를 들었던 사람이 자신의 마음이 어땠는지에 대해 말한다. 대화는 그런 식으로 이어지다 하차 즈음에 오늘 대화에서 인상 깊었던 단어를 적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속마음버스 내부

이 날은 한 모녀와 연인이 탑승했다. 기자는 연인이 앉은 가림막 바깥에 자리를 잡았다. 내부의 조명이 꺼지며 버스는 출발했다. 버스는 밤에도 환한 여의도 빌딩숲을 지나 한강으로 향했다. 주변의 빛이 줄어들며 연인은 농담으로 덮어두었던 진심을 꺼내놓는 듯 했다. 마음을 내려놓듯 가림막 아래쪽으로 두 사람의 신발이 내려왔다. 버스는 성산대교로 향하고 있었다. 약간의 훌쩍임, 잠긴 목소리가 들려오더니 회차 지점쯤에선 잔잔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버스는 다시 여의도로 향했다. 연인은 도착 예정 안내 방송에 원래 이렇게 빨리 끝나는 것이냐 되묻는다. 연인에게 소감을 묻자 "연인이어도 말하기에 망설여지거나 껄끄러운 이야기가 있는데 자리가 마련되니 이때가 아니면 또 언제 이야기할까 싶어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라 말한다.

속마음버스에 탔다는 것은 작지만 어찌 보면 큰 시작일 수 있다. 오해와 응어리를 풀고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고 사랑하게 되는 시작 말이다.

진솔한 마음 여행이 필요하다면 속마음버스에 탑승해보자. 소중한 사람과 눈을 맞추고, 이야기에 귀 기울이다보면 앙금은 어느새 풀어져 마음의 양식이 되어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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