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섬이 기지개를 켜고 있다

시민기자 시민리포터 박분

발행일 2013.06.26. 00:00

수정일 2013.06.26. 00:00

조회 1,760

[서울톡톡] 열악한 도시환경 속에서 새들에게 편안한 휴식처를 제공하는 소규모 도심습지인 밤섬, 출입이 제한돼 여의도를 지나다 차창너머로 흘깃 바라보기만 하던 밤섬, 서울의 극심한 도시화와 개발사업으로 인해 사라졌다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레 퇴적되어 우리 곁으로 되돌아 온 밤섬, 우리가 알고 있는 밤섬의 모습은 대충 이 정도다.

하지만 그 밤섬도 40여 년 전엔 사람이 살던 곳이었다. 주민들이 거주하며 고기잡이배도 만들었던 곳이었다. 작년에 밤섬은 람사르 습지로 지정돼 이제 서울 안 작은 도심습지로 발돋움하게 됐다. 국제적 습지로 등록을 마쳤으니 특별 관리가 필요한 곳이기도 하다. 밤섬은 정확히 영등포구 여의도동과 마포구 당인동 사이의 섬이다. 1968년 여의도 개발로 사라진 이후 자연적으로 형성됐고 1999년 생태보전 경관지역으로 서울시 최초로 지정된 곳이기도 하다. 담수와 해수의 영향을 받아 생물 서식에도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는 밤섬은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문 도심 속 철새 도래지로써 보호가치가 높은 곳으로 인정돼 작년 6월 21일 람사르 습지로 지정됐다. 람사르습지는 전 세계를 대상으로 습지로서의 중요성을 인정받아 람사르협회가 지정, 등록해 보호하는 습지다.

한강밤섬을 효과적으로 보전하고 도심습지의 가치를 공유할 수 있도록 한강 밤섬 람사르 습지 지정 1주년을 기념한 '도심습지 국제 심포지움'이 지난 6월 21일 선유도공원 강연홀에서 열렸다. 서울시 한강사업본부가 주최한 이번 심포지움에는 습지분야 관계기관과 전문가 시민단체 등 200여 명이 참석했다.

 

'도심습지의 현명한 이용'에 관한 발표가 첫 순서로 진행됐다. 국내와 외국 등 사례에 따른 '도심습지 보전 방안'이 주제였다. 첫 번째 발표자는 멀리 홍콩 최대의 습지공원인 마이포 자연보호구역에서 대표자로 참석한 니콜왕 씨였다. 도심습지 밤섬과 관련한 외국의 도심습지관리사례를 들어 볼 수 있는 값진 시간인 만큼 모두들 경청해 듣고 있었다. 그녀의 발표를 요약해보면 이런 내용이다.

"맹그로브숲이 발달한 마이포에는 게이웨이(gei wai)라고 부르는 천연의 새우양식장이 있습니다. 강어귀에 바닷물을 끌어들여 바닷물을 따라 들어온 새우가 맹그로브숲의 영양물질에 의해 성체로 자라게 되고 나중에 새들에게 먹이제공을 하게 되죠." 여기에서 중요한 건 양식장의 수위조절이다. 바닷물의 수위 조절을 통해 새우양식 뿐 아니라 새우 수확이 끝나는 11월 이후 물이 빠진 양식장을 찾아 마이포 습지에 내려앉는 새의 종류와 형태 크기에 따른 수위조절도 구분을 해 먹이를 먹을 수 있도록 배려를 하고 있음은 눈물겹다. 주걱처럼 생긴 부리로 휘이 저어 먹이를 찾는 새, 세계적 멸종 위기종인 저어새들에겐 이 적절한 수위조절을 베푸는 갯벌이야말로 더할 나위 없는 먹이공급처인 셈. 자연지형을 이용한 이 전통적인 새우양식장의 새우는 판매하지 않고 모두 철새들에게 내어 준다니 그 마음들이 예쁘고 부럽다. 

국내 '낙동강하구 도심습지 보전 방안'에서도 근심어린 사례발표가 있었다. 낙동강 하구의 급속한 도시화로 동양 최대의 철새도래지였던 낙동강 하구를 찾는 철새는 계속 감소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중에도 호주와 밴딩조류 표식조사를 6년 동안 지속적으로 모니터링 하고 있는 시민들의 활약이 있어 낙동강하구는 희망적임을 시민단체 '습지와 새들의 친구' 김경철 씨는 전했다. 2008년 호주에서 밴딩(표식을 위해 새 다리에 밴드를 붙임)한 큰뒷부리도요 얄비는 시민들의 지속적인 모니터링 결과 3년 동안 호주와 낙동강을 오간 것으로 확인됐으니 낙동강 하구가 새들의 중간 기착지임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2012년부터는 얄비가 더 이상 발견되지 않고 있다는 슬픈 소식도 전해주었다. 낙동강 하구를 무대로 주변의 개발압력에도 의연히 람사르 습지 지정을 위한 노력들을 하고 있는 시민단체 '습지와 새들의 친구'에 참가자들은 격려의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건설교통부와 환경부 등에서 습지보호지역 등 정부 각 부처에서 무려 5개 법으로 지정한 보호구역인데도 개발계획 또한 줄을 잇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환경부의 소극적 대처를 우려했다.

경남람사르 환경재단의 이찬우 씨는 "밤섬은 우리나라 심장에 위치하고 있어 상징성을 가지고 있기에 프로그램이 제대로 운영된다면 다른 지역까지도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면서 "밤섬이 람사르 습지로 지정될 수 있었던 것은 조류 어류의 서식처로 중요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서 그는 밤섬은 담수와 해수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생물 다양성이 높아 조류와 어류의 모니터링이 꼭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모니터링프로그램은 전문가와 일반 시민이 함께 참여하는 방식으로 구성하면 인식증진 차원에서 효율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는 것과 밤섬의 의미와 존재를 널리 알리려면 '밤섬의 날'을 지정은 필수라고 말해 좌중의 박수를 받아내기도 했다.

습지분야 학회, 관계기관, 민간단체의 전문가가 참여한 지정 토론도 짤막하게 이어졌다. 지정토론자로 나선 박수택 SBS논설위원은 "오늘 이 자리는 우리가 망가뜨리고 훼손한 자연에게 반성하고 용서를 구하는 자리"라며 "강이 어디서부터 왔는지를 생각하면서 개발로 무너진 자연생태계에게도 사람에게 하듯 보상해야한다"고 강조해 무분별한 개발에 일침을 가했다. 국립습지센터 이현주 국장과 PGA 습지생태연구소 한동욱 소장은 "밤섬의 날 지정"에 의견을 모았다. 환경운동연합 이세걸 처장은 한강종합개발로 밤섬을 폭파하기 전까지 밤섬에서 태어나 쭉 살아왔던 주민이 "지금 이 자리에 와 있다"고 소개했고 울먹이며 말을 채 잇지 못하는 밤섬주민의 모습에 분위기는 잠시 가라앉기도 했다. 

마포 와우산에서 바라본 모습이 밤톨을 닮았다 해서 밤섬으로 불렸고 작지만 정취가 있어 마포 8경 중 하나였던 밤섬, 폭파해 모래와 돌을 여의도 개발에 쓰기 전까진 약재인 뽕나무와 땅콩재배와 염소를 방목하며 62가구 600명 남짓 주민들이 마을을 이뤘던 곳, 밤섬이 기지개를 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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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섬 #람사르습지 #심포지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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