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에는 장애란 음표는 없다

시민기자 박분

발행일 2014.03.11. 00:00

수정일 2014.03.11. 00:00

조회 1,314

[서울톡톡] 배움의 속도가 더딘 연주단이 있다. '도레미파솔~' 한 두 시간이면 익힐 음계를 하루 이틀, 아니 한 두 달 걸려 익히기도 하지만 이 연주단의 공연을 한번이라도 본 관객이라면 갑갑증보다는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차오르는 뭉클함에 절로 박수를 치게 될 것이다.

기쁜우리복지관에 소속된 `기쁜우리챔버오케스트라`

뭉클한 감동을 전하는 연주단은 바로 강서구 가양동에 있는 기쁜우리복지관에 소속된 '기쁜우리챔버오케스트라'이다. 기쁜우리챔버오케스트라는 기쁜우리복지관의 대표적인 장애인 복지사업 중 하나로 2010년 1월 창단됐다. 단원들과 동료 장애인들에겐 자신감과 꿈을 안겨주고 지역사회엔 장애인에 대한 인식개선의 장이 되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출범했다.

첼로, 콘트라베이스, 바이올린, 비올라, 클라리넷, 플르트, 트럼펫 등 7개 악기로 편성된 기쁜우리챔버오케스트라는 지적 자폐성 장애청소년 20명으로 구성됐다. 단원들은 모두 지적 장애 1~3급과 자폐성 장애인이면서 또한 무연고 장애인으로 어려서부터 '그룹홈(무연고 장애인들 3~4명과 생활자립교사로 구성된 가족공동생활가정)'에서 지내온 청소년들이다. 중·고등학교 재학생이거나 복지시설에서 근무하는 직장인들이라 연습시간은 언제나 밤중으로 그야말로 주경야독인 셈이다.

악기별로 개별레슨이 한창이다

지난 3월 5일, 복지관 3층에 있는 연습실을 찾아갔다. 단원들은 매주 수요일 저녁 7시에서 9시까지 음악수업을 받고 있는데 1시간은 개별레슨이고 나머지 1시간은 합동연습에 들어간다. 올해도 어김없이 곳곳에서 있을 초청공연을 앞두고 꾸준히 악기실력을 연마하고 있었다. 강사의 양해를 얻어 콘트리베이스 연습실부터 살짝 들어갔다. 덩치 큰 악기에선 역시 '탁' 가라앉은 저음이 실내를 메우고 있었다. 신중한 기색으로 악기를 연주하고 있던 단원들은 방문객은 쳐다보지도 못한 채 연주에만 집중하고 있어 숨소리조차 낼 수가 없었다.

밤 8시가 가까이 돼서야 방음이 된 강당으로 단원들이 모여들었다. 합주 시작 전, 잠시 사진 촬영에 들어가자 여학생들 몇은 거울 앞에 모여들어 립스틱을 찍어 바르기 바쁘다. 입술을 분홍색으로 마무리한 박경인(20) 씨는 '날씬하게 찍어주세요'하며 애교 섞인 부탁을 했다. 드디어 상기된 모습으로 단원들의 합주가 시작됐다.

연주곡은 베르디의 오페라 리골레토 중 '여자의 마음', 예상했던 대로 매끄러운 연주는 분명 아니었다. 힘찬 지휘자의 모습과는 달리 박자는 자꾸 쳐졌고 곳곳에서 음이탈이 속출했다. 하지만 단원들의 한눈팔지 않는 진지한 눈빛을 보고 있는 순간 전율이 느껴지며 비로소 결정체를 이루는 아름다운 하모니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한글도 잘 깨치지 않은 장애우들이 어려운 음계를 익혀 악보를 보고 악기를 연주할 수 있게 되기까지는 얼마나 많은 노력과 시간이 걸렸을까? 2년째 지휘를 맡고 있는 이영규(33, 가양동) 씨는 "처음 지휘를 맡게 됐을 땐 걱정이 태산이었는데, 이제 단원들의 무한한 가능성을 믿게 됐다"며, "순수하고 때 묻지 않은 장애인 특성상 정식 무대에서나 연습 때나 연주 실력이 변함이 없어 언제나 연습했던 대로 보여줄 수 있음이 강점"이라고 전했다.

(좌)다정한 자매지간인 박경인 씨와 장아름 씨, (우)기쁜우리챔버오케스트라의 앙상블 연주 모습

합주가 끝나자마자 단원들은 서로에게 박수를 한껏 보내며 성공적 연주였음을 즐거워했다. 비올라 연주자인 백리나(20) 씨는 기쁨에 겨운 나머지 눈물까지 쏟고 말았다. 현재 장애인 작업시설인 그린넷에 근무하는 백 씨는 재작년 지하철 이수역예술무대 공연 때 솔로 연주를 했을 정도로 뛰어난 연주자다. 매주 수요일 개인, 단체레슨 외에도 집에서의 연습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는 성실파인 그는 "합주를 할 때 다른 악기들과의 호흡맞춤이 잘 안 돼 연습시간이 항상 부족하다"고 겸손히 말했다.

백 씨는 현재 직장생활에 만족하고 있으며 비올라 연주는 평생을 함께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애교 섞인 말투로 예쁘게 사진을 찍어달라던 박 씨는 연주가 끝나자마자 '언니!'하며 뒷줄에 있던 장아름(21) 씨를 찾았다. 둘은 가양역 부근에서 '그룹홈'을 이뤄 함께 생활하고 있다. 트럼펫을 부는 아름양은 2년 전 만해도 자폐증으로 말이 없었는데, 연주를 하며 명랑해져 항상 웃는 낮으로 말을 걸어와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대중에 큰 감동을 주거나 사회에 어떤 반향을 일으키는 것들은 나중 일이예요. 가장 중요한 것은 장애청소년들이 어렵게 배운 것들을 함께 연주하며 행복을 느끼는 것이지요." 오케스트라 담당 임종민(48) 부장이 덧붙여 말했다.

기쁜우리챔버오케스트라는 매년 10월 목동 KT체임버홀에서 정기공연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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