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은 나만 미워해? 아니 사랑해!

시민기자 시민리포터 이은자

발행일 2012.03.06. 00:00

수정일 2012.03.06. 00:00

조회 2,238


"젊은이들을 사랑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들이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게 해야 합니다”라는 이탈리아의 가톨릭 교육가 돈 보스코의 말은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일깨워줍니다. <돈 보스코처럼 교육 합시다>는 늘 곁에 두고 있는 책입니다.

필자는 섬마을, 산골, 도시학교에서 두루 중등 교사를 해오다, 현재는 서울지역에서 초등학교 방과후 강사를 하고 있습니다. 입시를 겨냥한 수업이 아니어서, 조급하지 않게 아이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고 들을 수 있죠. 그래서 자연스럽게 감성을 껴안을 수 있는 기회가 많습니다. 그러는 과정에서 초등학생의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새삼 깨닫습니다. 항상 애쓰지만 늘 부족하게만 느껴지는 아이들과의 사랑 주고받기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서울시 하이서울뉴스] 2학년인 수성이는 참 똑똑한 아이다. 질문을 할 때는 앞뒤 설명을 길게 하면서 구체적으로 한다. 글을 쓸 때도 보통 2~3쪽까지 쉽게 쓴다. 언젠가는 인천 공항에 다녀온 견학일기를 쓰는데 안내책자도 없이 즉흥적으로 쓰면서도 공항의 편의시설, 상가, 주변 풍경, 교통까지 무려 5쪽이나 앉은 자리에서 써 내려갔다. 일어회화도 제법 잘한다. 가끔 일어와 섞어서 글을 쓰기도 하여 공책이 어수선하고 정확한 의미도 알 수 없어서 일어사용 금지령을 내리기도 했다.

그렇지만 공부하는 동안은 비교적 집중력이 좋다. 문제는 자신의 할 일을 마치고 나면 친구들과의 끊임없는 언쟁으로 교실을 소란스럽게 만드는 것. 심지어 교실을 돌아다니며 먼 자리의 친구들에게도 피해를 주곤 해서 수업분위기가 흐려지기 일쑤였다. 하루는 지원이가 갑자기 일어나 교실 구석에서 운동회날 사용했던 방망이 하나를 들고 와서 수성이를 때려주라고 했다.

그래서 "선생님은 너희들이 짐승이 아니고 사람이기 때문에 매는 들지 않는다"고 해놓았지만, 수성이에게는 공개적으로 면박을 주고 말았다. “이제 선생님은 더 이상 너랑 수업 못 하겠다. 오늘까지만 하자. 친구들이 너 때문에 공부를 제대로 할 수가 없잖니” 퉁명스럽게 한 마디 던졌더니, 수성이는 곧바로 “그럼 수업비 내주세요”라고 받아쳤다. 마치 탁구경기라도 하듯이 “그럴 수는 없어”하고 냉정하게 말해버렸다. 공방은 다시 이어졌다. “그럼 소송을 걸 거예요” 아뿔싸!

수업을 진행하면서 좀 더 기다려주지 못하고, 지켜봐 주지 못하고 어른의 잣대로만 아이에게 다가갔다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답답해졌다. ‘포기하는 것은 절대 교육이 아니다’라고 늘 되뇌면서도, 따뜻하고 깊은 사랑이 필요한 어린 아이들에게 어른답지 못한 대응을 했다는 것, 감성적인 대화를 나누지 못하고 지극히 감정적인 대화로 일관했다는 것이 부끄러웠다.

아이들에게 가장 민감한 것이 바로 편애

아이들의 언행 하나하나로 마음의 기복이 심해질 때가 참 많다. 늘 선생님 앞자리를 차지해서 수업 시간 내내 참견을 하고, 남녀학생 가리지 않고 다툼이 잦아 주의를 자주 받은 2학년 정현이가 비닐봉지 하나를 불쑥 내민다. 지퍼백에 삶은 고구마를 7~8개 담아온 것이다. 엄마가 주셨느냐고 물었더니 고개를 저었다. 할머니가 아침에 쪄주셨는데, 갑자기 선생님 생각이 나서 그냥 담아왔다고 한다.

그 얘기를 듣고 나서는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솔직히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정현이의 정감어린 모습을 대하고 나니, 평소 곱지 않은 시선으로 나무라곤 했던 것들이 스치면서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작고 못생긴, 그리고 물컹한 고구마들이 대부분이어서 할머니가 시골에서 가져오셨느냐고 다시 물었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들에게 정현이 할머니가 직접 심어서 캐 오신 귀한 고구마니까 맛있게 먹자며, 모두 조금씩 나눠 먹었다. 만날 때마다 싸우곤 했던 동현이도 눈치를 보며 맛있게 먹었다.

아이들로부터 산소 같은 선물을 받고 있다고 느낄 때가 참 많다. 교실 문에서 현관 쪽을 바라보고 있다가 현관에 들어서기만 하면 어느 새 달려와 세게 안기는 민아는 그러기를 벌써 5개월째다. 또 가영이는 수업이 끝나갈 무렵이면 책상 정리정돈을 감쪽같이 해놓고 기다렸다가 현관으로 달려가 구두까지 꺼내놓곤 한다.

어쩌다 꾸중을 들으면 이 세상에서 제일 나쁜 선생님인 것처럼 눈을 흘기면서 큰 소리로 싫다고 표현하곤 했던 1학년 지우가 사탕 두 개 담긴 카드를 건네서 열어봤더니, ‘선생님처럼 착한 선생님은 처음 봤다’고 써놓아 마치 화해하고 용서받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수업시간에 건수만 생기면 벌떡 일어나 교실을 돌아다니거나, 일어선 김에 복도까지도 핑계대고 나갔다 오는 우혁이에게는 꾸중 대신 거꾸로 교실 관리인 역할을 주어 보았다. 창문이 잘 안 잠기거나 화분에 물을 줘야 할 때도, 찾는 책이 없을 때도...요즘 우혁이는 진짜 관리인이 되었다. 뭐든지 적극적으로 솔선수범해서 척척 잘 해낸다. 말도 고분고분 잘 듣는다.

그렇지만 아이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마음에 든 아이들을 자주 칭찬해 줄 수는 없다. 예쁜 짓을 해도 표나게 예뻐해 줄 수가 없다. 민아처럼 안기고 싶지만 부끄러워서 차마 안기지 못한 아이들 앞에서 민아만 껴안아 줄 수 없는 것처럼. 모처럼 고구마 맛있게 먹었다고해서 수업 분위기 흐려놓곤 하는 정현이를 마냥 봐 줄 수는 없다. 모범 관리인이 되었다고 해서 계속 우혁이에게만 관심을 보이고 심부름을 시킬 수도 없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아이의 마음이 보인다

아이들에게 가장 민감한 것이 바로 편애다. 가정환경이나 교육차이, 과잉보호, 애정결핍, 외모, 성적 등으로 인한 아이들의 심리도 참 미묘하고 복잡하다. 그래서 교사의 말, 표정 하나하나가 아이들의 일기장에는 모두 다르게 표현된다. 너무나도 사소한 일들로도 아이들은 큰 상처를 받고 평생 안고 간다. 아무리 실력이 좋고 인품이 훌륭한 교사라고 해도 편애를 했다면 해당학생에게는 치명적인 상처가 된다. 편애를 안 했다고 해도 아이 눈에 그렇게 비쳤다면 그것은 편애인 것이다.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를 아는 것이다. 아이의 이야기를 열심히 듣고 이해를 하게 되면 교육현장에서 발생하기 쉬운 여러 가지 부작용, 오류를 최소화할 수 있다. 수업시간에 아이들이 써놓은 다양한 글들 속에는 그 아이의 생활, 가족관계, 상처, 의욕, 꿈과 희망 등이 고스란히 들어 있다. 그래서 일기장처럼 늘 버리지 말고 잘 보관하라고 당부하곤 한다. 그런데 분리수거 하는 날 엄마가 버렸다고 하는 아이들이 상당수 있다.

교사가 학생들을 알아야 하는 것처럼 부모도 가정 밖, 특히 대부분을 학교에서 보내고 있는 자녀들의 학교생활을 관심 기울이고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IQ보다 감성지수인 EQ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실감할 때가 정말 많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들이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공동체 의식을 갖고 창의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해서는 감성교육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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