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일하니까 전화 끊자.”

시민기자 시민리포터 이은자

발행일 2012.01.20. 00:00

수정일 2012.01.20. 00:00

조회 1,744

 

"젊은이들을 사랑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들이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게 해야 합니다”라는 이탈리아의 가톨릭 교육가 돈 보스코의 말은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일깨워줍니다. <돈 보스코처럼 교육합시다>는 늘 곁에 두고 있는 책입니다.

필자는 섬마을, 산골, 도시학교에서 두루 중등 교사를 해오다, 현재는 서울지역에서 초등학교 방과후 강사를 하고 있습니다. 입시를 겨냥한 수업이 아니어서, 조급하지 않게 아이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고 들을 수 있죠. 그래서 자연스럽게 감성을 껴안을 수 있는 기회가 많습니다. 그러는 과정에서 초등학생의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새삼 깨닫고, 그런 교실 안 풍경을 일기처럼 쓰고 있습니다. 그 이야기를 하나씩 둘씩 펼쳐 보이겠습니다.

[서울시 하이서울뉴스]episode 1- '어머니가 된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기적’

직장생활을 하거나 가족들에게서 잠시라도 벗어나 자신의 시간을 갖고 싶어 하는 주부에게는 방학이 오히려 더 힘들고 부담스럽기 마련이다. 아이들이 부모 말을 잘 듣고 자신의 계획대로 알차게 보내준다면 다행이지만 그런 경우는 흔치 않기 때문에 집집마다 실랑이를 벌이는 경우가 다반사다. 연말연시 휴일나들이나 가족여행으로 다소 느슨해지고 산만해진 학습태도를 바로 잡을 겸 해서, 새해소망을 잘 이루기 위한 노력과 다짐, 그리고 부모님께 감사하는 마음도 함께 적어보자고 했다.

늘 준비물을 챙기지 않고 빈손으로 들어 와서 글쓰기를 기피하곤 했던 1학년 형석이가 친구들이 조용히 글 쓰는 모습을 보고 종이와 연필을 달라고 하더니만 단숨에 써와서 불쑥 내밀었다. “엄마는 참 착한 사람, 귀찮은 일도 잘 해준다. 때론 화내지만 그래도 우리 엄마가 세상에서 젤 좋다.”

형석이가 내민 글을 보자마자, 책 한 권이 생각났다. 외모와 성격, 취향이 극과 극을 달려 너무나 힘들었던 두 아들을 키우면서 위로를 받았던 책 캐롤 린 피어슨의 <나팔꽃 엄마>다.

이 책은 한 엄마가 그녀의 아이들이 그녀를 얼마나, 진심으로 사랑하는지를 발견해 나가는 이야기다. 주부이자, 초등학교 3학년 담임인 앨리슨 앤드루스는 10대의 아이들을 가진 엄마다. 그녀는 자유분방하고 무질서한, 그리고 건성인 아이들 때문에 하루도 편할 날이 없다. 또한 자신만이 집안일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유일한 존재이며, 엄마말을 귀담아 듣지도 않고 고마워할 줄도 모르는 아이들의 어머니라는 사실에 병이 날 것 같다. 더욱 나쁜 상황은 바로 옆집에 이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엄마가 살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녀는 불완전한 가족 바로 옆집에 완벽한 가족이 사는 것은 제한돼야 한다는 엉뚱한 주장을 펴기도 한다.

옆집은 정원에 우아하고 화려한, 아름다운 장미를 키우는 여유를 갖고 있지만, 앨리슨은 어디서 날아왔는지도 모를 나팔꽃들을 겨우 키울 수 있는 정도다. 폭풍 때문에 정전이 돼버린 날도 앨리슨의 집은 초를 찾느라 어수선하고 난리법석이었는데 초를 빌리러 옆집에 가보니 네 아이들이 저마다 비상용 플래시를 들고 있었고, 첫째와 둘째는 기타연주와 노래를, 셋째와 넷째는 춤을 추며 그림자놀이를 하고 있었다. 침착하고 쾌활한, 그리고 사랑스럽고 다재다능한 옆집엄마 마르샤는 급기야 어머니날 교회행사에서 ‘올해의 어머니’로 뽑히게 된다. 어머니날 전날, 앨리슨은 자신이 철저하게 아이들로부터 사랑받지 못한 존재이며, 무시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가출이라는 과감한 결정을 내리고 호텔에서 이틀을 보내게 된다. 그러나 10년 동안 끌고 다녔던 그녀의 도요타 자동차 뒷좌석의 파란색 봉투에 들어있는 아이들의 편지를 보고 아이들의 사랑을 확인하게 된다.

“우리 가정의 여왕 앨리슨 앤드루스, 내가 지금껏 이룬 모든 것과 앞으로 이룰 나의 모든 소망은 천사 같은 어머니의 은혜를 갚기 위함입니다. 하느님은 모든 곳에 계실 수 없어서 어머니를 만들었습니다.” 그녀는 호텔에서 어머니가 된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기적‘이라며, 비로소 모성애에 대해 새로운 인식을 하게 된다.

“모성애는 완벽함과는 거리가 멀다. 사랑은 가장 불완전한 때에 발견된다. 그리고 가끔은 가장 평범한 꽃이 가장 강인하고 아름다울 수 있다.”

장미꽃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나팔꽃도 아름답다고 느낀 그녀는 나팔꽃이야말로 아주 생명력이 강하고 빠르게 자라며, 서리를 맞은 후에도 세월이 흐르고 흘러도 다시 아름답게 피어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요즘 매스컴에 슈퍼우먼과 성공한 여성들이 자주 소개되면서 주변의 대다수 평범한 주부들이 용기와 희망을 얻기보다는 오히려 스트레스를 많이 받게 되는 경우가 있다. ‘나팔꽃 엄마’, 작은 책 한 권으로라도 세상의 어머니들이 ‘어머니가 된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기적’이라는 사실을 재인식하게 된다면 세상의 개구쟁이들 역시 더 살맛나는 세상의 주인공이 되지 않을까?

episode 2- 닮은 시 쓰기

“엄마는 커다란 나무
나무에 있는 모든 것을 준다.

(중략)
열매만 아니라 꽃이랑 이파리도
우리 때문에 벌거숭이가 되어
나중엔 가지까지 떼어주겠지.”
(엄마는 어떤 사람/파스통키)에서

지난 1년을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며 가족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위의 시와 닮은 시를 써보기로 했다.많은 아이들이 뭉클해하며, 가족 사랑을 잘 표현해 주리라 기대했다. 그런데 대다수의 아이들이 집안의 풍경과 가족의 캐릭터를 금방 알아볼 수 있는, 너무나도 솔직한 고백을 써왔다. 어린 시절, 그리고 아팠을 때와 생일, 선물 등을 애써 떠올려 좋은 내용을 써오도록 반 강요를 했더니 일부 아이들은 잽싸게 고마운 부모님으로 수정을 해오기도 했다. 그러나 30분이 지나도록 고마운 적이 한 번도 없다며 고민을 하는 아이들도 몇이 있었다. 이런 방법이 좋지 않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잊혀졌던 아이들의 추억들 속에 반드시 아름답고 신났던 일, 고맙고 감동적인 일들이 있었을 것이라는 확신에서 끝까지 고집을 피워봤다. 그런 추억들을 시로 쓰고 나면 이런 상처들이 조금은 치유되리라는 기대도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5,6학년들은 절대 굽히지 않았다. 부모를 향한 현재의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고 그대로 묘사를 했다. 6학년 태민이의 시를 읽고 나서야 얼마나 무모한 강요를 했는가를 반성하며 얼굴을 붉혔다.

아빠는 일벌레

아빠는 일벌레
아침에 눈뜨면
“씻고 일 나가야지.”
아빠는 일벌레
점심시간에 전화 해보면
“아빠 일하니까 전화 끊자.”
아빠는 일벌레
저녁에 전화해 보면
“아빠 일 거의 다 끝나간다.”
아빠는 일벌레
자려고 누워서 전화해 보면
“집에 가고 있다.”
아빠는 일벌레

애써 웃어 보이며 태민이에게 한 마디 했다. “태민이는 좋겠네. 요즘 취직이 안 된 어른들이 많은데 태민이 아빠는 일이 많으셔서...... 앞으로는 공부 열심히 해서 아빠 기분 좋게 해드리고, 전화할 때마다 파이팅 해드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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