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애비랑 와서도 저렇게 좋아하는데...'

이덕윤

발행일 2011.03.31. 00:00

수정일 2011.03.31. 00:00

조회 1,928

지난 4월, 새로 생긴 지하철 9호선을 타고 김포공항에 갔습니다. 나이를 많이 먹어 별다른 감흥이 없을 줄 알았는데 비행기 티켓을 받자 처음 가는 제주도 여행에 설레기 시작했습니다. 예전 방과후 교실에서 제주도에 가느라 김포 공항에 와본 적이 있는 인호(가명)도 할애비를 이끌고 공항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잔뜩 들떠있었습니다.

국내선이기는 하지만 생전 처음 타는 비행기가 구름 속으로 들어가자 귀가 먹먹해지고, 창밖으로 작게 보이는 건물과 땅을 보며 조금 불안해지기도 하였습니다. 처음 타보는 비행기 안을 두리번거리다보니 어느새 제주도에 도착했다는 안내 방송이 들렸습니다.

제주공항에 내리자 인호와 내 이름이 적힌 피켓을 들고 있는 사람이 보였습니다. 그 사람을 따라가 봉고차를 타고 도두봉과 돌공원을 둘러보고, 아름다운 풍경이 석양에 묻힐 무렵 탑동에 있는 숙소로 들어갔습니다.

숙소에 들어서자 넓은 창밖으로 바닷가가 눈앞에 펼쳐져 있고 침대도 두 개나 있어 내 형편에는 정말 돈이 있어도 아까워서 묵지 못할 만한 곳이었습니다. 이렇게 좋은 곳에서 잠도 자고 구경도 할 수 있게 해준 사람들한테 고마우면서도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 좋아하며 침대에서 뛰는 인호를 보면서 기쁘기도 한 밤이었습니다.

밤이 깊었지만 인호가 잠자리가 변해서인지 잠을 못 이뤘습니다. “인호야, 할애비랑 밖에 나갔다 올까?” 했더니 기다렸다는 듯이 얼른 옷을 주워 입어, 함께 숙소에서 나가 밤바다를 거닐었습니다. 어두운 바닷가를 뛰며 좋아하는 인호를 보며 '할애비랑 와서도 저렇게 좋아하는데 엄마 아빠랑 왔으면 얼마나 더 좋아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내 지나온 날들도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시간이었습니다.

둘째 날이 되어 어제 그 봉고차를 타고 보석도 보고 자동차 박물관에서 자동차도 보고 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제주의 민속촌에서 코끼리를 본 것이었습니다. 산만한 덩치의 코끼리가 사람을 눕혀놓고 안마도 하고 누군가 천 원을 내밀자 꾸벅 인사도 하는 모습이 참 인상 깊었습니다. 둘째 날부터 함께 여행하게 된 누나들과 친해진 인호가 할애비와 떨어져 다녀 섭섭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감귤농장에서 먹음직스러운 감귤을 할애비에게 먼저 와서 먹여주는걸 보고는 잘해주지 못하지만 그래도 인호가 이 할애비를 사랑하는구나 하는 마음이 들어 뿌듯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마지막 날은 생전 처음 말도 타보고 말로만 듣던 제주도 똥돼지와 해녀도 보고 정말 짧은 시간동안 여행을 통해 새로운 경험을 많이 할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잘해주지 못해 늘 가슴이 아팠는데 이번 여행을 통해 인호가 즐거워하는 모습을 본 것이 참 좋았습니다. 이 늙은이가 얼마나 살지 모르지만 어렵게 크고 있는 손자에게 할애비에 대한 좋은 기억 하나쯤 남겨줄 수 있도록 해주신 분들에게 고맙고 감사하다는 말씀 드립니다.

이덕윤(서울디딤돌 수혜 시민)

■ 참여 상담 : 서울복지재단 사업지원부 02)2011-0437, 0440 / 지역별 거점기관

                   홈페이지 : http://www.welfare.seoul.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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