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그랜느 쿠키, 맛 보면 못 잊죠!

시민리포터 신운영

Visit2,887 Date2012.01.11 00:00


[서울시 하이서울뉴스]노르스름하게 구운 쿠키는 평범해보였다. 여느 제과점에서나 볼 수 있는 쿠키였다. 맛도 그러려니 했다. 한입 먹어보고 생각을 바꾸었다. 이런 쿠키라면 어디에 내놔도 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이미호씨(59, 래그랜느 대표)의 말은 의외였다.


“팔 데가 많지 않아요. 알음알음으로 해서 사가는 분들이 대부분이에요. 시에서 사회적 기업들을 도와주는 것은 고맙지만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일시적인 보조금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거예요.”


래그랜느는 자폐장애인들이 모여 쿠키와 빵을 만드는 사회적기업이다. 강남구 일원동 주택가에 있다. 2010년 6월 시트라 인터내쇼날 남기철 대표(이미호 대표의 남편, 59)가 까페와 베이커리 공장으로 창업했다. 제품 생산과 자폐치료에서 우수한 성과를 거두었다. 지난 해 11월에는 경영실적이 우수해 ‘더착한서울기업’으로 지정되었다. 그러나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이 대표의 얼굴은 내내 어두웠다. 눈가는 시종일관 젖어 있었다. 수익률이 문제였다.


자폐장애인들 일자리 위해 회사를 만들다


20년 넘게 전자부품 무역회사를 운영한 남대표가 래그랜느를 시작한 데는 사연이 있다. 2급 자폐증상을 가진 아들(범선, 30)을 보면서 그는 장애인들이 위험하지 않게 작업하면서 수익을 낼 수 있는 일이 뭘까를 오랫동안 고민했다.


첫 시도로 2005년 11월 강남구 수서동에 ‘밀알보호작업장’을 오픈했다. 자폐장애인 12명을 고용해 수제비누를 만들었다. 부모들이 동분서주 판로를 개척한 덕분에 첫 해 1억 150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무엇보다 반가운 것은 일을 하면서 아이들의 자폐증상이 크게 호전된 것이다.


업종을 제과제빵으로 바꾸었다. 쿠키가 비누보다 작업 수준이 높아 자폐치료에 좀 더 효과적일 거라는 판단에서였다. 장애인 4명을 채용했다. 그 중 두 명은 언어소통이 불가능했다. 중증 자폐아도 여건이 허락할 경우 생산이 가능한지 도전해 본 것이다. 전문 파티쉐와 자원봉사자와 사회복지사가 함께 이들의 작업을 도왔다.



광장으로 나온 자폐아들 달라지다


창업 1년 8개월이 지난 지금 이들은 제빵 기술이 늘고 자신감도 배가됐다. 이 대표는 치료효과도 눈에 띄게 좋아졌다고 말했다. “아들이 처음에는 반죽덩어리에서 쿠키 한 개 분량인 7g을 정확히 재지 못했어요. 저울에 반죽 8g이 올려졌을 때 거기에서 1g을 빼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지요. 학교에서 ‘8 빼기 1은 7’이라고 배웠지만 그걸 개념으로만 알고 있었기 때문에…. 계속 만들다보니 이제는 체득이 돼서 실수가 없답니다.”


쿠키도 모양에 맞게 잘 만든다. 장애인들에게 쿠키 만드는 법을 가르치는 작업반장 전충현(28)씨는 장애인들이 일반인들보다 정확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요령 피우거나 딴 짓 하는 거 없이 배운 그대로 따라하거든요.”


품질도 손색이 없다. 정직한 재료를 쓰고 공장에서 바로 반죽해 만든다. 방부제는 사용하지 않는다. “장애인 기업에 대한 일반인들의 편견이 있어요. 우수한 품질이 아니었다면 지금까지 버티지 못했을 겁니다.” 쿠키 구매를 위해 까페에 들른 노경란(63)씨는 “쿠키와 빵이 맛있다. 품질에 비해 가격도 시중보다 싸다”고 말했다.


장애인들은 질서에도 순응하고 협조체계에도 익숙해졌다. 돈 버는 재미도 알게 됐다. 하루 8시간씩 주 5일을 근무하며 월급을 받는 덕분이다. 이 대표는 아들이 그렇게 번 돈으로 친구들에게 삼겹살을 사준다고 말했다.


“이렇게 잘할 거라고는 상상해 본 적도 없습니다. 자기 고집만 부릴 줄 알았던 아이들이거든요. 하마터면 불용자원이 될 뻔했어요. 어떤 작업장 가보면 이름만 장애우 작업장이에요. 장애우들은 보조금 타내는 장식품일 뿐이고 실제 일은 일반인들이 하는데 그러면 안 됩니다. 장애우는 활동기회를 안주면 더 퇴보합니다. 자활을 할 수 있게 기회를 줘야 합니다.”


더불어 이들의 가정에도 웃음꽃이 피어났다. “직원 부모들이 좋아해요, 집안 분위기가 달라졌다고. 어려운 가정에서는 수입이 살림에 보탬도 된답니다.”


래그랜느의 이미호 대표


보조금 끊긴 뒤의 자립이 열쇠


화제가 수익률로 옮아가자 이 대표의 얼굴이 단박에 어두워졌다. “작년 운영실적은 10% 적자였습니다. 1년 운영한 것치곤 잘한 거라고 생각해요. 올해는 수익을 내야죠.” 목표는 운영비와 인건비를 건지는 것이다. 그러나 고정적인 납품처가 아직 한 군데도 없다는 것이 문제다. 이래서는 계획적인 생산을 할 수가 없고 안정적인 매출도 기대할 수가 없다.


목요일마다 까페에서 ‘래그랜느 데이’라는 체험 마케팅 행사를 열어 확보한 정기구매고객이 30여명이다. 주로 장애우 가족이나 인근 지역주민들이다. 남 대표의 고교동창회나 교회의 지인들도 가끔 구매를 한다. 국세청과 강남구청에서는 구내 까페에 소량이지만 쿠키를 납품할 수 있게 도와준다.


하지만 운영비와 인건비를 해결하기엔 역부족이다. 그나마도 80평 규모의 까페와 공장이 남 대표 소유라 임대료가 나가지 않는 데다 지난해에 사회적기업 1년차라 직원 6명의 인건비를 시에서 보조받을 수 있었기에 적자폭이 크지 않았다. 올해는 인건비 보조금이 50%로 줄어든다. 내년부터는 지원이 끊긴다.


공장에서 만난 남 대표는 “우리는 자본이 있으니까 견디지 보조만 받아서 하는 데는 못 견딥니다. 보조금 끊기면 망해요. 사회적기업이 초기에는 우루루 생겼다가 2~3년 지나면 대부분 없어지잖아요. 복지정책에 문제가 있는 거죠. 최상의 복지는 일자리가 아닙니까. 그런데 지속적인 수익이 없이 어떻게 일자리가 유지되나요. 사회적기업이 계속 수익을 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가장 실효성 있는 복지정책입니다. 그래야 정부의 복지 부담도 줄어들어요”라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해결책으로 사회적기업을 민간 기업이나 공공기관들과 공동 운영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민간 기업이 새로운 사회적기업을 만들기보다 이미 있는 작업장을 활용하면 됩니다. 래그랜느 같은 우량 사회적기업과 결연을 맺는 거죠. 그쪽에서 매장을 열고 우리는 납품을 하면 바람직한 시스템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기업들은 늘 자기네 이름으로 새로운 사회적기업을 시작하고 싶어 합니다”라며 안타까워했다.


래그랜느(LES GRAINES)는 불어로 ‘밀알’이란 뜻이다. 이 대표는 한 알의 밀알이 결실을 맺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우리 같은 형태의 자생력 있는 사회적기업이 많이 생겨날 수 있도록 롤 모델로 반드시 성공하고 싶습니다. 일반 기업과 역할 분담을 통한 일대일 비즈니스가 이루어진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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