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파마하고 차 한 잔 하실래요?

admin

발행일 2009.09.14. 00:00

수정일 2009.09.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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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은 저렴해서 좋고, 주인은 봉사해서 좋고

어르신들을 위한 이·미용실 시설이 송파노인복지회관 지하에 문을 열었다. 이발 및 미용 기술을 가진 어르신들이 자원봉사 형식으로 지역 노인들에게 봉사하는 것인데, 문을 연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입소문을 타고 동네 어르신들의 즐겨찾기 공간이 되고 있다. 저렴한 가격에 이발도 하고, 이웃 분들과 차를 마실 수 있어서 좋다는 송파노인복지회관 이·미용실. 그곳을 다녀왔다.

실버 이·미용실을 찾은 날은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였음에도 불구하고 그곳을 찾은 많은 어르신들로 분주했다. 머리를 깎고 계신 분도 있었고, 신문을 보면서 차례를 기다리는 분도 있었다. 반대쪽에 위치한 미용실도 역시 할머니들이 보자기를 쓰고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실버 이·미용실은 어르신들의 위생관리를 돕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한다는 취지에서 서울시 송파구가 송파노인복지회관과 기획해 진행한 사업이다. 기존 1층에 자원봉사로 운영되던 이발소가 있었는데, 지하 공간을 리모델링해 옮기면서 할머니들도 이용할 수 있는 미용실도 함께 마련한 것이다. 이곳 이·미용실의 특이한 점은 자원봉사 할아버지 이발사, 할머니 미용사가 상주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발소는 진운량(78) 어르신께서 운영하고 있었는데, 이 분은 기존 송파노인회관 1층에서 13년간 노인들을 위한 이발소를 운영해 온 봉사자이기도 하다. “젊어서 배운 재주가 이발이라서 다행”이라고 말하는 할아버지는 은퇴 후 소일거리를 찾기 시작하면서 이 일을 시작했다고 한다. “노인들은 한번 이발을 하려고 해도 비용이 부담이 돼서 망설이는 경우가 많아. 그러다보면 자연스럽게 사람들로부터 멀어지게 되는데 그게 안타까워서 시작했지.” 그렇게 송파노인회관에서 장소를 빌려줘 시작한 것이 벌써 13년이란 시간이 흘렀다고 한다.

실버 세대의 마음은 실버 세대가 가장 잘 안다, 편안한 사랑방

그곳 이발소의 단골이라는 홍인식(76) 어르신은 진운량 할아버지 덕분에 부담없이 이발을 할 수 있어 좋다고 말한다. “요즘은 깜빡깜빡해서 한번은 이발을 하고 이발비를 내지 않고 간 적이 있는데 아무 소리도 안 하는 거야. 그래서 다음날 와서 내가 말하고 준 적도 있다니까.” 실버 이발소의 경우에는 이발비로 3,000원을 받고 있다. 임대료 외에는 다른 모든 전기세, 물세, 비품을 스스로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운량 할아버지는 그 금액을 강요하지는 않는다. 그냥 봉사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나이가 되면 내가 뭔가를 할 수 있다는 자체가 좋은 거야.”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이발소에 손님들이 많아져 미용실로 향했다. 미용실은 이발소와 크기가 같았지만, 할머니들 여럿이 함께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어서 그런지 조금은 협소하게 느껴졌다. 그곳에서 미용일을 하고 있던 연명숙 미용사는 미용실 의자에 앉은 할머니의 머리를 롤에 감고 약을 바르고 있었다.

“소 판 돈을 가지고 서울에 올라와 미용학원에 등록했어. 아버지에게 죄송하지만 지금은 참 잘한 일 같아.” 연명숙 할머니(63)는 어린 시절 미용이 배우고 싶었다. 그래서 집을 나와서 기술을 익혔고, 한때는 실력을 인정받아 외국에서 공부를 하기도 했다. 그렇게 미용실을 열어 운영하다가 언제부턴가는 자신이 가진 기술을 이용해서 사람들에게 봉사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일을 하고 있다.

실버미용실은 연명숙(63), 곽혜자(69) 미용사 할머니가 운영을 하고 있고, 일주일에 두 번은 홍명순(63), 이미향(45) 미용사가 나와 도와준다. 그리고 채순희(65) 봉사자가 나와서 생활적인 일을 돕고 있다. 주로 하는 일은 파마와 염색으로, 비용은 5,000원이다. 이는 주변 미용실의 반에 반도 안되는 금액이다.

현재 실버 미용실에서 일하고 있는 분들 역시 모두가 자원봉사자로 이뤄져 있는데, 소식을 듣고 멀리서도 머리를 하러 오는 분들이 있을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끼곤 한다. 그런 분들은 오랜만에 찾아와서 손을 꼭 잡아주곤 하는데, 그럴 때면 죽을 때까지 이 일을 계속해야겠다고 생각을 한단다.

“차 한 잔 하실래요?”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으면 함께 일을 하고 있는 봉사자들이 친근하게 말을 걸어오는 것도 어르신들이 반할 만한 요소다. “머리를 정말 잘 하기도 하지만, 그것보다 말을 걸어 주는 것이 고맙지. 나이가 들면 미용실에 가서도 이야기에 껴주지 않아. 이렇게 나이대가 비슷한 사람들이 있으니까 그냥 편하고 좋은 거지.” 실버 미용실을 자주 찾는 한 할머니의 말이다. 실버 미용실은 꼭 염색, 파마를 하려고 오는 게 아니라 그냥 이야기를 나누거나 부담 없이 차를 한잔 나누기 위해서도 들를 수 있는 공간이었다.

송파노인복지회관 지하에 있는 이·미용시설은 앞으로 좀 더 홍보를 해서 주변 지역의 어르신들까지도 함께 이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편안하게 오다가다 들를 수 있는 어르신들의 사랑방, 송파노인복지회관 실버 이·미용실이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아 더 많은 지역으로 확대될 수 있기를 바래본다.

시민기자/김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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