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인권의 날, '남산'으로 가야 하는 까닭은?

시민기자 염승화

발행일 2020.12.09. 11:39

수정일 2020.12.09. 13:26

조회 3,417

12월 10일은 세계인권의 날이다. 지난 1948년 12월 10일 프랑스 파리 유엔총회에서 세계 인권선언을 발표한 이래로 기념일로 지정되었다. 문득 인권과 매우 밀접한 장소가 떠올라 찾아가 보기로 했다.

발을 디딘 곳은 남산 북쪽 기슭, 중구 퇴계로26가길 일대다. 600m쯤 되는 이 길은 서울소방재난본부 아래 옛 주자파출소 터에서 서울시청 남산별관 사이를 잇는 둘레길이다. 필자가 나름 ‘인권의 길’로 명명한 이곳에는 2015년 서울시가 설치한 ‘남산인권마루’를 비롯한 여러 관련 공간들이 있다. 일본 제국주의나 독재정권 시절 인권 탄압의 첨병 역할을 했던 자리나 시설들을 인권 수호의 장으로 탈바꿈시켜 놓은 것이다.

인권 억압의 장소에서 인권 수호의 상징으로 승화한 인권마루

인권 억압의 장소에서 인권 수호의 상징으로 승화한 인권마루 ©염승화

길을 잡기 전에 먼저 ‘인권마루 표석’을 만났다. 넓적한 쇠판에 옛 중앙정보부 및 국가안전기획부 배치도를 새겨 넣은 안내판이 소방재난본부 왼편 녹지 앞에 세워져 있다. 약 8만2,000㎡(약2만4,800평) 규모에 건물이 41개 동에 달할 만큼 대규모였다는 사실에 적이 놀랐다. 기단으로 쓰인 돌들은 전국 팔도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하여 관심이 더 갔다.

누구나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시민공간이 된 옛 중앙정보부장 공관

누구나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시민공간이 된 옛 중앙정보부장 공관 ©염승화

표석 뒤편에는 ‘문학의 집 서울’이 있다. 구 중앙정보부장 공관을 2001년 의견과 표현의 자유가 넘실대는 시민 문화공간으로 만들어 놓은 곳이다. 푸른 잔디가 깔린 넓은 마당에 서서 공관 전경을 편안히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예사롭지 않은 느낌이 밀려왔다. 이곳은 서울미래유산으로도 지정되어 있다.

치욕의 장소에서 극일의 장소로 바뀐 기억의 터

치욕의 장소에서 극일의 장소로 바뀐 기억의 터 ©염승화

발길을 되돌려 길가로 나와 ‘일본군 위안부 기억의 터’에 들어섰다. 커다란 노거수 두 그루가 길 양쪽에 문지기처럼 각각 서 있는 비탈 위다. 일제 강점기 시절 위안부 피해자들의 고통과 아픔을 함께 나누고 굴욕의 역사를 각인하자는 뜻에서 마련된 곳이다. 우리 민족 말살을 주도했던 일제 통감관저가 있던 자리에 2016년 조성했다. 1910년 8월 22일 한일병탄조약이 일어난 국치의 장소였었기에 상징성이 더욱 크게 여겨졌다.

인권의 길을 지날 때마다 걸음을 멈추게 하는 인권선언문

기억의 터 바로 옆 축대에 세계 인권선언문이 적혀 있다 ©염승화

기억의 터 바로 옆 축대에서는 ‘세계 인권선언문’을 마주했다. 전문과 30조에 이르는 선언문이 조형물처럼 기다랗게 부착되어 있다. 이 지역이 명실상부하게 인권 영역임을 나타내는 랜드마크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리라. ‘어느 누구도 고문, 또는 잔혹하거나 비인도적이거나 굴욕적인 처우 또는 형벌을 받지 아니한다’라고 적힌 제5조 문구에 특히 눈길이 꽂혔다.

인권의 길에서 만난 코로나19 파수꾼

서울유스호스텔, 요즘은 서울시생활치료센터로 쓰이고 있다.  ©염승화

우측으로 휘어진 언덕을 돌아서자 중앙정보부 본부로 쓰였던 건물이 나타났다. 2006년 서울유스호스텔로 쓰임새가 바뀐 곳이다. 요즘은 코로나19 환자와 지원단 공간인 ‘서울시생활치료센터’로 활용돼 서울 방역의 파수꾼 역할을 톡톡히 수행하고 있다.

서울시민의 재난 방지 보루로 상전벽해한 지하벙커, 중정6별관

옛 중앙정보부 6별관은 현재 서울종합방재센터로 바뀌었다 ©염승화

지하 벙커나 지하 고문실로 불렸을 만큼 인권 침해로 악명이 높았던 중앙정보부 6별관은 서울종합방재센터가 자리하고 있다. 이 앞을 지나 남산1호 터널 방면으로 걸음을 옮겨갔다. 5분쯤 가자 오른편으로 실내체육관처럼 생긴 건물이 보였다. ‘남산창작센터’다. 2007년부터 뮤지컬이나 오페라 단원들의 연습장으로 쓰인 곳이나 시설이 낡아 12월 12일 이후로는 폐관이 된다고 한다. 앞으로는 가능하면 시민 누구나 이용하는 ‘인권 시설’이 들어서면 좋겠단 바람을 가져보았다.

서울시청 남산별관 쪽에서 바라본 소릿길 터널 입구

서울시청 남산별관 쪽에서 바라본 소릿길 터널 입구 ©염승화

창작센터를 뒤로하자마자 곧 터널을 맞닥뜨렸다. 일명 ‘소릿길’로 2015년에 설치한 음향 터널이다. 84m를 통과하는 동안 각종 소리를 들을 수 있기에 그 이름이 지어졌다. 전에는 고통스러운 기억을 의미하는 타자기, 철문, 물, 발자국, 노랫소리 등 5가지로 짜인 소리들을 들을 수 있었다. 재구성을 준비 중인지 터널 내부 칠이 벗겨져 있고, 하필이면 소리는 나오질 않아 다시 듣지 못한 점이 못내 아쉬웠다.

소릿길 내부에서 바라본 서울시청 남산별관, 옛 안기부 대공수사국 건물

소릿길 내부에서 바라본 서울시청 남산별관, 옛 안기부 대공수사국 건물 ©염승화

남산둘레길로 오르다가 되돌아본 시청 남산별관

남산둘레길로 오르다가 되돌아본 시청 남산별관 ©염승화

목적지이자 도착지점인 시청 남산별관은 터널을 빠져나가기 직전부터 그 몸체가 눈앞에 드러났다. 구 중앙정보부 제5별관 및 안기부 대공수사국이 있던 곳이나 간첩 사건을 조작해 국민들의 원성이 자자했었다. 지금은 서울시 민생사법경찰단과 중부공원녹지사업소가 들어가 있다.

12월 10일  세계인권의 날을 맞아, 인권의 길을 걸으며 소중한 인간의 기본 권리에 대해 다시금 되새겨 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인권마루와 인권의 길은 인근에서 바로 연결되는 남산둘레길이나 남산골한옥마을과 연계해 일정을 짜면 좋다.

■ 남산 인권마루 및 인권의 길 안내
○ 위치: 서울시 중구 퇴계로26가길 일대
○ 교통: 지하철 3,4호선 충무로역 4번 출구 > 약 480m (도보 약 7분) > 서울소방재난본부 옆 인권마루 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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