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주기 '전태일'을 떠올릴 수 있는 장소 5곳

시민기자 김진흥

발행일 2020.11.16. 15:11

수정일 2020.11.16. 18:04

조회 3,468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1948~1970)이 이 메시지를 남기고 세상을 떠난 지 50년이 됐다. 전태일 열사 50주기를 맞아 서울시는 지난 10월부터 ‘우리모두 전태일 문화제’를 개최하며 고인을 기렸다. 정부는 고인에게 노동계 인사 최초로 ‘무궁화 훈장’을 추서했다. 무궁화 훈장은 국민 훈장 1등급으로 국민 복지향상과 국가발전에 기여한 사람에게 수여한다.

전태일다리에 있는 전태일 반신동상

전태일다리에 있는 전태일 반신동상 ©김진흥

전태일 열사는 우리나라 노동운동을 상징하는 대표 인물이다. 정규교육을 거의 못 받고 10대 때부터 청계천 평화시장에서 재단사로 일했다. 당시 평화시장 노동 여건은 처참했다. 당시 노동자는 대부분 18살 어린 여성들이었고 환기가 되지 않고 허리도 펴기 어려운 좁은 방에서 하루 18시간씩 재봉틀을 돌리는 중노동의 연속이었다.

전태일 열사와 함께 평화시장에서 근무했던 전태일 열사 동생인 전순옥 박사는 지난 11일, CBS 한 라디오에서 “환기도 안 되는 좁은 다락방에서 하루 18시간 미싱을 돌렸다. 손을 씻으려고 해도 씻을 공간이 없었고 점심을 먹으려고 움직이니 머리에 쌓인 수북한 먼지가 떨어졌다. 그런 어려운 환경으로 인해 여러 노동자들이 폐병에 걸리고 병이 났지만 쫓겨날까봐 병을 숨기면서 일했다”고 말했다.

당시 열악한 노동 환경을 재현한 다락방. 전태일기념관에서 전시중이다.

당시 열악한 노동 환경을 재현한 다락방. 전태일기념관에서 전시중이다. ©김진흥

열악한 노동 환경 속에서 받은 월급 사정도 변변치 않았다. 전순옥 박사는 “당시 노동자들의 월급이 약 2,500원 정도였다. 버스비가 100원이었으니 한 달 교통비보다 더 부족한 금액이었다”고 말했다.

전태일 열사는 너무나 열악한 노동 여건에 대해 개선할 것을 요구했다. 당시 한자로만 쓰였던 근로기준법을 독학하며 공부했고 정부와 사업주, 언론사 등 근로조건의 개선을 외쳤다. 하지만 아무도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

1970년 11월 13일, 결국 그는 최후의 수단으로 온 몸에 불을 지름으로써 근로 환경에 관한 메시지를 사회에 전했다. 전태일 열사의 외침은 이후 노동운동을 비롯한 모든 사회계층의 권익 향상 운동에 큰 영향을 끼쳤다.

대구 출생인 전태일 열사는 서울시에서 지낸 시간이 약 5년 정도다. 그러나 그가 일했던 곳, 마지막 숨결까지 깃든 곳이 서울인 만큼 그를 생각나게 하는 서울의 장소들이 더러 있다.

동대문 평화시장

동대문 평화시장 ©김진흥

시장 안에는 여전히 많은 의류 관련 가게들이 있다.

시장 안에는 여전히 많은 의류 관련 가게들이 있다. ©김진흥

우선, 전태일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곳이 ‘평화시장’이다. 이곳은 전태일이 서울에 올라오면서부터 미싱 보조부터 재단사까지 도맡으며 일했던 곳이다. 그는 집보다 더 많은 시간을 이곳에서 보냈다. 그리고 근로기준법이 하나도 지켜지지 않은 노동자들의 실태를 눈으로 직접 목격했던 현장이었다.

평화시장은 한국의 의류 산업을 선도해 온 장소다. 한국전쟁 이후 청계천 주변에서 미군 군복과 담요 등으로 옷을 만들어 팔기 시작하면서 성장한 전통시장이다. 기존의 맞춤옷에서 기성복으로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과 합섬섬유의 발전에 힘입어 옷을 만들어냈다. 1960년대 큰 인기를 끌면서 한때 인근 시장들과 함께 한국 기성복의 약 70%를 생산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인기 속 그림자에는 노동자들의 아픔이 담겨 있었다.

평화시장 입구에는 전태일 열사가 분신했던 곳이 표시되어 있다. 50년 전, 근로기준법 준수를 외쳤던 전태일 열사의 부르짖음이 서린 장소다. 열악한 노동 환경 한복판에서 외친 전태일의 마지막을 느껴볼 수 있을 것이다.

평화시장 입구에 있는 전태일 열사 분신 현장 표지석

평화시장 입구에 있는 전태일 열사 분신 현장 표지석 ©김진흥

전태일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장소인 전태일다리

전태일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장소인 전태일다리 ©김진흥

두 번째로 ‘전태일다리’다. 평화시장 입구 앞에 놓여 있는 이 다리의 원래 이름은 버들다리였다. 2005년 복개 공사를 통해 설치된 청계천 22개 다리들 중 하나다. 다리가 놓인 지 5년 후인 2010년, 전태일40주기범국민행사위원회가 버들다리 개명 운동을 벌였고 2년 뒤 ‘전태일다리’로 변경됐다. 서울시 의회 결의와 지명위원회 심의를 거쳐 확정된 전태일다리는 명예도로명이 아닌 지도에 나오는 공식 명칭이다.

전태일다리 중간에는 전태일의 반신동상이 존재한다. 청계천의 물을 딛고 다리 위에 올라서 평화시장 일대를 바라보는 모습이다. 인근 도로 바닥에는 35주기 때 만든 기념 동판 3,000여 개가 설치되어 있다. 이것은 15년 전에 마련된 것으로 시민들과 단체들이 전태일을 기리며 새긴 것이다. 이처럼 오늘날 전태일다리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장소다.

서울창경초 근처에 있는 전태일 열사 옛 집터 표지판

서울창경초 근처에 있는 전태일 열사 옛 집터 표지판 ©김진흥

5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이곳은 쌍문동 무허가 판자촌이었다.

5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이곳은 쌍문동 무허가 판자촌이었다. ©김진흥

세 번째는 ‘전태일 열사 옛 집터’다. 당시 부산에 있었던 전태일 가족은 1966년 도봉구 쌍문동 무허가 판잣집으로 이사했다. 이 무렵부터 전태일 열사는 청계천 평화시장까지 도보로 출퇴근했다. 집에서부터 근무지까지의 거리는 약 11km. 버스비를 아끼기 위해 그는 왕복 22km 거리를 매일 걸어 다녔다.

전태일 열사가 살았던 쌍문동 판잣집들의 흔적은 현재 보기 어렵다. 지금은 수많은 아파트들이 위치해 있다. 다만 옛 집터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은 표지판뿐이다. 서울창경초등학교 담벼락에 위치한 표지판은 전태일 열사 옛 집터와 전태일 열사를 소개하고 있다.

도봉구에 거주한다는 한 주민은 “전태일 열사 집터가 이곳에 있는 줄 몰랐다. 여기를 종종 오가지만 이런 표지판이 있는 줄 몰랐다”라면서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아름다운청년 전태일50주기 범국민행사위원회는 지난 6일, ‘전태일 귀갓길 야행’ 프로그램을 펼쳤다. 야간에 청계천 평화시장에서 도봉구 옛 집터까지 전태일 열사의 귀갓길을 시민들이 직접 체험하는 행사였다.

이음피움 봉제역사관

이음피움 봉제역사관 ©김진흥

지금도 돌아가고 있는 봉제 가게

창신동 봉제거리, 지금도 돌아가고 있는 봉제 가게 ©김진흥

네 번째 장소는 ‘이음피움 봉제역사관’이다. 종로구 창신동에 위치한 이곳은 대한민국 최초로 봉제산업의 역사를 다루는 박물관이다. '新전태일 스탬프 투어' 장소 중 하나이기도 한 이곳은 전태일이 일한 봉제업에 대해 알 수 있다.

박물관이 속한 창신동 봉제거리는 수많은 봉제공장들이 들어서 있다. 동대문 시장의 주요 생산지이자 국내에서 가장 많은 공장(약 1,000개)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1970년대부터 활성화된 이곳은 지금도 공업용 재봉틀 소리로 요란하다. ‘미싱사’, ‘시다(미싱 보조)’ 등 전태일이 노동했던 당시에 많이 쓰였던 일본어들도 쉽게 볼 수 있다. 잠시 과거로 돌아가 전태일이 일했던 현장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전태일기념관

전태일기념관 ©김진흥

전태일 열사 50주기를 맞아 많은 행사들이 열렸다.

전태일 열사 50주기를 맞아 많은 행사들이 열렸다. ©김진흥

마지막으로 종로구에 위치한 ‘전태일기념관’이다. 2019년에 정식 개관한 이곳은 전태일과 우리나라 노동 역사에 관련된 모든 것들을 관람할 수 있다. 또한 전시를 비롯해 공연장이 설치되어 볼거리를 제공하고 노동 허브, 서울노동권익센터 등 서울시 노동자들을 위한 공간들도 마련되어 있다.

전태일기념관은 50주기를 맞아 여러 행사들이 진행 중이다. 기념관에서는 전태일50주기 노동미술제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노동에 답하라>, 특별기획 현대미술전 <따로-같이>, 청계피복노동조합 사료전 등 다양한 전시들이 소개되고 있다. 지난 10~12일까지는 전태일50주기 국제포럼도 열려 국내외 노동 전문가들이 함께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많은 행사들이 펼쳐지고 있다. 자세한 사항은 전태일기념관 누리집(클릭) 에서 확인 가능하다.

전태일기념관은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사전예약제로 운영되고 있다. 예약은 관람일 하루 전 오후 5시 30분까지 1인 최대 5인까지 가능하다. 예약은 전태일기념관 누리집에서 할 수 있다. 5인 이하 관람객의 경우에는 현장에서 전시 해설을 요청할 수 있다.

전태일다리 근처 도로 바닥에는 전태일 열사를 기리는 시민들의 메시지 동판들이 있다.

전태일다리 근처 도로 바닥에는 전태일 열사를 기리는 시민들의 메시지 동판들이 있다. ©김진흥

11월 13일 아침부터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전태일이 올라갔다. 수많은 방송들과 라디오에서도 하루종일 전태일 열사가 언급됐다. 그를 기리는 추모글도 인터넷에서 많이 올라왔다. 그가 떠난 지 50년이 흘렀음에도 그가 전한 사회적 울림은 현재 진행 중이다. 전태일 열사와 관련된 장소들을 방문한다면 시대 상황과 함께 그를 더 이해하고 기억할 수 있지 않을까.

■ 전태일기념관 누리집 : http://www.taeil.org

▶ ‘내 손안에 서울’ 앱으로 받아보기
▶ '코로나19 서울생활정보' 한눈에 보기
▶ 내게 맞는 '코로나19 경제지원정책' 찾아보기

매일 아침을 여는 서울 소식 - 내 손안에 서울 뉴스레터 구독 신청 내가 놓친 서울 소식이 있다면? - 뉴스레터 지난호 보러가기

댓글은 자유로운 의견 공유의 장이므로 서울시에 대한 신고, 제안, 건의 등
답변이나 개선이 필요한 사항에 대해서는 전자민원 응답소 누리집을 이용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상업성 광고, 저작권 침해, 저속한 표현, 특정인에 대한 비방, 명예훼손, 정치적 목적,
유사한 내용의 반복적 글, 개인정보 유출,그 밖에 공익을 저해하거나 운영 취지에 맞지
않는 댓글은 서울특별시 조례 및 개인정보보호법에 의해 통보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응답소 누리집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