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에도 사회적 거리두기가?…허준박물관 특별전

시민기자 박분

Visit88 Date2020.10.23 13:45

불청객 코로나19가 불쑥 찾아와 우리 삶을 위협한지 꽤 시간이 흘렀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커다란 공포로 다가왔던 전염병은 우리 역사에서 어떻게 기록되었을까? 두창과 홍역 등 역병으로 불리는 전염병이 돌던 때 조선시대 사람들이 어려운 시기를 어떻게 견뎌냈을지 궁금하다.

한국 최초의 한의학 전문박물관인 허준박물관은 강서구 가양동에 위치했다.

한국 최초의 한의학 전문박물관인 허준박물관은 강서구 가양동에 위치했다. ⓒ박분

사회적 거리두기가 1단계로 완화됨에 따라 서울시내 박물관 운영이 재개되었다. 때마침 허준박물관에서 ‘조선, 역병에 맞서다’ 특별전이 열리고 있어 한달음에 찾아가 보았다. 박물관 입구에서 마스크 착용 점검은 물론 손 소독과 함께 체온측정 등이 순차적으로 이뤄졌다.

이번 전시는 ‘조선을 습격한 역병’, ‘역병 극복을 위한 노력’, ‘신앙과 금기 치유를 소망하다’ 등 3가지 주제로 역병 속에서도 삶을 살아내고 공포를 이겨내고자 했던 선조들의 의지를 함께 느껴보고자 기획됐다.

박물관 3층 기획전시실에서 '조선, 역병에 맞서다'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박물관 3층 기획전시실에서 ‘조선, 역병에 맞서다’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박분

‘조선을 습격한 역병’에서는 조선시대 유행했던 주요 전염병과 역병에 희생되거나 상처를 딛고 일어선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두창, 홍역, 온역 등의 전염병은 지금은 치료법이 개발됐지만, 당시에는 코로나19와 같이 걸리면 죽음에까지 이르는 무서운 병이었다. 특히 두창(마마, 천연두)은 가장 맹위를 떨친 역병이었다.

두창으로 숨진 인흥군의 맏아들 묘지명

두창으로 숨진 인흥군의 맏아들 묘지명 ⓒ박분

전시실에는 두창으로 목숨을 잃은 아이들의 묘지명, 역병에 희생된 아들을 기리며 쓴 제문 등이 전시돼 있어 당시 전염병의 참상으로 인한 슬픔을 가늠케 한다. 두창은 조선시대 유아 사망에서 큰 비중을 차지했다. 왕실도 두창을 피해가질 못했다. 특히 선조는 1603년 겨울, 아들, 딸, 손자를 한 달 사이에 잃었다. 전시실에는 선조의 아들인 인흥군의 맏아들 묘지명(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이 전시돼 있다. 두 살 때 두창으로 숨을 거둔 왕실 아기씨의 백자 묘지명에 기록된 짧은 생은 애처로워 차마 볼 수가 없다.

초상화에서 볼 수 있는 마마자국의 흔적이 생생하다.

초상화에서 볼 수 있는 마마자국의 흔적이 생생하다. ⓒ박분

역병을 피해 겨우 살아남았지만 두창으로 인한 얼굴에 남은 마마자국의 흔적을 당시의 초상화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1774년 무과시험인 ‘등준시’ 합격자 18인을 그린 화첩 ‘등준시무과도상첩(登俊試武科圖像帖)’에 실린 관리들의 초상화에서도 마마자국이 발견돼 조선시대에 만연했던 두창의 위력을 짐작케 한다.

두창을 치료해준 의원에 감사의 뜻을 전하며 펴낸 시집 '도암집'

두창을 치료해준 의원에 감사의 뜻을 전하며 펴낸 시집 ‘도암집’ ⓒ박분

두창으로 인한 우울한 시대에 한편에서는 두창을 치료해준 의원에게 감사의 뜻을 담아 펴낸 시집 ‘도암집’(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이 있어 눈길을 끈다. 영조 때 학자인 이재(1680∼1747)는 두창에 걸린 손자를 치료해 준 의원의 의로움과 의술에 감사하는 시를 남겼다. 그의 시에는 전염병으로 목숨을 잃을 상황임에도 기꺼이 찾아와 준 의원의 의로움과 뛰어난 의술에 고마워하는 마음이 잘 표현되었다.

침을 보관하던 은침통

침을 보관하던 은침통 ⓒ박분

목제로 만들어진 남녀 한 쌍의 인형에 경혈자리를 표시해 침 실습을 해볼 수 있도록 만든 경혈상과 침을 보관하던 은제 침통도 눈에 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전시를 보완한 순회전으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도 볼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전시를 보완한 순회전으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도 볼 수 있다. ⓒ박분

이번 전시는 지난 5월부터 한 달여 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전시를 보완한 순회전으로 우복집, 등준시무과도상첩, 묘지명, 자흘전칙 등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도 함께 전시하고 있어 꼭 한번 가볼 만하다.

‘역병 극복을 위한 노력’도 조명하고 있다. 천연두와 홍역 등 전염병의 공포 속에서 치료법을 담은 의서도 속속 탄생했다. 전시실에는 허준이 선조의 명으로 편찬한 두창에 관한 종합의서인 ‘언해두창집요(諺解痘瘡集要)’와 역병 치료에 관한 의서인 벽온신방 원문에 한글로 번역문을 달아놓은 책인 ‘벽온신방언해(辟瘟新方諺解)’ 등 두창과 관련한 조선시대의 다양한 의서들이 전시되어 있다. 정약용이 홍역의 병증과 치료법을 수록해 1798년에 편찬한 의서 ‘마과회통(麻科會通)’도 보인다. 역병에 굴복하지 않고 이겨내고자 했던 선조들의 모습에 고개가 숙여진다.

허준이 말하는 전염병 응급지침서 '신찬벽온방' 내용

허준이 말하는 전염병 응급지침서 ‘신찬벽온방’ 내용 ⓒ박분

17세기 초 온역, 18세기 홍역 등 새로운 감염병의 출현에 대응한 조정의 노력 또한 활발했다. ‘신찬벽온방(新撰辟瘟方, 보물 제1087호)’은 1612∼1623년 조선 전역을 휩쓴 장티푸스성 감염병 온역에 대응하기 위한 전염병 응급지침서로 간행되어 전국에 배포되었다. 1613년 광해군의 명으로 허준이 편찬한 이 책에는 온역의 치료법과 예방법이 소개돼 있다.

허준의 전염병 예방법과 전염되지 않는 법 등은 지금 읽어도 공감이 간다.

허준의 전염병 예방법과 전염되지 않는 법 등은 지금 읽어도 공감이 간다. ⓒ박분

‘신찬벽온방‘의 ‘전염되지 않는 법’을 펼치면 ‘환자를 상대해 앉거나 설 때 반드시 등지게 해야 한다. 방역이 되지 않은 상황에서 환자를 맞이했다면 독기를 밖으로 뱉어내야 한다. 집안에 역병이 돌 때에는 처음 병에 걸린 사람의 옷을 깨끗하게 세탁한 후 밥 시루에 넣어 삶는다’ 등이 열거되는데 지금의 코로나19 방역 지침과 흡사한 대목이 눈길을 끈다. 또한 전시에서는 명의 허준이 말하는 ‘전염병 예방법’과 ‘전염되지 않는 법’을 전시 도록에서 인용해 열거하고 있는데 지금 읽어도 고개가 끄덕여지는 내용들이다.

전염병으로 버려진 아이들에 대한 정책을 펼친 정조의 긴급아동구호 규정이 수록된 ‘자휼전칙(字恤典則, 국립중앙박물관 소장)’도 눈여겨보게 된다. 이 책은 전염병의 공포를 공동체 의식으로 극복하려고 했던 선조들의 지혜를 만날 수 있다. 1786년 홍역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는 버려진 아이들이 남았고, 나라에서 이들을 책임지고 돌보는 법이 시행됐으니 코로나19로 많은 변화를 겪고 있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병이 낫기를 바라고 귀신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부적이 그려진 8폭 병풍

병이 낫기를 바라고 귀신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부적이 그려진 8폭 병풍 ⓒ박분

‘신앙과 금기 치유를 소망하다’에서는 전염병의 공포를 신앙으로 극복하고자 했던 선조들의 마음을 담았다. 병이 낫기를 바라고 귀신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부적 등 다양한 부적이 그려진 8폭 병풍(가회민화박물관 소장)과 귀신 잡는 개 부적(가회민화박물관 소장)도 보인다. 전염병이 속히 물러나길 바라는 마음에서일까? 선조들은 ‘두창’이라는 질병 자체를 아예 고귀한 신으로 받들어 호구마마, 호구별성, 마마님 등의 별칭으로 부르기도 했다.

허준공원이라 불리는 구암근린공원의 평화로운 호수 풍경

허준공원이라 불리는 구암근린공원의 평화로운 호수 풍경 ⓒ박분

허준박물관에서 열리는 ‘조선, 역병에 맞서다’ 전시는 오는 12월 6일까지 진행된다. 전시는 조선시대 사람들이 전염병의 공포에 어떻게 대응했는지를 조명하면서 코로나19로 혼란을 겪는 시민들에게 작은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전염병을 극복하기 위한 선조들의 노력과 지혜를 느껴볼 수 있어 지금 꼭 봐야할 전시가 아닐까 싶다.

‘조선, 역병에 맞서다’ 특별전
○ 기간 : 2020.10.6.(화) ~ 12.6.(일)
○ 장소 : 허준박물관 3층 기획전시실, 서울시 강서구 허준로87 (가양동)
○ 박물관 운영 : 평일 10:00~18:00, 주말 10:00~17:00, 월요일 휴무
○ 입장료 : 일반 1,000원 / 학생 500원, 통합관람(허준박물관+겸재정선미술관) 1,300원 / 700원
○ 홈페이지 : http://www.heojun.seoul.kr/
○ 문의: 02-3661-86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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