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제천 꽃길 따라 '홍제유연'까지 가을 나들이

시민기자 이선미

발행일 2020.10.20. 13:28

수정일 2020.10.21. 09:13

조회 1,749

홍제천 산책로에 꽃이 피었다. 서대문구는 홍제천 인공폭포와 홍연2교 사이에 꽃으로 가을을 그려놓았다. 은하수 정원, 요정의 초대, 축제의 길, 별 정원 등 다채로운 이야기를 담아 조성한 꽃길이 환하게 이어졌다.

홍제천 인공폭포 산책길에 꽃으로 그린 가을이 이어지고 있다.

홍제천 인공폭포 산책길에 꽃으로 그린 가을이 이어지고 있다. ©이선미

코로나19 때문에 발이 묶였던 가족들도 오랜만에 꽃구경에 나섰다. 모녀는 국화향기에 취하고 어린이들과 함께 나온 젊은 엄마아빠는 인증샷을 찍느라 예쁜 자리를 찾았다.

모처럼 산책을 나온 가족들이 꽃길에서 인증샷을 찍고 있다.

모처럼 산책을 나온 가족들이 꽃길에서 인증샷을 찍고 있다. ©이선미

홍제천 폭포에서 꽃구경을 하다가 안산으로 접어들 수도 있다. 징검다리를 건너 폭포 뒤쪽으로 올라가면 메타세쿼이아와 잣나무 숲길로 향할 수 있다.

인공폭포 뒤쪽으로 올라가면 안산으로 접어든다.

인공폭포 뒤쪽으로 올라가면 안산으로 접어든다. ©이선미

사실 홍제천을 찾은 건 ‘홍제유연’을 만나고 싶어서였다. 입구가 따로 있었는데 길을 잘 못 찾아 유진상가에서 ‘홍제천 열린길’로 내려갔다. 복잡한 시장 한복판에서 몇 개의 계단을 내려가 만난 홍제유연은 더 뜻밖의 순간이 되었다. 갑자기 아주 낯선 곳에 들어선 느낌이었다. 물소리가 들렸다. 순식간에 아주 낯선 시공으로 들어섰다. 몇 걸음 가자 홍제천으로 들어서는 세 개의 징검다리 가운데 하나가 나타났다.

홍제유연에는 세 개의 징검다리가 놓여 있다.

홍제유연에는 세 개의 징검다리가 놓여 있다. ©이선미

터키 이스탄불에는 옛 비잔티움 제국 때 건설된 예레바탄 사라이가 있다. 지금은 ‘지하궁전’이라고도 불리는 오래된 저수조다. 어디선가 가져온 메두사의 두상을 거꾸로 세워놓아 더 유명해진 이곳은 여행자들이 즐겨 찾는 명소가 되었다. 돌계단을 조심스레 건너 작품 ‘온기’의 한복판에 섰을 때 딱 그곳이 오버랩되었다. 오래된 것들 속에서 새로운 세계가 이어진 공간이었다.

팀코워크의 작품 ‘온기’는 홍제천과 환향녀 이야기로 전해지는 치유의 의미를 상기시킨다.

팀코워크의 작품 ‘온기’는 홍제천과 환향녀 이야기로 전해지는 치유의 의미를 상기시킨다. ©이선미

예레바탄 지하궁전이 제국 곳곳의 신전에서 가져온 336개의 아름다운 대리석 기둥 때문에 ‘궁전’이라고 불리는 것에 반해 홍제유연은 우리 현대사의 암울한 기억 위에 새로운 현재를 이어가는 소박한 물길이었다. 실제로 ‘홍제유연’이라는 이름에도 끊어지고 대립하던 과거의 상흔을 예술로 잇고 화합하기를 기원하는 마음을 담았다고 한다.

이스탄불에 있는 예레바탄 사라이는 300여 개의 대리석 기둥들 때문에 여행자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명소다.

이스탄불에 있는 예레바탄 사라이는 300여 개의 대리석 기둥들 때문에 여행자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명소다. ©이선미

초입의 벽에 설치된 ‘홍제 마니차’ 역시 그런 바람을 담은 공간일 것이다. 원래 불교 경전을 담은 원통 마니차를 돌리는 것은 경전을 읽는 것과 같은 일이다. 말하자면 또 하나의 기도인 셈이다. ‘홍제 마니차’에는 ‘내 인생의 빛나는 순간, 내 인생의 빛’을 주제로 천여 명의 시민이 남긴 메시지가 새겨졌다. 마니차를 돌리며 읽게 되는 서로의 빛나던 순간들을 공유하면서 따뜻한 마음을 나누자는 의미로 설치했다고 한다.

천여 명의 시민이 ‘내 인생의 빛나는 순간, 내 인생의 빛’을 새겨 넣은 ‘홍제 마니차’

천여 명의 시민이 ‘내 인생의 빛나는 순간, 내 인생의 빛’을 새겨 넣은 ‘홍제 마니차’ ©이선미

1970년 홍제천을 복개하고 세운 ‘유진상가’는 만에 하나 북한의 공격이 있을 때 이를 폭파해 공격을 저지할 목적을 갖고 있었다. 1992년 내부순환도로 공사 때는 건물 일부가 잘리는 등 수난을 겪기도 했다. 그리고 하부 공간은 지난 50년 동안 사람들의 출입이 통제되었다.

그 자체가 하나의 작품처럼 보이는 100여 개의 콘크리트 기둥은 남북 분단을 상기시키는 아픈 흔적이다

그 자체가 하나의 작품처럼 보이는 100여 개의 콘크리트 기둥은 남북 분단을 상기시키는 아픈 흔적이다. ©이선미

2019년 서울시는 ‘서울은 미술관’의 일환인 2019 지역단위 공공미술 사업으로 ‘유진상가 지하공간’을 선정했다. 50년 만에 지하공간에 온기가 돌았다. 서대문구와 서울시가 협력해 공간을 재생하며 안전시설을 정비하고 작품 구현까지 오랜 시간을 공들인 결과 한국전쟁 70주년인 올해 7월 문화공간으로 거듭난 ‘홍제유연’이 시민들에게 공개되었다. 50년 동안 어둠 속에 있었던 유진상가 하부 공간이 빛과 음악과 색채로 가득한 미술관이 되었다.

물의 잔상과 빛, 소리로 새 생명을 얻을 홍제유연의 의미를 나타낸 'MoonSun, SunMoon’

물의 잔상과 빛, 소리로 새 생명을 얻을 홍제유연의 의미를 나타낸 'MoonSun, SunMoon’ ©이선미

숲 그림자 산책길로 사람들이 걸음과 호흡에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든 '숨 길'

숲 그림자 산책길로 사람들이 걸음과 호흡에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든 '숨 길' ©이선미

홍제천의 생태적인 의미를 담아 생명의 메시지를 전하는 3D 홀로그램 '미장센_홍제연가'

홍제천의 생태적인 의미를 담아 생명의 메시지를 전하는 3D 홀로그램 '미장센_홍제연가' ©이선미

2030세대에게는 이미 또 하나의 뉴트로 명소로 알려진 홍제유연은 문체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올 가을을 위해 공개한 ‘숨은 관광지’ 7곳에도 포함되었다. 온라인을 통해 국민들의 추천을 받은 관광지 2,200여 곳 가운데 전문가들이 엄선했다는데 ‘서귀포 치유의 숲’과 ‘광주 전일빌딩245’, ‘제천 의림지 용추폭포’ 등과 함께 선정된 홍제유연은 ‘지하 예술궁전 같은’ 곳으로 소개되었다.

열린홍제천길은 홍제유연 곁으로 산책로와 자전거길을 내 더 독특한 풍경이 되었다.

열린홍제천길은 홍제유연 곁으로 산책로와 자전거길을 내 더 독특한 풍경이 되었다. ©이선미

홍제천은 ‘사람을 구하는 마음이 담긴 물길’이었다고 전해진다. 병자호란 후 청나라에 끌려갔던 조선의 아녀자들 가운데 천신만고 끝에 귀향한 이들을 ‘환향녀’라고 부르며 손가락질했다. 그로부터 ‘화냥년’이라는 아픈 말이 나왔는데, 이런 사실을 알게 된 인조 임금이 ‘홍제천에서 몸을 깨끗이 씻으면 일체의 과거를 불문에 붙이겠다’고 공표했다. 많은 여인들이 몇 날 며칠 몸을 씻으며 임금의 은혜를 기억하기 위해 이 주변을 ‘홍은동’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아픈 역사 속에 사람을 구하고자 한 임금의 마음도 담겨 있는 이 물길에는 누군가에게 손을 내미는 작품들이 있다. 추운 마음을 녹이는 온기가 있다. 좋은 예술은 마땅히 그럴 만한 힘을 가지고 있다. 홍제유연은 생각보다 좋았다.

■ 유진상가 지하예술 공간 ‘홍제유연’
○ 위치 :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48-84 유진상가 지하공간 250m
○ 개방 : 매일 10:00 – 22:00
○ 교통 : 지하철 3호선 홍제역, 버스정류장 : 유진상가, 유진상가 다리앞, 인왕시장 떡집 앞 하차

○ 문의 : 02-2133-2710(문화본부 디자인정책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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