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가본 '한양도성 유적전시관'...“흙 구멍도 흥미롭네"

시민기자 김수정

발행일 2020.10.13. 15:00

수정일 2020.10.13. 15:52

조회 2,629

조선왕조 도읍지인 한성부의 도심 경계를 표시하고 그 권위를 드러내며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축조된 ‘한양도성’. 조선 시대에는 성곽을 따라 걸으며 도성 안팎의 풍경을 감상하는 순성 놀이를 즐겼다. ‘도성을 한 바퀴 빙 돌면 소원이 이뤄진다’는 말이 전해져 과거시험을 보러 한양에 온 선비들이 순성하며 과거 급제를 빌기도 했다.

매년 가을이면 옛 선조들의 풍습을 이어 순성 놀이를 비롯해 성곽을 즐길 수 있는 축제가 열린다. 올해 8회를 맞이한 '한양도성문화제'가 지난 10월 9일과 10일 양일간 한양도성 일대에서 진행되었다.

남산 자락에 위치한 한양도성 유적전시관이 문화제 기간 임시 개관했다.

남산 자락에 위치한 한양도성 유적전시관이 문화제 기간 임시 개관했다. ©김수정

제8회 한양도성문화제의 주 행사장은 ‘한양도성 유적전시관’이었다. 남산 자락 아래 위치한 한양도성 유적전시관은 아직 정식으로 개관하지 않았음에도 한양도성문화제를 위해 특별히 임시 개관하여 시민들을 맞았다. 한양도성 600여 년 역사의 흔적을 볼 수 있는 유일한 장소를 미리 관람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개관 이후 운영하게 될 전시해설도 들을 수 있었다.

한양도성은 북악산, 낙산, 남산, 인왕산의능선을 따라 약 18.6km에 이르는 도성이다. 그 중 남산자락에 있던 한양도성은 일제 강점기에 조선 신궁이 세워지고, 1960~70년대에는 남산식물원과 동물원, 분수대 등이 만들어지며 잊혀져 가고 있었다. 2009년부터 남산의 지형을 되살리는 프로젝트가 시작되면서 발굴 조사를 통해 땅속에서 성벽의 유구가 발견되었다.

개관을 앞둔 한양도성 유적전시관은 이러한 과정을 거쳐 2013~2014년 발굴 조사를 통해 드러난 한양도성 성벽을 보존하고 시민들에게 공개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 연내 시범 운영을 통해 공식 개장을 할 예정이다.

2013년부터 2년여간 발굴한 끝에 한양도성 성곽 유적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2013년부터 2년여 간 발굴한 끝에 한양도성 성곽 유적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김수정

발굴된 성벽 앞부분에 움푹움푹 들어간 구멍들이 있다. 성벽을 쌓을 때 무거운 돌을 올리기 위해 지렛대 역할을 한 나무 기둥을 박았던 흔적이다. 이 구멍들은 2~3개씩 짝을 이루며 성벽과 나란히 발견되었는데, 남산유적지에서는 총 137개의 구멍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구멍 흔적의 보호를 위해 모두 보존 처리한 후 관람객이 볼 수 있도록 몇 개면 노출하고, 나머지는 모래를 채워 다시 땅속에 묻었다.

성벽 앞 무거운 돌을 올리는 지렛대인 나무기둥을 박았던 흔적을 볼 수 있다.

성벽 앞 무거운 돌을 올리는 지렛대인 나무기둥을 박았던 흔적을 볼 수 있다. ©김수정

유적지에서는 한양도성을 쌓아 올린 기술의 변화와 다양한 성돌의 모양도 살펴볼 수 있다. 성벽의 맨 아래 가로가 긴 대형 기초석은 14세기 태조 때 쌓은 성돌이다. 그 위에 올려 쌓은 성돌 중 비교적 작고 납작한 것은 15세기 세종에 쌓은 것이고, 좀 더 크고 반듯하게 생긴 성돌은 18세기 숙종 때 쌓은 것이다. 19세기에 이르면 성돌의 크기가 60cm로 아주 많이 커지는데, 5세기에 걸친 조선 왕조 축성 기술의 발전 단계를 한눈에 볼 수 있어 흥미롭다.

시대별로 각기 다른 성돌의 모양이 흥미롭다.

시대별로 각기 다른 성돌의 모양이 흥미롭다. ©김수정

해설을 들으며 유적들을 관람하던 중 멀리서 빨간 곤룡포를 입은 임금이 걸어오고 있었다. 순성 놀이를 즐기는 중이란다. 함께 전시해설을 듣고 있던 아이에게 돌 하나를 가리키며 어느 시기에 쌓은 성벽이냐 물어본다. 우물쭈물하자 10월 9일이 무슨 날이냐고 다시 질문한다. 이번에는 한글날이라 자신 있게 대답을 하니 고개를 끄덕이며 한글을 만드신 세종대왕 때 축성된 돌이라며 잊지 말란다.

한양도성문화제 행사장에 나타난 임금 복장을 한 관계자

한양도성문화제 행사장에 나타난 임금 복장을 한 관계자 ©김수정

임금 복장을 한 관계자와 기념사진을 찍고 다시 유적지를 둘러보았다. 계단을 몇 개 오르니 각자성석이 보인다. 한양도성 성돌에는 성을 쌓는 일과 관련된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이를 각자성석이라 한다. 각자성석은 새겨진 내용에 따라 세 시기로 나눌 수 있다. 14세기에는 축성 구간이 표시되어 있고, 15세기에는 축성을 담당한 지방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17세기 이후에는 공사를 책임진 관리의 이름과 돌을 다루는 석공의 이름까지 보다 상세한 내용이 담겼다. 현재 한양도성 전 구간에는 280개 이상의 각자성석이 남아 있는데, 새겨진 글자를 보며 축성시기를 유추할 수 있다. 한양도성 유적전시관에서 볼 수 있는 것은 ‘내자육백척’이란 글씨로 60번째 구간이며, 구간의 길이가 600척이란 의미다. 14세기에 축성했음을 알 수 있다.

각자성석에 새겨진 글자를 보면 축성시기를 유추해 볼 수 있다.

각자성석에 새겨진 글자를 보면 축성시기를 유추해 볼 수 있다. ©김수정

전시관에는 우리의 아픈 근대사 흔적도 남아 있다.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일본 신사였던 조선 신궁의 배전터와 적의 공격이나 폭격기의 공습을 피하는 방공호 입구가 있다. 중년 이상이라면 한 번쯤은 가봤을 법한 남산 분수대도 남아 있다. 500년 조선 왕조의 변화와 일제 강점기 훼손의 흔적, 그리고 이후의 격변들을 한자리에서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전시관에서는 500년 조선왕조의 변화와 이후 격변의 현장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전시관에서는 500년 조선왕조의 변화와 이후 격변의 현장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김수정

축제기간이어서 임시 무대에서는 ‘도전! 한양도성 골든벨’ 진행이 한창이었다. 비대면으로 진행한 행사로 무대에는 아나운서만 자리를 지키고 참가자들은 커다란 화면을 통해 만날 수 있었다. 유적지 곳곳에는 ‘한양도성을 지키는 아름다운 사람들 사진전’과 ‘한양도성, 시로 물들이다’ 수상작이 전시되어 있는 등 즐길거리가 풍성했다.

한양도성문화제의 일환으로 비대면 골든벨과 사진전, 시화전 등이 열렸다.

한양도성문화제의 일환으로 비대면 골든벨과 사진전, 시화전 등이 열렸다. ©김수정

한양도성문화제의 꽃인 순성놀이는 코로나19 상황에서 특별하게 진행되었다. 소수의 인원만 참여할 수 있었던 '잇기 순성'은 백악구간, 낙산구간, 목멱(남산)구간, 인왕구간을 나누어 이어가며 순성하는 프로그램이었다. 한양도성 비대면 순성 놀이도 함께 진행되었다. 순성꾸러미를 사전에 받아 각자 한양도성을 따라 걸은 후 인스타그램에 인증하는 방식이다. 또한, 모바일을 통한 한양도성 AR 순성 즐기기는 언제 어디서나 참여할 수 있다.

숭례문 ~ 한양도성 유적전시관 ~ 남산 정상까지 비대면 순성놀이에 참여했다.

숭례문 ~ 한양도성 유적전시관 ~ 남산 정상까지 비대면 순성놀이에 참여했다. ©김수정

필자 역시 숭례문에서부터 한양도성 유적전시관을 거쳐 남산 정상까지 걸으며 비대면 순성 놀이에 참여해보았다. 코로나19 극복을 기원하는 순성으로, 모두가 한 마음으로 기도하며 걸었다. 가을이 깊어질수록 서울의 산들은 알록달록 더욱 아름다워질 것이다. 남은 가을, 조상들이 즐겼던 풍류를 함께 하며 코로나19 극복을 빌어보면 어떨까.

■ 한양도성 유적 전시관 : 서울시 중구 회현동1가 100-267 (안중근의사 기념관 맞은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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