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간의 여정,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서로를 보다"

시민기자 류현지

발행일 2020.09.18. 10:38

수정일 2020.09.18. 16:56

조회 1,385

제 22회 서울국제영화제가 지난 10일 메가박스 상암월드컵경기장점에서 개최됐다.

제 22회 서울국제영화제가 지난 10일 메가박스 상암월드컵경기장점에서 개최됐다. ©류현지

'여성이 만들거나, 여성이 내용의 중심이거나, 여성 관객을 대상으로 하는 영화' 여성영화

1997년 제 1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시작됐다. '여성의 눈으로 세상을 보자'라는 20여 년 전통의 캐치프레이즈와 '서로를 보다'라는 새 슬로건 아래 지난 10일, 22주년 영화제의 막이 올랐다. 

여러 우려 속에서 기획된 행사였지만 변화를 통해 큰 차질 없이 진행돼 16일 폐막했다. 이름부터 흥미로운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영화제라는 개념도 생소하던 90년대 후반에 시작된 전통있는 영화제는 어떤 사람들에 의해서, 어떤 이야기를 담게 되었을까?

코로나19 상황 속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자원봉사자들이 방역 규칙에 따라 방문객들을 체크하고 있다

자원봉사자들이 방역 규칙에 따라 방문객들을 체크하고 있다. ©류현지

2020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언택트' 트렌드에 발맞추어 진행되었다. 코로나19라는 유래 없는 직격탄에 많은 국내외 영화제가 무산되거나 온라인으로 진행되었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도 이러한 고민을 거쳐, OTT 플랫폼 웨이브를 통해 온오프라인 동시 진행을 결정했다. 이를 통해 시대에 반응하며 다양한 방식으로 연결이 계속되고 있음을 시사했다.

장기화 된 코로나19 사태로 코로나 블루에 허덕이는 현대인들에게 서로가 여전히 존재함을 확인하고자 했던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1분 이내의 영상 50편을 선착순으로 모집한 후 개막작으로 선보였다. 이 프로젝트는 모집 공모 후 2일만에 조기 마감되며 영화를 통한 연결에 대한 영화인들의 갈증을 보여주었다. 정지혜 프로그래머의 언급처럼, 이 영상들은 이 시대의 풍경과 여성 영화인들의 현재에 대한 중요한 아카이빙 자료로서 기록될 것이다.

왜, 여성영화제인가?

메가박스 외부에 걸린 서울여성영화제 안내 현수막의 모습

메가박스 외부에 걸린 서울여성영화제 안내 현수막의 모습 ©류현지

지난 2018년, 국내를 뜨겁게 달군 ‘미투’ 운동의 확산이 영화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이를 계기로 영화 산업 전반에서 성 평등과 관련해 어느 정도 인지를 가지게 되었지만, 산업 내외로 침투해 있는 불평등은 여전히 해결해야 할 산이다. 최근 5년 간 개봉한 상업 영화 가운데 여성 감독의 비율은 5~10%에 불과하며, 스크린에는 남성 중심적 욕망을 투사하는 영화들이 지배적이다. 여성의 경험과 시선을 담은 영화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저는 여성끼리의 연대가 꼭 얘기 됐으면 좋겠어요. 한국영화 산업 안에서 소수자인 여성들이 함께 만든 사건, 결과 같은 것들이 잊히지 않고 역사에서 사라지지 않고, 폄훼되지 않고 제대로 평가받는 것이 저는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도서 '영화하는 여자들' 속 '명필름'의 심재명 대표 인터뷰이다. 심 대표는 1987년의 서울극장에 처음 입사해 대표가 되기까지 20여 년의 커리어를 쌓아 온 경력자이며, 20년 전통의 여성영화인모임 창립 멤버이기도 하다.

입사 초기 당시 심대표는 직함이 아닌 '미스 심'으로 불리며 일해왔다. 이처럼 단순한 호칭에서부터 드러나는 일상적인 차별을 견뎌내며 현장에서 일하던 여성들은 여성문화예술기획이라는 여성주의 문화예술운동 단체를 설립했다. 이후 여성주의 연극 <자기만의 방>, <버자이너 모놀로그> 등을 공연했고 이어 1997년 서울국제여성영화제를 기획하였다.

당시 제 1회 여성영화제에 대한 관객들의 반응은 예상보다 뜨거웠다. 애초에 격년제로 기획된 영화제였지만 2001년부터 연례화되어 현재까지 이어지며, 여성의 시각으로 보는 세상과 그를 담은 영화들을 꾸준히 지지하고 있다. 산업의 비주류로 여겨져 왔던 여성들이 나름의 방식으로 꾸준히 존재하고 있음을 영화제를 통해 수 년간 증명해 왔다는 것에 큰 의의가 있다.

피칭하면, 캐치할게요! '피치&캐치 (Pitch&Catch)'

 'NOW SHOWING'에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포스터가 걸려있다

 'NOW SHOWING'에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포스터가 걸려있다. ©류현지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는 여성과 영화라는 주제에 관련된 여러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특히 영화제의 중요한 정체성인 ‘피치&캐치 (Pitch&Catch)’ 행사는 10여 년동안 이어져 온 주요 프로젝트다.

이 행사는 기성과 신인의 구분 없이 여성창작자들의 기획개발 콘텐츠를 발굴하고 육성하는 공개 피칭 프로그램이다. 수상작에 선정되면 현직자들과 멘토링을 진행하며 일정의 지원금을 제공받아 영화 제작에 힘쓸 수 있다. 또 우수한 영상들을 제작사와 투자배급사 등에 소개해 감독들의 잠재된 작품들이 산업적인 측면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길잡이 역할을 하기도 한다.

피치&캐치 프로그램을 통해 영화계로 발돋움하게 되었던 대표 작품들로는 김보라 감독의 <벌새> (2019), 임선애 감독의 <69세> (2019), 이수연 감독의 <해빙> (2017), 한준희 감독의 <차이나 타운> (2015) 등이 있다.

피치 & 캐치 프로젝트의 역대 수상작

피치 & 캐치 프로젝트의 역대 수상작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영화는 고위험 고수익 사업이다. 제작비와 규모의 측면에서 큰 차이가 있긴 하지만, 대기업의 비즈니스로 진행되는 영화 제작과정 자체를 개인의 창작자가 진행하기란 여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니다. 한 창작자가 시나리오를 기획하고 이를 영상으로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저예산 독립영화라 하더라도 예측조차 어려운 시간과 노력, 그리고 무엇보다 자금이 필요하다. 개봉 이후에는 손익분기점을 넘기지 못하게 되면 쉽게 적자를 보는 것이 영화계의 현실이다. 이런 창작자들에게 다양한 공모전과 펀딩 프로그램을 통한 지원금의 기회는 간절하다.  

피치&캐치 프로그램은 업계에서 주류로 인정받지 못해 왔던 여성 창작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한다. 이들은 기존의 사회에서 만들어지지 않았던 새로운 시각에서의 영화들을 창작한다. 펀딩 심사위원을 전부 여성으로 꾸려, 타 영화제 심사위원이 대부분 남성이라는 기존의 시각에서 벗어나 여성 영화의 육성에 그 초점을 둔다. 영화 업계에 이러한 인풋들은 업계 전체 시스템이 평등에 조금씩 가까워지도록 매년 한 걸음씩 기여한다는 점에서 괄목할 만하다.

여성 감독들은 이런 펀딩을 통해 데뷔해 독립 영화에서 인정받더라도, 상업 영화 감독으로서의 진출이 비교적 쉽지 않은 편이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 또한 지원금 제공과 독립 영화 데뷔 그 이후에 감독들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꾸준히 고민해 오고 있다.

다큐멘터리 '우린 일회용이 아니니까'

지난 13일, 메가박스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다큐멘터리 '우린 일회용이 아니니까'를 관람하고 GV (Guest Visit)에 참석해 보았다. 이 영화는 20대 감독 혜민이 40대 환경운동가 금자를 만나 제로웨이스트 (Zero Waste)를 확산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버디 무비이다. 피치&캐치 프로그램을 통해 다큐멘터리 옥랑문화상을 수상하고 그 지원금으로 추후 개봉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유혜민 감독에게 이 프로그램이 갖는 의미에 대해 물었다.

유 감독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첫째, 나의 영화를 통해 누군가 변화한다면 그것은 여성 관객이 먼저일 것이라 생각했다. 따라서 그 변화의 물결을 효과적으로 이뤄낼 수 있는 곳이 서울국제여성영화제였다고 생각한다. 둘째, 1500만원의 제작 지원금이다. (웃음) 이러한 지원은 신인 감독들에게 굉장한 기회이다. 지원금을 통해 다시 작업할 수 있게 되고, 또 그 과정에서 같이 이야기하고 고민할 수 있는 사람들이 생기게 해주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영화 '우린 일회용이 아니니까' 상영이 끝난 후 '온라인 GV에서 유혜민 감독과 정지혜 프로그래머가 대화 중이다

영화 '우린 일회용이 아니니까' 상영이 끝난 후 '온라인 GV에서 유혜민 감독과 정지혜 프로그래머가 대화 중이다. ©류현지

"개인이 감동하면 전체가 비틀거리게 돼요"

영화 속 인터뷰에서 환경운동가 금자가 확신에 찬 눈빛으로 내뱉은 말이다.

여성 영화인들은 개인을 감동시킴으로서 어떤 변화를 만들고 싶은 것일까. 감동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럴 만한 매개체와 계기가 필요하다. ‘우리는 왜’에 대한 질문을 놓지 않고 변화의 계기를 만들어가는 여성 영화인은 사회에 감동을 전할 다양한 방법들 중 ‘영화’로서 그 목소리를 전한다. 소통과 표현에 대한 갈증에 든든함이 되어주는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여전히 끊임 없는 고민과 실행의 반복을 통해 일말의 답을 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홈페이지 : http://siwff.or.kr/kor/default.a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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