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일곱 후궁 모신 '칠궁' 랜선 답사로 만나요!

시민기자 이선미

발행일 2020.09.11. 10:02

수정일 2020.09.11. 17:05

조회 2,498

청와대 옆에 위치한 칠궁(七宮)은 조선시대 왕을 낳은 후궁 7명의 신주를 모신 사당이다. 무궁화동산에 무궁화 필 때 꼭 가보리라 했는데 시기가 맞지 않았다. 현재는 코로나19 관련 강화된 방역조치 시행으로 안내해설이 잠정 중단된 상태다. 다행히 문화재청이 칠궁 특별답사 프로그램 ‘표석을 따라 듣는 칠궁이야기’를 온라인으로 제작해 공개한다고 해서 부지런히 찾아보았다.

문화재청이 제공하는 ‘랜선 답사 칠궁 이야기’가 9일 공개됐다

문화재청이 제공하는 ‘랜선 답사 칠궁 이야기’가 9일 공개됐다. ⓒ문화재청

건국대 사학과 신병주 교수와 함께하는 칠궁 탐방은 조근조근 역사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왕의 어머니였으나 왕비가 아니었기에 종묘에 모시지 못한 일곱 후궁의 사당은 제각기 무수한 이야기들을 품고 있었다.

왕의 어머니가 된 후궁들의 사당은 도성 안 곳곳에 있었다.

왕의 어머니가 된 후궁들의 사당은 도성 안 곳곳에 있었다. ⓒ문화재청

가장 먼저 찾은 육상궁은 칠궁의 중심이자 이곳이 존재할 수 있는 근거였다. 1725년(영조1년) 영조는 후궁이었던 어머니를 종묘에 모시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대신 어머니를 기리는 사당 숙빈묘를 세웠다. 이를 계기로 아들이 왕이 된 후궁들의 신주를 모신 사당이 곳곳에 세워졌다. 후대에 왕으로 추존된 아들의 어머니들도 있었다.

칠궁은 왕의 어머니였던 일곱 후궁의 신주를 모신 곳이다.

칠궁은 왕의 어머니였던 일곱 후궁의 신주를 모신 곳이다. ⓒ문화재청

1870년에는 영조의 후궁이자 추존왕 진종의 어머니 정빈 이씨의 사당 연호궁이 육상궁에 합사되었다. 1908년에는 저경궁, 대빈궁, 선희궁, 경우궁, 4개의 사당이 옮겨졌고, 1929년 덕안궁이 이곳에 오면서 ‘칠궁’이 되었다.

사적 제149호로 지정된 육상궁은 당연히 칠궁의 중심이다. 숙빈묘는 묘호를 고쳐 육상묘가 되었다가 나중에 육상궁으로 승격되었다. 지금 우리가 볼 수 있는 현판에는 그 옛날의 흔적인 ‘육상묘’가 쓰여 있다. 영조는 재위 중에 육상궁을 200여 차례나 찾을 만큼 어머니에 대한 효심이 지극했다고 전해진다.

영조의 어머니 사당인 육상궁에 영조의 후궁 정빈 이씨의 연호궁이 합해졌다

영조의 어머니 사당인 육상궁에 영조의 후궁 정빈 이씨의 연호궁이 합해졌다. ⓒ문화재청

육상궁을 나와 정원으로 들어섰다. 저경궁, 대빈궁, 선희궁(경우궁), 덕안궁 네 사당이 서로 접해 서 있는 칠궁의 서쪽 권역이다.

육상궁에서 서쪽 권역으로 가는 길에는 정원이 조성되어 있다

육상궁에서 서쪽 권역으로 가는 길에는 정원이 조성되어 있다. ⓒ문화재청

저경궁은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공간이다. 선조임금의 총애를 받은 인빈 김씨는 정원군을 낳았는데 그의 아들이 훗날 인조가 되어 아버지를 원종으로 추존하였다. 덕분에 인빈 김씨도 '왕을 낳은' 후궁의 대열에 합류할 수 있었다. 한국은행 본관 자리에 있던 저경궁이 칠궁으로 오면서 왕실 서열상 가장 연장자로 맨 서쪽에 위치하고 있다. 한편 똑같이 선조의 후궁으로 광해군을 낳은 공빈 김씨는 아들이 폐위되면서 신주조차 모실 수 없게 되었다.

칠궁의 서쪽 권역에는 저경궁, 대빈궁, 경우궁(선희궁), 덕안궁 등의 사당이 있다

칠궁의 서쪽 권역에는 저경궁, 대빈궁, 경우궁(선희궁), 덕안궁 등의 사당이 있다. ⓒ문화재청

그 옆으로 숙종의 후궁이자 경종의 생모인 희빈 장씨의 대빈궁이 있다. '장희빈'의 사당은 다른 곳과 좀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다. 특별히 눈에 띄는 것이 기둥인데 다른 사당이 사각 기둥인 데 반해 대빈궁은 둥근 기둥을 가지고 있다. 이는 한때나마 왕비였던 그의 위상을 보여주는 요소라고 한다.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신 종묘의 기둥 역시 원형이고, 경복궁 근정전도 둥근 기둥으로 돼 있다.

또한 대빈궁은 다른 사당보다 한 단 높게 세워지고 계단도 다른 곳보다 하나 더 많은 네 개다. 장식도 비교적 화려하다. 한 가지 덧붙인다면, 희빈 장씨의 사당은 여느 '왕을 낳은 후궁'처럼 칠궁에 모셔졌지만 그의 무덤은 '대빈묘'로 무덤의 위계로 볼 때 가장 낮은 단계다. 경종은 왕위에 오른 후 어머니를 옥산부대빈(玉山府大嬪)으로 추존하고 사당인 대빈궁을 세웠다. 하지만 4년이라는 짧은 재위를 뒤로 하고 그가 세상을 떠난 후 '장희빈'은 여전히 희대의 악녀로 기억되고, 그의 무덤은 아직도 '대빈묘'다.

희빈 장씨의 대빈궁에서는 한때 왕비였던 위치를 보여주는 요소들을 찾을 수 있다

희빈 장씨의 대빈궁에서는 한때 왕비였던 위치를 보여주는 요소들을 찾을 수 있다. ⓒ문화재청

대빈궁 오른쪽에 있는 사당은 경우궁과 선희궁이 합사된 곳이다. 경우궁은 정조의 후궁으로 순조의 생모인 수빈 박씨의 사당이고, 선희궁은 사도세자의 어머니 영빈 이씨의 사당이다. 서울농학교 안에는 사당의 형태가 원형 그대로 남은 선희궁 터가 있다. 아들의 죽음을 지켜봐야 했던 비운의 어머니 역시 칠궁에 모셔졌다.

서울농학교 안에는 사도세자의 어머니 영빈 이씨의 선희궁 터가 사당의 원형 그대로 남아 있다.

서울농학교 안에는 사도세자의 어머니 영빈 이씨의 선희궁 터가 사당의 원형 그대로 남아 있다. ⓒ문화재청

칠궁의 마지막 사당은 영친왕의 어머니 순헌 귀비 엄씨의 신주를 모신 덕안궁이다. 1908년까지는 육궁이었다가 1929년 오늘날의 칠궁이 되었다.

왕을 낳은 일곱 후궁이 모셔져 있지만 육상궁과 연호궁, 선희궁과 경우궁에는 신주가 같이 모셔져 사당은 모두 다섯 건물이다. 이 사당들은 칠궁에 한데 모시기까지 서울 도심 곳곳에 흩어져 있었다. 때로는 몇 번씩 옮기기도 했다.

1929년 영친왕의 어머니 순헌 귀비 엄씨의 사당 덕안궁이 세워져 칠궁이 되었다

1929년 영친왕의 어머니 순헌 귀비 엄씨의 사당 덕안궁이 세워져 칠궁이 되었다. ⓒ문화재청

지난 9일부터 공개된 ‘랜선 답사 칠궁이야기’는 문화재청 홈페이지(www.cha.go.kr)와 궁능유적본부 홈페이지(royal.cha.go.kr), 경복궁관리소 홈페이지(royalpalace.go.kr)와 경복궁 트위터(twitter.com/royalpalacego), 경복궁 인스타그램(instagram.com/gbg_palace), 문화재청 공식 유튜브 채널(youtube.com/chluvu),  한국문화재재단 문화유산채널 유튜브(youtube.com/user/koreanheritage) 등에서 시청할 수 있다.

후궁의 아들 영조가 어머니에 대한 효심으로 지었던 육상궁을 시작으로 일곱 어머니가 칠궁에 모셔져 있다. 사연도 다르고 위상도 다른 조선 왕실의 여성들, 어머니들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는  일곱 후궁의 보이지 않는 옛 이야기가 전해지는 곳이다. 서울 한복판에 있지만 좀처럼 찾아가보기가 어려운 칠궁, 이참에 온라인 답사부터 떠나보면 어떨까.

문의 : 02-734-7720(문화재청 경복궁관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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