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궁+오솔길' 고즈넉한 경희궁 산책

시민기자 염승화

발행일 2020.08.13. 13:24

수정일 2020.08.19. 10:51

조회 1,325

※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 시행에 따라 별도 안내 시까지 휴궁합니다

비가 내려도 한가로이 산책하기 좋은 고궁을 찾았다. 모처럼 종로구 새문안로에 있는 경희궁을 향했다. 고즈넉한 분위기가 으뜸이고 최근에 경희궁지 발굴조사가 있던 곳이기에 어떻게 변했을지 궁금증도 많이 일었다.

서궐로 불리는 경희궁 숭정문이 보이는 전경

서궐로 불리는 경희궁 숭정문이 보이는 전경 ©염승화

경희궁은 1620년(광해군 12)에 완공되었다. 임진왜란으로 불에 타 버린 경복궁과 창덕궁 등을 대신해서 지은 것이다. 궁의 모습을 온전히 그림에 담은 보물 1534호 서궐도안에 따르면 전각과 문 등 건축물들이 190여 개에 이를 정도로 방대한 규모였다. 하지만 참담하게도 일제 침탈 시기에 거의 모든 건축물들이 파괴되었고 크기 또한 대폭 축소되었다.

궁안 건축물 중 유일하게 훼손되지 않은 흥화문

궁안 건축물 중 유일하게 훼손되지 않은 흥화문 ©염승화

지하철 서대문역에서 내려 조금 걷다보니 정문인 흥화문 앞이다. 경희궁이 행궁으로 지어졌기에 문루가 없는 단층 문이다. 훼손되지 않고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궁 안의 유일한 건축물이라 드나들 때면 아무래도 더 눈여겨보게 된다. 본래 위치는 현 구세군회관 자리이나 어처구니없게도 일본인 사찰(박문사)이나 호텔 문으로 쓰인 수난사를 안고 있다.

최근에 진행된 경희궁지 발굴조사에서 나온 석물들이 현장 한편에 비치되어 있다

최근에 진행된 경희궁지 발굴조사에서 나온 석물들이 현장 한편에 비치되어 있다. ©염승화

전각 방면으로 발길을 옮겼다. 옛 서울고가 자리하고 있던 야트막한 언덕 위 공터와 숭정문 앞 광장에 널찍하게 파헤쳐져 있었던 발굴 현장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흙과 잔디로 말끔히 덮여 있다. 아직 조사 결과는 알길 없으나 한편에 모아 놓은 몇몇 석물들은 직접 볼 수 있었다. 앞으로 어떤 유물이나 유적지가 발표, 확인될지 기대가 자못 컸다.

 일제 침탈로 제자리를 잃은 숭정전의 비운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일제 침탈로 제자리를 잃은 숭정전의 비운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염승화

곧장 숭전문 문턱을 넘자 박석이 넓게 깔려 있는 공간이 나타났다. 군주가 조회를 하던 정전인 숭정전 앞뜰이다. 그 중앙에 좌우 두 줄로 세워져 있는 품계석들에 눈길을 보내다가 임금이 만조백관이 도열해 있는 어로를 지나 월대 위로 오르는 장면을 떠올려보았다. 아닌 게 아니라 이곳은 조선의 왕 세 분(경종, 정조, 헌종)이 즉위를 한 뜻 깊은 장소이기도 하다. 다만, 당시 건물은 다른 곳으로 옮겨가 되돌아오지 못한 지 오래고 현재 건물은 1990년대 초에 다시 지은 것이라 아쉬움이 적지 않았다. 흥화문처럼 파괴는 모면했으나 동국대 정각원이라는 법당으로 쓰이는 비운은 끝내 피하지 못한 것이다.

편전인 자정전은 빈전이니 어진을 보관하는 장소로도 쓰였다. 일제가 파괴했으며 서울시가 복원했다

편전인 자정전은 빈전이니 어진을 보관하는 장소로도 쓰였다. 일제가 파괴했으며 서울시가 복원했다. ©염승화

발굴 모습을 실감나게 하는 전돌 전시

발굴 모습을 실감나게 하는 전돌 전시 ©염승화

편전이 있는 숭정전 뒤편으로 갔다. 임금이 집무를 보는 곳이나 숙종이 승하했을 때는 관을 모셔둔 빈전으로 쓰이기도 한 자정전이다. 위패나 왕의 초상화인 어진을 놓아두기도 했다고 한다. 일제가 헐어버렸으나 숭정전과 함께 복원되었다. 그때 출토된 전돌들을 자정전 왼쪽 옆 회랑에서 만났다. 표면에 쭉쭉 금이 간 상태 그대로의 모습이 인상 깊었다.

왕암으로 불리어 광해군이 인조의 아버지 정원군 옛집에 경희궁을 지었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왕암으로 불리어 광해군이 인조의 아버지 정원군 옛집에 경희궁을 지었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염승화

영조 어진을 비치해 둔 태령전 뒤뜰은 온통 바위로 이루어져 있었다. 왕암(王巖) 혹은 서암(瑞巖)으로 불리는 언덕이다. 그 아래 암천(巖泉)이라는 샘에서 솟은 것으로 보이는 물은 끊임없이 수로를 타고 흘러내렸다. 1708년(숙종 34)에 임금이 서암 두자를 직접 써서 새겨두었다는 어필은 국립고궁박물관에 있다.

 경희궁과 수백년을 함께 해 온 느티나무 노거수가 숭정문 앞 언덕에 우뚝 서 있다

 경희궁과 수백년을 함께 해 온 느티나무 노거수가 숭정문 앞 언덕에 우뚝 서 있다. ©염승화

경내를 천천히 살펴보다 다시 숭정문 앞으로 되돌아 나왔다. 그리곤 왼쪽 비탈 위에서 유독 시선을 끄는 커다란 고목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밑동 가운데가 휑하니 뚫려 괴상한 몸체를 지닌 느티나무 노거수다. 높이 19m, 둘레 3.8m 수령 약 390년에 이르는 이 나무는 ‘종로구 아름다운 나무’로 지정되어 있다. 일생을 경희궁과 함께 하며 일제의 만행으로 부서지고 훼손되는 순간들 역시 모두 하릴 없이 지켜보았을 산증인이리라. 아마도 그 아픔으로 구멍이 뻥 뚫렸을 것이라고 짐작해 보며 궁 외곽으로 향했다.

돌담밖 언덕에서 바라보는 경희궁 전경이 아름답다

돌담밖 언덕에서 바라보는 경희궁 전경이 아름답다. ©염승화

고궁 관람과 더불어 조용히 산책하기 좋은 경희궁 방문을 권하고 싶다.

고궁 관람과 더불어 조용히 산책하기 좋은 경희궁 방문을 권하고 싶다. ©염승화

담장을 끼고 이어지는 궁 둘레와 뒷산에 나 있는 한적한 오솔길을 걸었다. 운치 뛰어난 숲길과 돌담길을 번갈아가며 지난 것이다. 이 지점에 있는 영렬천 부근 고개는 특히 시야가 탁 트인 곳이라 궁을 한 눈에 바라보는 즐거움이 쏠쏠했다. 고궁 관람과 더불어 조용히 산책을 즐기기에 좋은 경희궁을 방문해보는 것은 어떨까.

경희궁 

○ 위치 : 서울 종로구 새문안로 45 (신문로2가)

○ 교통 : 지하철 5호선 서대문역 4번 출구 > 약 470m (도보 약8분) > 경희궁 입구

○ 운영 : 09:00~18:00 (매주 월요일, 1월 1일 휴관)

○ 입장료 : 무료
○ 문의 : 02-724-0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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