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밀하고 아름다운…왕이 사랑한 정원 ‘석파정’

시민기자 박은영

Visit121 Date2020.07.03 12:32

운치 있는 왕의 별장을 감상하고 초록초록한 숲 길을 걸어보자.

운치 있는 왕의 별장을 감상하고 초록초록한 숲 길을 걸어보자. ⓒ박은영

한때 흥선대원군의 별장으로 쓰인 장소가 있다. 빼어난 풍경에 왕의 국사와 쉼이 어우러진 ‘이 곳’은 대원군의 호를 딴 이름을 지녔다. 과연 이곳은 어디일까. 지난 해 11월, ‘유퀴즈온더블럭’이란 프로그램에 나온 문제다. 정답은 바로 부암동의 ‘석파정’이다. 왕의 별장이란 타이틀로 사람들에게 주목받은 석파정은 원래 철종 때 영의정을 지낸 세도가인 김흥근의 별서였다. 별서란 잠깐 쉬었다 가는 별장과 조금 달리 비교적 오랫동안 집 대신 거주하는 공간을 뜻한다.

거리두기를 하며 입장하는 서울미술관 3층 매표소

거리두기를 하며 입장하는 서울미술관 3층 매표소 ⓒ박은영

김홍근이 별서를 만들기 전부터 경치가 좋기로 유명한 곳이었던 석파정은 1974년 1월 15일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6호로 지정됐다. 종로구 부암동에 위치하고 있으며 현재는 서울미술관에서 관리하고 있다. 

왕이 쉬어 가는 정원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다. 버스를 타고 도착한 석파정은 서울미술관 3층 매표소에서 티켓을 구입해 입장할 수 있었다. 평소 서울미술관의 메인 전시와 석파정을 함께 둘러보면 11,000원의 통합 입장권을 구입해야 하지만, 지금은 코로나19로 메인전시 프로그램은 없다. 석파정의 입장권(5,000원)만으로 신관에서 열리는 전시를 감상할 수 있다고 한다.

 옥상 잔디정원에서 조각품을 사이에 두고 북한산이 보인다.

 옥상 잔디정원에서 조각품을 사이에 두고 북한산이 보인다. ⓒ박은영

매표소에서는 코로나19 대응 매뉴얼에 따라 움직여야 했다. 거리두기를 지키고 손소독제와 체온을 측정했고,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입장이 불가했다. 3층에서 입장권을 구입해 아담한 전시공간을 지나 또 다시 계단을 오르니 비로소 석파정 입구가 보였다. 건물을 통해 갈 수 있는 은밀하고 한적한 또 다른 세상에 도착한 듯 했다. 

힐링 산책하기에 좋은 흥선대원군의 별서

힐링 산책하기에 좋은 흥선대원군의 별서 ⓒ박은영

가지런한 잔디 가운데 자리한 작품이 눈길을 끌었고, 녹음이 짙은 나무 사이로 단아한 모습을 드러낸 한옥의 자태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흥선대원군의 별서는 안채와 사랑채, 별채와 같은 살림채로 이루어져 있었다. 안채는 중부지방의 전형적인 ㅁ 자 구조의 살림채로 안으로 들어가 볼 수는 없었지만, 흥선대원군이 묶었던 방도 들여다 볼 수 있도록 했다.

오랜 세월 석파정 마당을 지켜오고 있는 천세송

오랜 세월 석파정 마당을 지켜오고 있는 천세송 ⓒ박은영

사랑채 측면으로 너른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 노송이 보인다. 서울시 지정 보호수 60호인 오래된 소나무, 천세송이다. 천년을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름 지어진 천세송은 가지가 옆으로 뻗어 기둥받침을 한 모습으로 오랜 세월을 석파정과 함께 지내왔음을 느낄 수 있었다.

아이들이 너럭바위 위에서 얕은 계곡을 구경하고 있다.

아이들이 너럭바위 위에서 얕은 계곡을 구경하고 있다. ⓒ박은영

앞으로는 잔돌 하나 없이 그대로 얕은 계곡의 바닥을 이루고 있는 펑퍼짐한 너럭바위가 산자락으로 이어진다. 지금은 물이 말라 비가 많이 올 때나 흐른다지만 사철 물이 흘러내리던 모습을 그리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다. 너럭바위 위로 포개진 커다란 바위 단면에는 소수운렴암이라는 한자가 새겨져 있는데. 구름 발 드리운 물 위의 암자란 뜻이다.

구름길 산책에서 벽화를 마주하는 기분은 또 색다르다

구름길 산책에서 벽화를 마주하는 기분은 또 색다르다.  ⓒ박은영

오른쪽의 오솔길을 따라 오르니 아담하고 단정한 모습의 별채가 보인다. 담으로 둘러쌓인 안채와 떨어져 담 밖에 따로 지은 이곳은 고종이 머물던 공간이었다. 고종은 부암동 일대와 북악산과 인왕산 바위가 보이는 이곳의 풍경을 즐겨 보았다고 한다. 고종이 즐겨 보았다던 그 풍경을 가만히 서서 바라보고 있자니 속세의 걱정을 잠시 잊고 마음이 편안해 지는 느낌이 들었다.

석파정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너럭바위로 코끼리바위라고도 불린다

석파정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너럭바위로 코끼리바위라고도 불린다. ⓒ박은영

구름길이라는 오름길에는 이중섭의 작품과 더불어 정감 있는 벽화들을 감상할 수도 있는데, 동네에서만 볼 수 있는 벽화를 산길에서 마주하니 색다른 기분이었다. 어느 정도 걸으니 너럭바위가 있는 석파정의 가장 높은 곳이다. 그 형상이 코끼리를 닮았다 하여 코끼리 바위로도 불리고, 아이가 없던 노부부가 이 바위 앞에서 소원을 빌어 득남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며 소원바위로도 불린다. 잠시 서서 바위를 향해 작은 소원을 빌어 보았다.

숲 속 한편에 위치한 정자 석파정

숲 속 한편에 위치한 정자 석파정 ⓒ박은영

길을 따라 오솔길을 걸으면 중국풍으로 지은 정자인 ‘석파정’을 볼 수 있다. ‘유수성중관풍루’라고도 불리는데, 이는 흐르는 물소리 속에서 단풍을 구경하는 누각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석파정은 전통적인 한국의 정자와 조금 다른 화려함을 지니고 있었다. 바닥을 화강암으로 마감하고, 기둥에 꾸밈벽과 지붕을 청나라 풍으로 꾸몄기 때문이다. 석파정이라는 이름은 정자 앞산이 모두 바위여서 대원군이 석파라고 이름 지었으며, 흥선대원군의 호를 ‘석파’라고 한 것도 이로 인한 것이다.  

사랑채 뒤편 언덕에 있는 별채는 고종이 머물던 공간이다.

사랑채 뒤편 언덕에 있는 별채는 고종이 머물던 공간이다. ⓒ박은영

조금 더 길을 따라 걸으면 2층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쌓아올려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 석탑의 모습을 한 신라삼층석탑도 볼 수 있다. 이는 개인 소유 경작지에서 수습해 현재의 모습으로 조립되었고, 2012년에 현 위치로 이전 설치되었다고 한다.

석파정은 정자로 지어진 별장이지만 사랑채, 안채, 별채, 정자 등을 제대로 갖추고 있다.

석파정은 정자로 지어진 별장이지만 사랑채, 안채, 별채, 정자 등을 제대로 갖추고 있다. ⓒ박은영

더운 날씨였지만,  해를 피해 숲길을 따라 걸으며 더위를 식힐 수 있었고 숲길 곳곳에는 조성한 색색의 벤치에 앉아 쉬었다 갈 수도 있었다. 마스크를 쓴 젊은 연인들이나 카메라를 든 사람들 혹은 아이와 함께 가족나들이를 즐기는 사람들 역시 이곳을 찾았다. 역사를 품은 공간이 빼어난 자연 경관을 지녔다면 후대에게 그곳은 참으로 매력적인 장소로 남을 것이다. 아무쪼록 석파정의 아름다운 모습이 잘 보존됐으면 좋겠다. 석파정에서의 1시간 반 가량의 여정을 뒤로 하고 신관 미술관의 전시실로 행했다. 몹시 더운 날씨라면 전시를 관람하며 쉰 후 석파정을 돌아봐도 좋다.

판화기획전이 열리는 서울미술관 신관

판화기획전이 열리는 서울미술관 신관 ⓒ박은영

서울미술관 신관 1층엔 판화기획전 ‘도화지’가 전시가 진행 중이다. 이중섭 작가의 작품을 볼 수 있어 반가웠다. 특히 말로만 들었던 은박지를 활용해 그린 그림들을 실제로 볼 수 있어 인상적이었다. 통유리를 통해 석파정 별채와 앞뜰 멀리 북한산 풍광까지 감상할 수 있는 2층엔 석파정의 모습들을 담고 있는 사진이나 그림들을 전시 중이다. 

숲 속 정원으로 왕의 사랑을 받았던 석파정의 숲길을 감상하고 너럭바위에서 소원을 빌어보는 건 어떨까. 석파정은 한 번의 입장권 구매로 해당 월에는 횟수제한 없이 이용할 수 있으며, 월·화요일은 휴관이다.

석파정 안내
○위치: 서울시 종로구 창의문로 11길 4-1
○관람시간: 수요일~일요일 11:00~17:00
○휴관일: 매주 월요일, 화요일
○입장료: 5,000원
○홈페이지: https://seoulmuseum.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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