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오신날', 진관사에서 나마스테

시민기자 이선미

발행일 2020.06.02. 13:34

수정일 2020.06.02. 16:52

조회 1,392

음력 사월 초파일은 '부처님오신날'로 올해는 원래 4월 30일이었다. 하지만 코로나19 상황이 여의치 않아 불교계는 부처님 오신 날 법요식을 한 달 뒤로 미루는 초유의 결정을 내렸다. 놀랍고도 고마운 일이었다. 벌써 한 달이 지났지만 촉발된 코로나19 확산세가 심상치 않다보니 대규모 연등행렬도 취소하고 철저한 방역 속에 각 사찰에서 부처님 오신 날 법요식을 봉행했다.

진관사 백초월길에 신록이 싱그럽게 물들고 있다.

지난 5월 30일 전국 사찰에서 법요식이 거행된 날 은평구 진관사를 찾았다. ⓒ이선미

일장기 위에 태극기를 그린 백초월 스님의 일념을 기리며 진관사는 초입부터 사찰까지 약 1km의 구간을 백초월길로 명명하였다.

일장기 위에 태극기를 그린 백초월 스님의 일념을 기리며 진관사는 초입부터 사찰까지 약 1km의 구간을 백초월길로 명명하였다. ⓒ이선미

지난 5월 30일 전국 사찰에서 법요식이 거행된 날, 진관사에서 아름다운 예불과 연등행렬을 만나게 되었다. 선물 같은 저녁, 부처님오신날의 오후였다.

대웅전으로 올라가는 길, 기원을 담은 연등이 불을 밝히고 있다.

대웅전으로 올라가는 길, 기원을 담은 연등이 불을 밝히고 있다. ⓒ이선미

마스크를 쓴 시민들이 경내 곳곳에서 주말 오후를 보내고 있었다. 울긋불긋 연등이 드리우고 작약꽃이 흐드러지게 핀 앞마당에서는 아이들이 뛰어놀고 신도들은 조용히 기도를 했다. 백초월 스님의 태극기가 발견된 칠성당 주변도 오늘따라 더 말끔하게 단장된 모습이었다.

법당 앞 바닥에 오전 법요식을 위해 붙여놓은 ‘1m 거리두기’ 표시

법당 앞 바닥에 오전 법요식을 위해 붙여놓은 ‘1m 거리두기’ 표시 ⓒ이선미

백초월 스님의 태극기가 발견된 칠성각 주변도 말끔하게 단장돼 있다.

백초월 스님의 태극기가 발견된 칠성각 주변도 말끔하게 단장돼 있다. ⓒ이선미

먼저 대웅전을 둘러보았다. 벽에 그려진 '심우도'가 새삼 마음에 다가왔다. 코로나19로 인한 긴장 속에 격리 상태로 지내다보면 자칫 코로나블루에 빠질 우려도 있다. 불가피한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바로 마음을 다스리는 일이다. 법당 외벽에 그려진 '심우도'는 사람의 마음 안에 있는 야생의 소를 찾아 길들여가는 열 단계의 과정을 표현하고 있어 '십우도'라고도 불린다. 혹 종교가 다르더라도 자신의 본성을 찾아 다스리며 평온을 유지하는 길은 새겨볼 만한 일이다.

대웅전을 빙 둘러 그린 ‘심우도’는 마음을 다스리는 길에 대해 이야기한다.

대웅전을 빙 둘러 그려진 ‘심우도’는 마음을 다스리는 길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선미

법당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열 체크를 하고 마스크를 써야 한다.

법당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열 체크를 하고 마스크를 써야 한다. ⓒ이선미

진관사는 비구니 스님들의 도량이어선지 좀 더 아기자기하고 아늑한 분위기였다. 잠시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는데 한 스님이 마이크를 잡고 저녁 예불과 연등행렬 안내를 했다. 불자는 아니지만 뜻깊은 날, 아름다운 기도에 함께하고 싶었다.

예불을 알리는 종소리가 산사에 울려퍼졌다.

예불을 알리는 종소리가 산사에 울려퍼졌다. ⓒ이선미

범종각 문이 열리고 산사에 종소리가 장엄하게 울려퍼졌다. 스님과 신도들이 연등 꽃그늘 아래 거리를 두고 자리 잡았다. 예불을 이끄는 스님은 ‘사회적 거리두기’로 코로나19에 대응하던 초기 자세처럼 우리에게는 늘 일정한 ‘거리’가 필요하다고 했다. 문득 “함께 있으되 거리를 두라”고 한 칼릴 지브란의 잠언 한마디도 떠올랐다.

스님과 신도들이 거리를 두고 예불에 함께하고 있다.

스님과 신도들이 거리를 두고 예불에 함께하고 있다. ⓒ이선미

단연 코로나19가 화두였다. 불교계는 부처님오신날 법요식을 한 달 늦추면서 그동안 코로나 19 치유와 극복을 위한 기도를 진행해 왔다고 한다. 예불을 마친 스님은 예정된 기한은 끝났지만 기도는 계속된다고 전했다. 우리가 늘 서로에게 기대고 의지하며 살고 있다는, 공동 운명체라는 생각이 새삼 반갑고 힘이 되었다.

백초월 스님의 태극기가 그려진 연등에 불을 밝힌 스님과 신도들이 경내를 돌며 기도하고 있다.

백초월 스님의 태극기가 그려진 연등에 불을 밝힌 스님과 신도들이 경내를 돌며 기도하고 있다. ⓒ이선미

올해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진관사에서는 ‘당신은 부처님이십니다’라는 인사를 건넸다. 인도나 네팔 사람들은 일상적으로 ‘나마스테’라고 인사한다. 이 인사는 ‘내 안의 신이 당신 안의 신께 경배합니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무엇을 강요하거나 우월하다고 내세우지 않고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고 귀히 여기는 것이 부처님이 바라는 세상 아닐까. 그래서 두 손을 모으고 마음을 전하고 싶어졌다. “나마스테. 세상 모든 것들과 세상 모든 이에게!”

코로나19가 새삼 일깨워주는 한 가지는 지구별에 사는 우리 모두가 서로의 삶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전염병 상황은 우리나라만 잘해서 끝나는 일이 아니다. 지구 전체가 괜찮아져야 우리도 안심을 할 수 있다. 영락없이 모든 개인과 전 세계 국가는 그물로 연결되어 있는 인드라망의 구슬들이다. 우리는 서로에게 나비효과의 원인과 결과가 되며 살아간다. 부처님오신날을 축하하며 간절한 자세로 기도하는 모든 이의 기원이 이뤄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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