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구된 지 7년, 숭례문 다시 찾아가 보니…

시민기자 염승화

발행일 2020.05.28. 10:07

수정일 2020.05.29. 09:13

조회 3,833

1398년(태조 7) 처음 축조된 이래 620년이 넘도록 서울을 굳건히 지켜온 서울 한양도성에는 흥인문, 돈의문, 숭례문, 숙청문 등 사대문과 혜화문, 소의문, 광희문, 창의문 등 사소문이 있다. 이 가운데 한양도성의 남쪽에 있기에 흔히 남대문으로 불리는 숭례문(崇禮門)이 지난 4월로 복구 7년을 맞았다. 봄바람이 싱그러움을 더해주던 어느 날, 중구 세종대로에 있는 숭례문을 찾았다.

숭례문에는 국보 1호, 한양도성 정문, 조선 최대의 문, 서울 최고의 목조 문, 서울의 자부심, 서울의 관문, 서울의 랜드마크, 대한민국의 랜드마크 등등 앞에 붙는 수식어가 제법 많다. 노랫말이나 속담에도 나오는 매우 친숙한 이름이기도 하다. ‘남남 남대문을 열어라' 하는 남대문 놀이가 있고, ’남대문 구멍 같다‘처럼 재미있는 속담도 여럿 있다. 그만큼 우리에게 안겨주는 역사적 의미나 상징성이 크다는 방증일 것이다.

숭례문광장 입구에서 바라본 아름다운 숭례문 전경

숭례문광장 입구에서 바라본 아름다운 숭례문 전경 ©염승화

1900년대 숭례문 모습

1900년대 숭례문 모습 ©염승화 

지하철 1, 4호선 환승역인 서울역에서 내렸다. 이곳에서 숭례문 광장 입구까지는 걸어서 3~4분 거리다. 출구를 나오면 먼발치에 있는 숭례문이 정면으로 보인다. 광장 입구 줄지어 서 있는 사진틀 앞에 섰다. 1900년대부터 최근까지 시대별로 각기 다른 모습의 숭례문이 그 안에 담겨 있다. 전차가 숭례문으로 들어가는 장면이 담긴 1900년대 사진에 특히 시선이 꽂혔다. 이 사진은 숭례문이 이전까지 수행하던 군사, 치안 등의 역할이 사라졌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일체 침탈로 말미암아 숭례문을 포함한 8개 문은 축대와 문루만을 남긴 채 좌우 성벽이 모두 헐려나가는 등 훼손이 본격화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돈의문과 소의문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방화로 불탄 숭례문 복구 사업에 참여한 고마운 분들의 명판이 관리사무소 옆에 부착되어 있다

방화로 불탄 숭례문 복구 사업에 참여한 고마운 분들의 명판이 관리사무소 옆에 부착되어 있다 ©염승화 

숭례문은 익히 알려진 것처럼 지난 2008년 2월 방화사건으로 2층 문루가 거의 전소되는 비운을 겪었다. 이를 입증하듯 관리사무소 옆 벽면에는 숭례문 복구 사업에 참여한 사람들의 이름이 새겨진 명판이 부착되어 있다. 2013년 4월 29일 복구 사업이 끝난 숭례문에는 이전에 비해 여러 가지 달라진 점이 생겼다. 무엇보다도 성문과 문루 좌우로 헐린 성곽 일부가 복원되었다. 그리고 1층 추녀마루 잡상 8개를 7개로 고치는 등 그동안의 보수 과정에서 변형된 사항들을 바로잡았다. 2011년에 발간한 ‘숭례문 발굴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건물지와 배수 시설 등도 공사 중에 확인되었고, 자기류, 금속류, 기와 등 각종 유물 601점이 발굴, 출토되었다고 한다. 모두 건립 이후 처음으로 숭례문과 주변 공간을 조사한 성과들이다.

새로 쌓은 남산 방면 성벽을 숭례문 홍예문에서 바라보았다

새로 쌓은 남산 방면 성벽을 숭례문 홍예문에서 바라보았다 ©염승화 

새로 쌓은 성벽 우측 끝에서 바라본 숭례문

새로 쌓은 성벽 우측 끝에서 바라본 숭례문 ©염승화 

성안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새로 쌓은 성벽을 살펴보았다. 성벽은 숭례문을 바라보며 왼쪽은 16m가 오른쪽 남산 방면으로는 53m가 다시 세워졌다. 성문은 역시 성벽과 같이 어우러져야 기품이 한층 더 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다만 도심 빌딩들에 둘러싸여 있기에 위용이 덜해 보인 점은 못내 안타까웠다. 좌, 우측 성벽 끝으로 가서 각각 전경 사진을 찍은 뒤 성문 앞으로 와 섰다.

문루가 2층이고 현판이 세로로 걸리는 등 다른 사대문들과 차이를 보인다

문루가 2층이고 현판이 세로로 걸리는 등 다른 사대문들과 차이를 보인다 ©염승화 

숭례문은 흥인지문과 함께 문루가 2층 구조이고 여느 문들보다 규모가 크다. 도성을 대표하는 문이기에 격을 높이려는 뜻이었다고 한다. 2층 문루 중앙에 있는 현판은 양녕대군의 글씨를 탁본해 담은 것이다. 모양새가 매우 특이하다. 보통 가로로 설치하는 현판이 세로로 걸려 있다. 이와 관련한 일화는 정말이지 아이러니하다. 풍수지리설에 따라 불의 기운이 강한 관악산의 화기를 누르고 도성 안의 화재를 막고자 현판을 세로로 붙였다고 했다. 그런데 정작 숭례문이 방화로 불타버렸으니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아름다운 용 그림과 웅장한 철대문이 돋보이는 홍예문 안 통로

아름다운 용 그림과 웅장한 철대문이 돋보이는 홍예문 안 통로 ©염승화 

상단부가 곡선으로 무지개 모양을 하고 있는 홍예문(虹霓門)으로 들어섰다. 숭례문은 성문 안으로 오갈 수 있는 가장 큰 대문이기도 하다. 성문 안으로 들어가면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도로 나와야 하는 섭섭함이 있었으나 국가지정 문화재인 국보와 밀접한 접촉이 가능하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위안이 되고도 남는다.

 대문에 빗장을 지르는 장군목이 홍예문 안에 놓여 있다

대문에 빗장을 지르는 장군목이 홍예문 안에 놓여 있다 ©염승화 

고개를 들어 성 안팎을 잇는 통로 천장을 바라보았다. 조선 전기 문양으로 복원된 용 그림이 그려져 있다. 두 마리 용이 마치 살아서 꿈틀거리는 듯 생동감 넘친다. 통로 왼편 벽면에 바투 붙여 뉘여 놓은 장군목(將軍木)에도 눈길이 갔다. 숭례문처럼 큰 문에 빗장으로 가로지르는 굵고 긴 나무를 말한다. 웅장한 철대문의 크기에 비례하듯 역시 큼지막하게 달려 있는 문고리도 마음에 와닿았다.

성 안에서 바라본 남대문 전경, 위용이 넘치는 모습이다

성 안에서 바라본 남대문 전경, 위용이 넘치는 모습이다 ©염승화 

홍예 통로를 빠져나가 성 안쪽 숭례문 앞에 섰다. 성 바깥에서 바라본 모습과는 다르게 시야가 다소 트인 탓인지 숭례문의 위엄찬 용모가 한층 더 돋보인다. 비록 화마가 휩쓸고 갔더라도 끄떡없이 버틴 빛바래고 낡은 흔적이 역력한 성석에서는 새삼 600년 세월의 유구함을 실감할 수 있었다.

숭례문 밖에서 바라본 숭례문 광장 전경 ©염승화

숭례문 밖에서 바라본 숭례문 광장 전경 ©염승화 

모처럼 만의 숭례문 방문은 숭례문의 역사 의의와 보존 가치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소중한 기회였다. 이 나라의 영원한 국보 1호 숭례문 방문으로 달라진 모습도 살펴보고 문화재 관리의 중요성도 느껴보기를 권하고 싶다. 인근에 있는 서울로7017이나 남대문시장 등 서울의 명소와 연계해 나들이 일정을 짜도 좋다.

■ 숭례문 (남대문) 
○ 위치 : 서울시 중구 세종대로 40 (남대문로4가)
○ 운영시간 : 09:00~18:00 (2~5월) / 09:00~18:30(6~8월) / 09:00~17:30(11~1월)
○ 휴무일 : 매주 월요일
○ 입장료 : 무료
○ 문의 : 02-779-8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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