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싶다면?

이정모 국립과천과학관장

Visit813 Date2020.05.25 15:30

이정모 국립과천과학관장의 ‘저도 과학은 어렵습니다만’

이정모 국립과천과학관장의 ‘저도 과학은 어렵습니다만’

이정모 국립과천과학관장의 ‘저도 과학은 어렵습니다만’ (6) 선한 사마리아 사람이 되는 길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큰 도시에서 작은 도시로 가던 중에 강도를 만났습니다. 그 사람이 가진 것이라고는 달랑 걸친 옷뿐이었죠. 그 옷마저 탐난 강도는 옷을 요구했지만 가진 게 옷뿐인 사람은 거칠게 저항했습니다. 결과는 뻔합니다. 옷은 빼앗겼고 거의 죽을 만큼 맞았습니다. 사람은 내팽겨졌고 강도는 그 자리를 떴습니다.

길에 지나가는 사람이 왜 없었겠습니까. 성직자가 강도당한 사람을 봤습니다. 하지만 멀리 돌아 피해서 지나갔습니다. 법률가도 강도당한 사람을 봤습니다. 역시 피했습니다. 여행 중이던 한 보통사람이 강도당한 사람을 봤습니다. 그가 불쌍했습니다. 상처에 포도주와 기름을 붓고 싸매고 자기가 타고 가던 나귀에 태워 주막에 데리고 가서 돌봐주었습니다.

성경의 누가복음에 나오는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입니다. 성직자와 법률가 그리고 사마리아 사람의 차이는 무엇이었을까요? 성직자와 법률가는 겉으로는 고고한 척하지만 실제로는 남을 돌볼 줄 모르는 이기적인 사람일까요? 설마요. 우리 주변에서 보는 성직자와 법률가는 그럴 리가 없어 보입니다. 어려움을 당한 사람을 돕는 고마운 마음은 어떻게 생기는 걸까요? 1970년대 프린스턴 대학의 심리학자 존 달리와 대니얼 뱃슨은 다른 사람을 돕는 착한 마음의 전제 조건을 찾는 실험을 고안했습니다. 먼저 가설을 세웠습니다.

(1) ‘착한 마음이 생기려면 시간이 한가해야 한다.’ 바쁜 사람들은 착할 틈이 없다는 것입니다. 성직자와 법률가는 중요한 지위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주로 바쁘죠. 많은 회의와 약속으로 꽉 찬 일정표를 들고 모임에 늦을까 노심초사하며 바삐 가던 중이었습니다. 이에 반해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 중이었으니 누군가를 도울 충분한 시간이 있었지요.

(2) ‘착한 마음이 생기려면 머리가 한가해야 한다.’ 윤리와 종교 그리고 법처럼 고도의 집중력을 필요로 하는 주제에 몰두하고 있는 사람은 곰곰이 따져야 할 문제에 봉착해 있습니다. 강도당한 사람을 만났을 때도 뭔가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을 겁니다. 이에 반해 사마리아 사람은 세속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을 테니 도와줄 마음이 생겼던 것이지요.

(3) ‘일상생활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사람에게 착한 마음이 생긴다.’ 독실한 신앙심이 있는 사람은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받는다고 여깁니다. 그들에게 세상에서 일어나는 온갖 세속적인 일은 가치가 없지요. 하지만 큰 생각 없이 일상생활에서 끊임없이 의미를 찾으려는 이들은 남을 도울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심리학자들은 ‘성직자와 법률가 vs. 사마리아 사람’의 특징을 세 가지 가설에 따라 두 가지 범주로 나누었습니다. 성직자와 법률가는 바쁘고, 머리가 복잡하며, 독실한 신앙심이 있는데 반해 사마리아 사람은 시간과 머릿속이 한가하고 일상생활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사람으로 말입니다.

가설을 세웠으면 다음 단계는 실험입니다. 1970년 12월 14일 오전 10시. 심리학자들은 프린스턴 대학 교정의 심리학과와 사회학과 건물 사이의 침침하고 지저분한 도로로 신학생 한 명을 보냈습니다. 신학생은 종교교육과 신학자의 소명에 관한 조사에 참여하여 5분 정도의 인터뷰를 할 예정이었습니다.

신학생은 사회학과 건물 앞에서 남자를 만나게 됩니다. 헝클어진 머리를 하고 겨울 외투를 입고 두 손을 깊숙이 찔러 넣은 채 문에 기대어 있는 부랑자였습니다. 신학생이 다가가자 부랑자는 두 번 기침합니다. 신학생은 당연히 “괜찮아요?”라고 묻지요. 그러면 이렇게 대답합니다. “아, 감사합니다. (콜록) 네, 괜찮습니다. 기관지가 안 좋아서요. (콜록) 의사가 준 약을 먹었어요. 가만히 몇 분만 앉아 있으면 괜찮아질 거예요. 가던 길을 가세요.” 신학생은 어떤 행동을 할까요?

실험은 사흘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1) 신학생은 부랑자보다 조교를 먼저 만납니다. 조교는 절반에게는 “아이고, 늦으셨네요! 선생님들이 몇 분째 기다리고 계셔요. 서두르세요.”라고 말하고, 나머지 사람에게는 “아직 시간이 넉넉해요.”라고 알려줍니다. (2) 인터뷰 주제도 절반은 ‘장래 희망 직업’, 나머지 절반에게는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로 정했습니다. (3) 신앙관은 설문지로 대신했습니다.

사흘 동안 47명을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다른 사람을 도우려는 마음에 영향을 미친 유일한 조건은 ‘시간적 여유’였습니다. 다른 요소는 의미 있는 차이를 만들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인터뷰 하는 동안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에 등장하는 성직자와 법률가의 비인간적인 행동에 대한 발표를 한 신학생마저 부랑자를 특별히 더 돕지는 않았습니다.

바쁘다는 게 선을 행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핑계가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하지만 선한 사마리아 사람이 되려면 일단 넉넉한 시간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과학적인 심리 실험의 결과입니다.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싶습니까? 어떻게든 시간을 내셔야 합니다. ‘워라밸’ 또는 ‘주 52시간’ 같은 새로운 단어들은 우리를 선한 사마리아 사람으로 만드는 키워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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