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 ‘기억의 터’에서 그들을 기억하다

시민기자 염승화

Visit516 Date2020.05.19 12:30

최근 일본군 위안부 후원금 사용과 관련한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오해를 풀고 시비를 제대로 가리는 일은 간과할 수 없겠으나 결코 위안부 인권운동을 제약하려는 빌미로 악용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즉시 성찰하고 흔들림 없이 위안부 인권운동에 매진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퍼뜩 떠오른 곳이 있었다. 며칠 전 모처럼 중구 예장동 남산 기슭에 있는 ‘일본군 위안부 기억의 터’를 다시 찾았다.

기억의 터는 일본 제국주의 강점 치하 위안부 피해자들의 고통과 아픔을 함께 나누고 치욕과 굴욕의 역사를 각인하자는 뜻에서 마련된 공간이다. 지난 2016년 8월 29일 각계의 뜻 있는 분들이 힘을 모아 서울시의 협조로 조성되었다. 기억의 터가 자리한 곳은 일본 통감관저가 있던 곳이고 1910년 8월 22일 이완용과 테라우치 일 통감이 한일병탄조약을 체결한 국치의 장소이기도 하다.

명동역 부근 언덕길 '나비로’에 노란나비 모양 기억의터 안내 표식이 설치되어 있다.

명동역 부근 언덕길 ‘나비로’에 노란나비 모양 기억의터 안내 표식이 설치되어 있다. ©염승화

기억의 터를 가려고 지하철 명동역 1번 출구로 나왔다. 이곳에서 기억의 터까지는 걸어서 약 10분 거리다. 남산 방면으로 이어지는 언덕길에 이르자 길가 축대에 부착되어 있는 생소한 조형물들이 눈에 띄었다. 노란나비 모양을 한 기억의 터 안내 표지들이다. 길 맞은편 벽면도 마찬가지다. ‘할머니들이 살아온 역사보다 더 힘들지 않은 오르막’, ‘노란나비는 총 몇 마리일까요?’ 등 화살표 방향 표지에 적힌 문구들과 그림들을 천천히 살펴보며 이른바 ‘나비로’로 불리는 언덕길을 올랐다.

'노란나비를 따라서 할머니들을 만나러가요' 소방재난본부 앞 거리 안내 표식

‘노란나비를 따라서 할머니들을 만나러가요’ 소방재난본부 앞 거리 안내 표식©염승화

기억의 터 앞 좌우에는 마치 문지기처럼 은행나무와 느티나무 노거수가 우뚝 서 있다.

기억의 터 앞 좌우에는 마치 문지기처럼 은행나무와 느티나무 노거수가 우뚝 서 있다. ©염승화

남산공원에 들어서면 곧바로 목적지인 기억의 터가 눈앞에 보인다. 공원 초입 좌우에는 은행나무와 느티나무 노거수 두 그루가 신록 울창한 이파리로 숲을 가득 이룬 채 우뚝 서 있다. 수령 400년이 훨씬 더 된 보호수들이다. 자그마치 높이 20m가 넘고, 둘레는 약 6m에 달한다. 일제 침탈의 수난사는 물론 오늘날 인권운동의 산실로 자리 잡은 기억의 터 현장도 묵묵히 지켜본 산증인들일 터다.

남산공원 초입에 자리한 기억의 터 전경. 오른편에 키오스크가 보인다.

남산공원 초입에 자리한 기억의 터 전경. 오른편에 키오스크가 보인다. ©염승화

은행나무 고목 앞에 서서 기억의 터 전경 사진을 찍은 뒤 무인정보 단말기인 키오스크 앞으로 갔다. 터치스크린으로 조성과정과 소개문 등 기억의 터 관련 자료들을 하나씩 열어보았다. 곧 대지의 눈, 세상의 배꼽, 통감관저터 비석과 거꾸로 세운 동상, 기억의 터를 만든 사람들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 각 공간으로 발길을 옮겨갔다.

눈을 형상화한 대지의 눈에는 위안부 피해자 247분의 이름과 증언이 새겨져 있다.

눈을 형상화한 대지의 눈에는 위안부 피해자 247분의 이름과 증언이 새겨져 있다. ©염승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의 그림은 처참했던 당시 상황을 웅변으로 말해주는 것 같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의 그림은 처참했던 당시 상황을 말해주는 것 같다. ©염승화

대지의 눈은 눈을 형상화한 12m 길이의 입체 조형물이다. ‘통곡의 벽, 화해와 용서의 벽’이라고 명명한 곡선 벽면에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247분의 이름과 증언, 그리고 김순덕 할머니의 그림, ‘이끌림’ 등이 새겨져 있다. 특히 그림 속 놀란 표정이 역력한 흰 눈동자에 시선이 꽂혀 허리를 구부린 채로 서서 뚜렷이 들여다봤다. 어딘지도 모를 곳으로 졸지에 납치되어 가던 당시의 긴박했던 상황을 말해주는 것 같은 그림이다. 처참한 장면이 눈앞에서 생생하게 자행되듯 섬뜩한 느낌마저 들었다.

을사늑약의 원흉인 일본 남작의 동상을 역사를 반성하는 의미로 거꾸로 세워놓았다.

일본 남작의 동상을 역사를 반성하는 의미로 거꾸로 세워놓았다. ©염승화

거꾸로 세운 동상은 일제 통감관저에 있던 남작 하야시 곤스케 동상 잔해 판석을 광복 70년을 맞은 2015년에 거꾸로 세워 놓은 것이다. 명예롭지 못한 역사를 반성하는 의미라는 안내문의 표현이 마음에 와 닿았다. 하야시 곤스케는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도록 힘썼던 인물이다. 기억의 터가 일제 통감관저 터였음을 나타내는 표석을 둘러본 뒤엔 세상의 배꼽으로 발길을 옮겼다.

모성으로 세상을 보듬는다는 뜻이 담긴 세상의 배꼽

모성으로 세상을 보듬는다는 뜻이 담긴 세상의 배꼽 ©염승화

세상의 배꼽은 분지처럼 아늑한 잔디 공간이다. 배꼽을 상징하는 둥근 돌이 중앙에 놓여 있고, 그 둘레에 하늘과 땅과 세상을 상징하는 여러 개의 자연석들이 놓여 있다. 고흥석으로 불리는 둥근 돌 표면에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 된다’라는 글과 맞잡은 손 그림이 새겨져 있다. 쉼터를 겸하는 돌 위에 앉아 한동안 주위를 둘러보았다. 모성으로 세상을 보듬는다는 뜻이 어린 곳이라서 그런지 마음이 한결 차분해지는 듯 했다.

기억의 터를 만드는 디딤돌을 놓은 사람들을 새겨 넣은 공간과 기억의 터 전경

기억의 터를 만드는 디딤돌을 놓은 사람들을 새겨 넣은 공간과 기억의 터 전경 ©염승화

기억하는 사람들은 기억의 터를 만드는데 일조한 어린 학생들로부터 위안부 피해 할머니에 이르기까지 개인과 단체 등 19,755분의 이름이 간직되어 있는 공간이다. 기억의 터 디딤돌을 쌓은 모든 분들에게 경의를 표하며 국치와 극일이 공존하는 역사의 현장에 경계의 상징으로 오래도록 자리하기를 기원한다.

부드러운 곡선으로 능선이 다듬어져 있는 기억의 터는 앉거나 서거나 위치에 따라서 보이는 풍경이 달라지는 특성이 있다. 남산공원으로 연결되는 돌계단 위에 바라보는 모습도 그 중 하나다. 마치 어머니 품 안에 안기듯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기에 가장 마음에 들었다.

기억의 터 CI가 보이는 전경

기억의 터 CI가 보이는 전경 ©염승화

코로나19로 잠시 주춤했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념사업이 5월부터 본격 진행되고 있다. 서울시는 그 일환으로 역사교육 프로그램인 ‘기억과 공감’과 기억의 터, 기림비 연계 해설 체험 프로그램인 ‘기억의 길’을 운영한다. 사색하기 딱 좋은 고요한 도심 속 메모리얼 공원, 기억의 터 방문과 연계 프로그램 참여를 권하고 싶다.

■ 기억의 터 방문 및 연계 프로그램 안내
○  위치 : 서울시 중구 퇴계로 26가길 6
○ 교통 : 지하철 4호선 명동역 1번 출구 > 약 200m(도보 약 3분) 대한적십자사 앞 횡단보도 건너 > 약 300m(도보 약 7분) 서울소방재난본부 지나 남산공원 기억의 터
○ 운영 : 연중무휴 / 입장료 없음
○ 연계프로그램 참여 안내
– 기억과 공감(역사교육 프로그램)
.  대상 : 초등 5학년~ 고등학생 프로그램은 2학기부터 진행 예정
. 관련 페이지  >>바로가기 
– 기억의 길(기억의 터 기림비 연계 해설 체험 프로그램)
. 시행 기간 : 5월 ~ 11월
. 대상 : 초등 5학년 ~ 청소년, 일반인
. 신청 : 서울시공공서비스예약 >> 바로가기 
. 문의 : 02-761-25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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