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 증상 없어도 사회적 거리를 유지해야 하는 이유

이정모 국립과천과학관장

발행일 2020.03.30. 15:15

수정일 2020.03.30.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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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모 국립과천과학관장의 ‘저도 과학은 어렵습니다만’

이정모 국립과천과학관장의 ‘저도 과학은 어렵습니다만’

이정모 국립과천과학관장의 ‘저도 과학은 어렵습니다만’ (5) 전 인구의 60퍼센트가 감염돼야 코로나19가 끝난다?

저는 서울시립과학관장으로 일하다 지난 2월 24일부터 국립과천과학관장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출근 첫날 직원들을 만나기 전에 세 가지 결재를 먼저 해야 했습니다. 첫째는 오랫동안 빈자리로 있던 승진 인사, 둘째는 취임식 취소, 셋째는 2주간 임시 휴관 결정이었죠. 그 후에 각 과를 돌아다니면서 거리를 두고 취임 인사를 했습니다. 물론 코로나19 사태가 그 원인이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사태가 이렇게 오래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통계물리학자들은 한국과 중국의 확진자 수 증가 그래프를 그리면서 종식 시점을 예측했는데 그게 3월 7일 정도였습니다. 그게 정상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사태는 정상적이지 않았습니다. ‘신천지’라고 하는 복병이 있었지요. 오히려 2월 24일 정부는 감염병 위기 경보를 ‘경계’에서 ‘심각’ 단계로 격상시켰습니다.

그 사이에 사태 양상은 많이 바뀌었습니다. 중국은 (여전히 의심의 눈초리를 거둘 수 없지만)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된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나라도 심각한 단계를 벗어난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대구 경북의 신천지 신도들의 전수조사가 끝나자 확진자 증가수가 가파르게 줄어들어서 착시현상을 일으킬 뿐이고 여전히 숫자는 적지 않게 늘고 있습니다. 요즘은 유럽과 미국의 확진자 증가수가 어마어마해서 마치 우리나라는 별것 아닌 것처럼 느껴질 뿐이죠.

한국과 중국이 코로나19와 싸우고 있는 동안 미국과 유럽은 강 건너 불 보듯 하더니 지금 큰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미국과 유럽의 과학자와 당국은 쉽게 이야기합니다. 전 인구의 60퍼센트가 감염된 후에야 코로나19가 잠잠해질 것이라고 말입니다. 아마 그럴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전 세계 인구 45억 명이 코로나19에 감염되게 놔둬야 할까요?

60퍼센트가 감염되어야 끝난다는 이야기는 백신이 있을 때 이야기입니다. 전 세계인의 60퍼센트가 백신을 맞아서 항체를 형성하고 나면 코로나19는 힘을 잃고 말 것입니다. 문제는 백신 개발이 요원하다는 겁니다.

잠깐 계산을 해보죠. 전 세계 인구 75억 명의 60퍼센트면 45억 명입니다. 우리나라 인구 5,200만 명의 60퍼센트면 3,120만 명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확진자 사망률이 1.3퍼센트 정도입니다. 무려 40만 명이 사망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나라 1년 사망자가 대략 30만 명인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숫자입니다.

확진자가 수천 명 이상 나온 국가 중 사망률이 가장 낮은 나라는 독일과 한국입니다. 왜 그럴까요? 사망률이 가장 높은 이탈리아와 비교해 보죠. 이탈리아는 고령 환자가 많이 발생했습니다. 그리고 북부 지방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해서 의료 체계가 감당하지 못했지요. 이에 반해서 한국과 독일에서는 젊은 층에서 환자가 많이 발생했습니다. 한국은 신천지 교인이 많았고 독일은 이탈리아 북부 지방으로 스키 여행을 다녀온 젊은이들이 많이 걸렸지요.

중증환자를 위한 병상수도 중요한 요소입니다. 이탈리아는 중증환자 병상이 3,000개에 불과하지만 독일 병원에는 2만 8,000개의 중증환자 병상과 2만 5,000개의 인공호흡기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현재 사망률은 1.3퍼센트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걸리게 되면 중증환자는 15퍼센트까지 올라갈 것입니다. 한국인 50만 명이 중증환자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이들이 한꺼번에 중증환자가 되지는 않겠지요. 50분의 1씩 그렇게 된다면 1만 개의 중증환자 병상이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우리나라 중증환자 병상은 딱 1만 개, 바이러스가 병실 바깥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게 잡아두는 시설인 음압 병상은 1,000여 개에 불과하고 중증환자들이 사용하는 인공호흡기는 1만 개 정도뿐입니다. 그런데 중증환자에는 코로나19 증상자만 있는 게 아니잖아요.

“어차피 60퍼센트는 걸려야 한다고 하더군”이라는 속 편한 이야기는 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나라도 환자가 급격히 늘어나면 지금과 같은 낮은 사망률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 세계 평균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30퍼센트의 감염자는 증상 없이 면역체계를 갖출 수 있습니다. 55퍼센트는 가벼운 증상을 앓고 지나갑니다. 그리고 10퍼센트는 심각한 증상을 앓다 회복될 것입니다. 하지만 5퍼센트는 사망에 이르고 말 겁니다. 156만 명입니다. (1.3퍼센트라고 해도 40만 명입니다.)

그러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필요한 게 바로 속도를 늦추는 것입니다. 의료체계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천천히 감염되는 것이죠. 우리는 지금까지 잘 해왔습니다. 앞으로 몇 달이 아주 중요합니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더 철저히 해야 합니다. 지금 나 자신이 증상 없이 면역체계를 갖출 바로 그 사람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증상이 없다고 하더라도 면역체계를 갖추기 전까지는 전염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가 멀쩡한 사람이라고 해도 사회적 거리를 유지해야 하는 까닭이 바로 그것입니다.

모여서 예배드리고 과학관을 열고 학교가 개학하는 것은 그 다음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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