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봄을 기다립니다…왕십리역 '평화의 소녀상'

시민기자 방윤희

발행일 2020.03.10. 13:03

수정일 2020.03.11. 09:32

조회 977

흰 LED장미가 드넓게 핀 왕십리 광장의 평화의 소녀상 기림비

흰 LED장미가 드넓게 핀 왕십리 광장의 평화의 소녀상 기림비ⓒ방윤희

흰 장미가 드넓게 핀 왕십리 광장에는 앳된 얼굴의 평화의 소녀상이 있다. 성동구 왕십리 광장 사랑의 시계탑을 지나며 그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누군가 소녀의 얇은 저고리 위로 목을 살포시 감싼 망토와 털실로 짠 귀마개를 해준 모습에 온기가 전해진다. 겨우내 털 목도리가 잠시 추위를 덮어주었으리라 위안을 삼아본다. 또 한 차례의 겨울을 이겨내셨구나.

왕십리역은 ITX청춘의 정차역이자 2호선과 5호선, 경의중앙선과 분당선이 만나는 곳이다.

왕십리역은 ITX청춘의 정차역이자 2호선과 5호선, 경의중앙선과 분당선이 만나는 곳이다. ⓒ방윤희

왕십리역은 ITX청춘의 정차역이자 2호선과 5호선, 경의중앙선과 분당선이 만나는 곳이다. 다양한 집객시설 및 편의시설을 두루 갖추고 있는 만남의 장소이기도 한 곳이다. 이 분주한 역사 5번 출입구 앞에 평화의 소녀상이 자리했다. 

자석에 이끌리듯 소녀상 앞에 서니 지난해 별세하신 김복동 할머니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고 김복동 할머니는 ‘위안부’ 피해자이자 1992년 3월 일본군 ‘위안부’ 피해사실을 처음으로 증언했던 인권평화 운동가이다. 모진 세월 일본으로부터 진심 어린 사과를 받는 게 소원이라고 하셨는데, 끝내 소원을 지켜드리지 못해 마음이 아프다.

왕십리역 5번 출입구에서 성동 평화의 소녀상 기림비를 만날 수 있다.

왕십리역 5번 출입구에서 성동 평화의 소녀상 기림비를 만날 수 있다. ⓒ방윤희

왕십리 광장에 건립된 평화비는 아픈 역사를 생생하게 기억하게 해준다. 일제강점기에 어린 소녀들이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 고통을 겪어야만 했던 소녀들. 평화의 소녀상은 피와 눈물로 쓰인 역사적 진실을 기리기 위해 일본 정부의 책임을 명확히 인정할 때까지 행동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해 놓은 곳이다.

흰 장미가 드넓게 핀 왕십리 광장에 성동 평화의 소녀상 기림비가 세워졌다.

흰 장미가 드넓게 핀 왕십리 광장에 성동 평화의 소녀상 기림비가 세워졌다. ⓒ방윤희

기자는 ‘위안부’라는 말을 쓰면서 작은따옴표를 붙였다. 이는 일본군 ‘위안부’의 사전적 의미가 ‘안식을 주고 위안을 준다’라는 뜻인데, 작은따옴표를 붙이지 않고 그냥 표기할 시 그 뜻은 ‘자발적으로 참여했다는 일본 측 입장의 표현’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올바른 표기법을 사용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역사인식의 문 앞에 소녀상이 피와 눈물로 쓴 고통의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기를 염원하고 있다.

'역사인식의 문' 앞에 소녀상이 피와 눈물로 쓴 고통의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기를 염원하고 있다. ⓒ방윤희

오른쪽으로 몇 걸음 옮기자 단발머리 소녀가 무릎을 가지런히 모은 채 앉아있다. 바로 ‘역사인식의 문’이다. 일본 정부와 일본군은 침략전쟁 중 주둔지에 위안소를 설치하고, 우리나라를 포함한 아시아 전역에서 수만에서 수십만 명의 여성들을 강제 동원해 일본군의 ‘성노예’ 생활을 강요했다. 일본군 위안부 제도는 잔학성과 규모 면에서 전례 없는 20세기 최대 규모의 인신매매 사건 중 하나이다. 일본의 패망으로 전쟁은 끝났지만, 위안소에서는 끔찍한 인권 침해가 자행되었고, 피해자들의 몸에는 여전히 상처가 새겨져 있다. 

오랜 시간 전쟁의 피해자들은 가해국 일본을 향해 인권회복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은 사과는 커녕 오히려 피해자들을 향해 자발적 매춘부라고 공격하고 있다. 피해자들이 원하는 것은 가해국 일본 정부의 진정한 ‘공식사죄’와 역사를 부정하고 왜곡하지 않기 위한 ‘법적 배상’이다.

손바닥 위로 날아오를 자세를 하는 비둘기처럼, 희망의 문이 금방이라도 열릴 것만 같다.

손바닥 위로 날아오르는 비둘기처럼, 희망의 문이 금방이라도 열릴 것만 같다. ⓒ방윤희

그 옆으로 ‘희망의 문’이 펼쳐졌다. 마치 희망의 문이 활짝 열리기라도 한 듯 한 소녀가 평화의 상징 비둘기를 손 위에 앉힌 채 날아오르기를 기다리고 있다. 

“나는 일본이 사죄할 때까지, 끝까지 싸울 것이며, 절대 죽지 않을 것이다” 라는 이옥선 할머니의 외침이 들리는 듯 하다. 위안부 할머니들은 20세기 가장 고통 받은 분들이지만 용기 있는 고백을 통해 일본의 전쟁 범죄를 고발하고 문제 해결에 앞장서는 21세기 가장 용감한 여성들이다. 지금까지 65명의 피해자를 떠나보내야 했으며, 현재 20명의 생존자만이 남아있다.

이제 우리는 사회적 정의와 책임을 가지고 일본 정부와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정부 및 국민들의 더 큰 목소리가 필요하다. 사회 구성원으로서 우리는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하며, 사회는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할머니들을 독립적 인격체로 보호해야 한다. 고령의 나이에도 행동을 하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은 ‘못다 핀 꽃’들이다. 우리 함께 피해자 명예회복을 통해 꽃을 피워줘야 할 것이다.

고 김학순 할머니의 모습을 한 소녀상이 공감의 문 앞에 서 있다.

고 김학순 할머니의 모습을 한 소녀상이 공감의 문 앞에 서 있다. ⓒ방윤희

평화의 문을 지나자 ‘공감의 문’이 등장했다. 고 김학순 할머니의 모습을 한 소녀상이 서 있다. 고 김학순 할머니가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문제를 부정하는 일본을 향해 “우리가 강요에 못 이겨 했던 그 일을 역사에 남겨두어야 한다”고 한 말이 새겨져 있다.

2007년 7월 30일 미국 하원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된 결의안(H. Res 121)도 볼 수 있다. 결의안은 ▲일본 군대가 젊은 여성들을 ‘성노예’로 강제동원한 사실을 일본 정부가 확실하고 분명한 태도로 공식 인정•사과하고 역사적 책임을 질 것 ▲일본군의 위안부 강제동원을 부인하는 주장에 대해 공개적으로 반박할 것 ▲현세대와 미래세대를 대상으로 이에 대해 교육시킬 것 등을 요청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위안부 결의안 통과 이후에도 지금까지 일본 정부는 아무런 행동이 없다.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문제는 우리가 정확하게 알고 해결해야 할 우리 민족의 아픔이자 여성의 수난사이다. 필시 그분들만의 아픔이 아닐 것이다. 아픈 상처를 입고 살아가는 이 분들이 있었기에 대한민국의 역사가 우뚝 설 수 있었고, 그 치욕의 역사는 마땅히 보상을 받아야 할 것이다. 또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해결해야만 후계세대도 정의롭고 평화로운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한여름에는 사랑의 시계탑 하트모양 안으로 시원하게 내뿜는 물 분수가 더위를 달래준다

한여름에는 사랑의 시계탑 하트모양 안으로 시원하게 내뿜는 물 분수가 더위를 달래준다. ⓒ방윤희

성동 평화의 소녀상 기림비를 시작으로, 역사인식의 문과 희망의 문 그리고 공감의 문을 돌아보는 동안, ‘위안부’ 피해자분들의 깊은 고통과 상처를 조금이나마 보듬을 수 있었다. 그 모진 세월 속 시간들이 얼마나 야속하고 사과 한마디 받지 못하는 현실은 또 얼마나 아프고 아프셨을까 생각이 들었다. 먼저 떠나신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복을 빈다. 평화의 소녀상 기림비가 우리 역사를 다시 한번 돌아보고 기억하는 뜻깊은 장소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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