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대문독립공원, 독립지사들의 뜨거운 숨결을 찾아서

시민기자 박분

발행일 2020.03.02. 14:01

수정일 2020.03.02. 16:30

조회 2,696

올해는 3·1운동 101주년이 되는 해로 100주년이었던 작년에 비하면 조용한 편이다. 코로나19 여파로 뜻 깊은 행사가 곳곳에서 취소되고 모든 기념관이나 박물관이 임시 휴관 중에 있다. 안타까운 마음에 삼일절을 맞아 서대문독립공원을 찾아가보았다.  

서대문구 현저동에 위치한 서대문독립공원은 독립문을 비롯해 3·1독립선언기념탑, 서재필박사 동상, 서대문독립관 순국선열추념탑, 서대문형무소역사관 등이 고루 산재해 있는 역사의 현장이다. 독립지사들의 숨결이 곳곳에 깃든 이곳은 천천히 한 바퀴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많이 배우고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서대문독립공원의 우뚝 선 독립문(사적 제32호)

서대문독립공원의 우뚝 선 독립문(사적 제32호) ⓒ박분

서대문 독립공원에 이르면 우뚝 선 독립문이 먼저 눈길을 사로잡는다. 1896년 세워진 독립문은 화강암을 쌓아 만든 석조문으로 프랑스의 개선문과 모습이 닮아 있다. 무지개 모양의 홍예문으로 현판석 앞뒤에 한글과 한자로 '독립문'이라 쓰고 그 좌우에 태극기를 조각했다.  

한글과 한자가 앞뒤로 새겨진 독립문 현판석
한글과 한자가 앞뒤로 새겨진 독립문 현판석

한글과 한자가 앞뒤로 새겨진 독립문 현판석 ⓒ박분

독립문은 ​대한제국 당시 나라의 자주독립을 위한 확고한 의지의 표현이었다. 독립문이 세워진 자리는 본래 중국 사신을 영접하기 위한 영은문이 세워져 있었다. 영은문을 헐고 그 자리에 지금의 독립문을 건립했으니 외세로부터 독립하려는 결연함을 엿볼 수 있다.  

서대문 독립공원은 항일투쟁으로 옥고를 치른 순국선열을 기리기 위해 1992년에 서대문구 현저동에 조성한 공원이다. 독립공원이 위치한 곳은 서울구치소가 있던 자리이다. 서울구치소는 1945년 8월 15일 광복이 될 때까지 수많은 애국지사와 1960년대 정치적 변동을 겪으면서 많은 시국사범들이 수감되었던 저항의 현장이다.

독립신문을 창간한 서재필 선생의 동상

독립신문을 창간한 서재필 선생의 동상 ⓒ박분

독립문 가까이 보이는 동상은 서재필 선생의 동상이다. 높이 치켜든 손에 들린 것은 그가 창간한 ‘독립신문’으로, 이 신문은 19세기 말 한국 사회의 발전과 민중계몽에 큰 역할을 한 기념비적인 신문이다. 선생은 독립협회를 조직해 고종황제 허락을 얻어 애국지사와 국민들로부터 모금한 성금으로 독립문의 성공적인 건립에도 지대한 공헌을 한 인물로 알려졌다.

순국 선역들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 독립관

순국 선역들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 독립관 ⓒ박분

서재필 선생 동상에서 몇 발짝 떨어진 곳에 기와지붕의 건물 한 채가 보인다. 순국선열들의 위패를 봉안하여 추모 공간으로 활용하는 독립관이다.

독립관은 원래 조선시대 중국 사신들을 영접하던 모화관(慕華館) 건물이었다. 1894년 갑오경장 이후 사용되지 않다가 1897년 독립협회가 건물을 정비해 사무소로 한동안 사용됐다. ‘독립관’이라는 이름은 당시 황태자였던 순종이 지어 하사한 것으로 전해진다.

1919년 3월 1일, 손병희 등 민족대표들은 종로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식을 거행하고 독립만세를 삼창함으로써 3·1운동의 불을 지폈다.

민족대표 33인의 이름이 새겨진 3.1독립선언기념탑

민족대표 33인의 이름이 새겨진 3·1독립선언기념탑 ⓒ박분

3·1독립선언기념탑은 이날의 숭고한 자주독립정신을 기리기 위해 1963년 8월 15일에 3·1독립만세운동의 현장이었던 탑골공원에 건립되었다. 그러나 1979년 탑골공원의 정비사업으로 철거되어 오랜 세월 방치되기도 했다. 복원의 목소리가 높아지던 1992년에 항일 독립운동의 터전인 서대문 독립공원으로 옮겨 세우게 되었다. 탑의 높이는 4.2m이며 탑 뒤에는 3·1독립선언문과 손병희 등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민족대표 33인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독립지사 30명의 발을 본떠 만든 풋프린팅 동판

독립지사 30명의 발을 본떠 만든 풋프린팅 동판 ⓒ박분

서대문독립공원 3·1독립선언기념탑 진입로 양쪽으로 즐비한 동판이 보인다. 독립지사 30명의 발을 본떠 만든 풋프린팅 동판이다. 동판으로 보는 독립지사들의 발은 왠지 보통사람들의 발보다는 더 주름져 보여 마음이 숙연해진다. ‘나는 광복군이다’ ‘조국은 나의 힘! 나는 그 어떤 것보다 조국을 사랑한다’ 등 그들의 신념이 담겨진 문구도 함께 새겨져 고통 받던 삶 속에서도 일제에 굴하지 않은 꿋꿋한 정신을 보여주고 있다.

높다란 담장의 서대분형무소역사관

높다란 담장의 서대분형무소역사관 ⓒ박분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은 독립공원 끝자락에 자리해 있다. 높고도 끝없이 이어지는 붉은 벽돌 건물은 첫눈에 봐도 생경스럽다 못해 공포감마저 자아낸다. 세상과 차단된 듯 높다란 담장은 가슴을 철렁하게 한다. 한 번 들어가면 영영 살아서 나오기 힘들 것 같은 불길함을 수많은 독립운동가들도 느꼈을 텐데. 당시 이곳에 수감되며 갖가지 상념에 잠겼을 그들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옥고를 치른 서대문형무소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옥고를 치른 서대문형무소 ⓒ박분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은 1908년 일제가 대한제국 침략을 본격화 하기위해 ‘경성감옥’이라는 이름으로 지어진 건물이다. 1923년 서대문형무소로 명칭을 바꾸는 동안에도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수감됐다. 도산 안창호 선생, 백범 김구 선생, 만해 한용운 선생이 투옥됐던 곳도 바로 여기 서대문형무소다. 독립운동가들은 1945년 광복을 보지 못하고 이곳에서 옥고를 치르다 순국하기도 했다.  

옛 서대문형무소 건물들

옛 서대문형무소 건물들 ⓒ박분

이후로 1987년까지 ‘서울구치소’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 민주화운동 관련 인사들이 수감됐던 곳이기도 하다. 서울구치소가 경기도로 이전하면서 1998년 이곳은 ‘서대문형무소역사관’으로 새롭게 탄생했다. 일제의 침략에 맞서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독립운동을 하다 순국한 애국지사들의 고귀한 넋을 기리기 위해서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 뒤편으로 돌아가면 백범 김구선생이 수감되었던 12옥사, 유관순열사가 수감됐던 여옥사, 사형장과 감시했던 망루 등 옛 서대문형무소 건물들을 멀찍이서 바라볼 수 있다.  결코 빠져 나갈 수 없는 단단한 형무소 담장과 사형을 집행했던 사형장의 지붕도 보인다. 어디선가 깊은 탄식과 절규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조용하고 평온해보이는 역사적 현장

조용하고 평온해보이는 역사적 현장 ⓒ박분

옛 서대문형무소 건물 주변은 숲으로 둘러싸여 산책하는 시민들이 몇몇이 보일뿐 조용하고 평온하다. 100년이 흐른 지금, 역사적 사건들이 일어난 참혹한 현장을 차분히 돌아다볼 수 있음이 송구스럽고 감사하다.

순국선열들의 숭고한 넋을 기리는 추념탑

순국선열들의 숭고한 넋을 기리는 추념탑 ⓒ박분

감옥이 보이는 울타리 바깥에는 순국선열추념탑이 자리해 있다. 조국의 광복을 위해 많은 항일투사가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고 순국했다.

독립공원을 형성한 취지가 일제강점기에 의병투쟁 3·1만세운동 등 항일투쟁으로 투옥돼 옥고를 치르다 순국한 선열들을 기리기 위함이듯 순국선열추모탑 또한 이들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했다. 언제든 찾아와 독립 운동가들의 숭고한 삶을 기리며 추모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 다행스럽다.

■ 서대문독립공원 안내
○ 주소 : 서울시 서대문구 통일로251 독립공원
○ 교통 : 지하철3호선 독립문역 4,5번출구 도보 3분
○ 관람료 : 무료 (서대문형무소역사관 3,000원)
○ 문의 : 02-3140-8350
*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은 코로나19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2월 25일부터 임시휴관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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