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흔적이 남아 있는 경희궁의 눈물

시민기자 박분

Visit390 Date2020.02.27 12:19

수많은 사람들이 서로 부대끼며 살아가는 서울 도심 속에 언제든 찾아가 조용히 쉴 수 있는 궁궐이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이다. 서울에 모처럼 눈이 내린 이튿날 눈이 녹을세라 궁궐로 발걸음을 옮겼다. 

경희궁은 조선시대 광해군 때 지어진 궁궐로, 1617년(광해군 9)에 짓기 시작하여 3년 뒤인 1620년에 완공됐다. 처음에는 경덕궁으로 불렸고 서쪽에 있는 궁궐이라고 하여 서궐로 불리기도 했다. 경희궁은 16대 임금인 인조에서 25대 철종에 이르기까지 조선 후기 여러 왕들이 정사를 보았던 궁궐이다.

경희궁의 정문인 흥화문 정경

경희궁의 정문인 흥화문 정경 ⓒ박분

경희궁의 정문인 흥화문을 지나다 보면 뭔가 허전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궁궐의 정문 좌우로 마땅히 있어야 할 담장 하나 없이 덩그러니 문만 홀로 서 있기 때문이다. 일제에 의해 처참하게 훼손된 경희궁의 모습은 궁 앞 정문에서부터 시작된다.

흥화문은 경희궁 창건 때 세워졌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인 1932년에 어처구니없게도 일본인 절인 박문사로 옮겨졌다. 1988년 현재의 위치로 이전해 복원하였다.

 숭정문 앞 궁터는 현재 공사 중이다

숭정문 앞 궁터는 현재 공사 중이다 ⓒ박분

흥화문을 지나 넓은 경희궁터로 걸음을 옮겼다. 숭정문 앞 궁터에는 공사 안전망이 둘러져 있고 ‘경희궁지 발굴조사 시행 지역’임을 알리는 안내문도 붙어 있었다. 경희궁지 발굴조사가 아직 진행 중이었다. 1910년, 일제에 나라를 빼앗기면서 조선의 모든 궁궐은 수난을 당한다. 조선왕조의 5대 궁궐 중 경희궁은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피해를 입었다. 100여 채에 이르던 건물 대부분이 헐려나갔고 일부는 엉뚱한 곳으로 팔려나갔다. 회상전, 융복전, 집경당, 흥정당 등 경희궁의 중요 건물들이 흔적도 없이 자취를 잃었다.

숭정문 앞, 넓은 궁터는 바로 자취를 감춘 여러 건물들이 자리했던 곳이다. 서울시에서는 경희궁지에 대한 발굴을 거쳐 숭정전, 자정전 등 주요 전각을 복원하여 공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궁으로서의 면모를 갖추려면 아직도 요원하다.

좌우로 펼쳐진 계단식 행각으로 위엄이 넘쳐나는 숭정전

좌우로 펼쳐진 계단식 행각으로 위엄이 넘쳐나는 숭정전 ⓒ박분

숭정전은 경희궁의 정전으로 궁에서 가장 격이 높은 건물이다. 좌우로 펼쳐진 계단식 행각이 있어 숭정전은 더욱 위엄이 넘쳐 보인다. 정전은 임금이 신하들과 조회를 하거나 궁중 연회, 사신 접대 등 공식 행사가 행해지던 중요한 공간이었다. 경종, 정조, 헌종 등 세 임금이 즉위식을 거행한 곳도 다름 아닌 이곳 경희궁 정전이었다고 전해진다.

질서정연하게 길게 이어진 회랑이 이곳이 얼마나 엄숙한 공간이었음을 보여준다

질서정연하게 길게 이어진 회랑이 이곳이 얼마나 엄숙한 공간이었음을 보여준다 ⓒ박분

그러나 숭정전 또한 일제의 만행을 피해 갈 수 없었다. 1926년 숭정전은 일본 사찰인 조계사에 팔리는 수모를 당하고 우여곡절 끝에 동국대학교에 ‘정각원’이라는 건물로 남았었다. 완전히 소멸되지 않아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현재의 경희궁 숭정전은 새로 복원된 건물이다.

숭정전으로 오르는 계단 중앙으로 봉황이 새겨진 답도가 훤히 보인다. 궁궐의 격을 나타내주는 장식물인 답도는 주로 정전 계단을 장식했다. 숭정전 답도는 2단으로 답도 주위에는 당초문양도 포함이 됐다. 답도 양쪽에 놓인 계단석 끝 소맷돌에는 시비나 선악을 판단한다는 상상의 동물인 해태가 익살스럽게 조각돼 있다.

화려하게 장식되어 임금의 권위를 보여주는 임금의 용상

화려하게 장식되어 임금의 권위를 보여주는 임금의 용상 ⓒ박분

한가롭게 숭정전 내부도 둘러보았다. 일월오봉도와 함께 임금의 용상이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었다. 용상에는 황금빛깔 용이 장식돼 있어 임금의 권위를 보여준다.

청룡과 황룡이 그려진 천장의 단청무늬도 눈이 부실 듯 화려하다

청룡과 황룡이 그려진 천장의 단청무늬도가 화려하다 ⓒ박분

영조의 어진을 보관하는 태령전

영조의 어진을 보관하는 태령전 ⓒ박분

숭전전 뒤편으로 자정전과 태령전이 배치돼 있다. 자정전은 경희궁의 편전으로 임금이 신하들과 일상적인 업무를 보던 곳이다. 태령전은 영조의 어진을 보관하던 곳으로 영조가 승하한 후에는 혼전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현재 이곳에는 영조의 어진이 안치돼 있다. 흔적조차 거의 남아있지 않던 태령전을 서울시에서 ‘서궐도안’에 따라 복원하였다. 태령전 현판은 조선의 명필 한석봉의 글씨를 집자해 만들었다고 한다.

태령전 옆, 큰 바위는 인왕산의 왕기가 서린 바위로 전해지는 ‘서암’으로 불리는 바위이다. 샘을 품고 있는 바위 주변으로 샘물이 흘러들어 물줄기를 이룸이 생기를 주고 있다. 울창한 소나무 숲도 궁을 지키고 있는 것 같아 한결 위로가 된다. 궁궐의 바위와 소나무들도 수난 속에 살아남아 묵묵히 궁궐을 지켜내고 있었다.

   경희궁 주위의 빌딩숲이 궁의 울타리를 대신하고 있는 듯 하다

경희궁 주위의 빌딩숲이 궁의 울타리를 대신하고 있는 듯 하다 ⓒ박분

햇살이 은근하게 스며드는 고궁 처마에 매달린 고드름이 뚝뚝 눈물을 떨군다

햇살이 은근하게 스며드는 고궁 처마에 매달린 고드름이 뚝뚝 눈물을 떨군다 ⓒ박분

경희궁 근처에는 서울역사박물관이 있어 함께 방문하기 좋다

경희궁 근처에는 서울역사박물관이 있어 함께 방문하기 좋다 ⓒ박분

가까이서 궁궐과 도심 빌딩이 마주한 풍경 또한 경희궁만의 매력 포인트이다. 모처럼 내린 눈은 궁궐 뒤뜰 풀숲에도 한 아름 눈을 안겼다. 소담스레 눈 쌓인 풀숲을 포르릉 날며 참새들도 반기는 눈치다. 다른 궁들과 달리 규모가 크지 않은 경희궁은 찾는 발길도 뜸해 조용히 거닐며 산책하기에 좋다. 비록 구경할 게 많지는 않지만 경희궁의 지난 역사를 천천히 반추하며 돌아보면 경희궁이 더욱 애틋하게 느껴진다.

경희궁과 이웃한 서울역사박물관 광장에는 경희궁의 금천교가 복원되어 있다. 궁궐에 흐르는 시냇물을 금천이라 했으니 금천교는 궁궐에 놓인 다리를 가리킨다. 임금과 신하들이 다리를 건너 궁에 들어서면서 마음을 청렴하게 씻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또한 궁궐 초입에 놓여있어 궁궐의 안팎을 나누는 경계이기도 했으니 경희궁이 얼마나 큰 궁궐이었는지 짐작해볼 수 있다. 또한 광장 한복판에는 옛 서울의 지도인 ‘수선전도’가 펼쳐져 있어 살펴보면 좋다. 김정호가 제작한 것으로 알려진 이 지도에는 경희궁도 그려져 있어 경희궁의 권역이 어디까지였는지 가늠해 볼 수 있다. 삼일절을 앞둔 지금, 일제강점기 아픈 역사를 온몸으로 보여주는 도심 속 궁궐을 산책하며 의미를 되새겨본다.

■ 경희궁
※해당 시설은 코로나19 감염증 확산 방지에 따른 조치로 별도 공지 시까지 휴관하오니 참고 바랍니다.
 ○ 위치: 서울 종로구 새문안로 55
○ 관람시간: 09:00~18:00
○ 휴관일: 매주 월요일
○ 입장료: 무료
○ 문의: 02-724-0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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