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년 전 떠난 시인을 기리며" 윤동주문학관 방문기

시민기자 김윤재

발행일 2020.02.18. 14:00

수정일 2020.02.18. 17:04

조회 2,519

1945년 2월 16일 새벽, 낯선 일본의 형무소에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노래하던 한 청년이 세상을 떠났다. 불과 6개월 뒤 이루어진 조국의 독립을 보지 못한 채, 평생을 일제강점기에 살며 스스로를 부끄러워했던 청년, 시인 윤동주. 75번째 윤동주 시인의 기일을 앞두고, 종로구 청운동에 위치한 윤동주문학관을 찾았다.

인왕산 자락에 위치한 윤동주문학관
인왕산 자락에 위치한 윤동주문학관 ⓒ김윤재

윤동주 시인은 연희전문학교(현 연세대학교)에 다니던 시절, 종로구 누상동에서 하숙 생활을 하며 종종 인왕산에 올랐다고 한다. 그 이유로 윤동주문학관은 청운동, 인왕산 자락에 세워졌다.

문학관 건물은 원래 청운아파트를 위한 수도가압장으로 1974년에 지어졌다. 하지만 청운아파트가 구조상 안전하지 않다는 이유로 2005년 9월 철거되면서 2008년 가압장 역시 용도 폐기되었다. 한동안 방치되던 가압장은 청운공원에 '윤동주 시인의 언덕'이 조성되면서 임시문학관을 거쳐 2012년 7월 25일 리모델링을 마치고 정식 윤동주문학관으로 개관했다.

 문학관 정면엔 시인의 얼굴과 시가 새겨져 있다
문학관 정면엔 시인의 얼굴과 시가 새겨져 있다 ⓒ김윤재

문학관 문을 열고 오른쪽으로 들어서면 바로 제1전시실 시인채가 나온다. 이곳엔 윤동주 시인의 일생을 시간 순서로 배열한 9개의 전시대가 있다. 윤동주 시인의 육필원고는 물론, 백석의 시집 <사슴> 필사본과 정지용 시 <태극선>에 써 놓은 ‘생활의 협박장이다’라는 짧은 촌평, 그리고 창씨개명의 흔적이 남은 연희전문학교 학적부와 일본에서 받은 판결문 등이 전시되어 있어 인간 윤동주의 삶을 생각하게 한다.

반대편 벽엔 윤동주 시인이 즐겨보던 책들의 표지가 걸려 있다. 그 아래엔 소장하던 책 안쪽에 해놓았던 서명 모음이 있고, 윤동주 시인이 신문, 잡지에 실린 자신의 시를 스크랩해 놓은 기록 역시 볼 수 있다.

전시대와 벽 사이, 제1전시실 중앙엔 시인의 고향 집에서 가져온 목판 우물이 있다. <자화상>이 이 우물의 기억에서 비롯된 시라면, 시인은 이 목판 우물 속에서 어떤 사나이의 얼굴을 보았을까 궁금했다.

목판 우물을 뒤로 하고 제1전시실 끝에 두꺼운 철문을 열고 나서면 더 큰 우물이 펼쳐진다. <자화상>의 우물을 모티브로, 가압장 물탱크의 천장을 열어 만든 제2전시실 열린 우물이다.

물때가 고스란히 남은 제2전시실 열린 우물과 하늘
물때가 고스란히 남은 제2전시실 열린 우물과 하늘 ⓒ김윤재

벽엔 물의 흔적이 지층처럼 남아있고, 그 위로 앙상한 나뭇가지와 하늘이 보인다. 자화상에서 보았던 우물 속 하늘일까, 부끄럼이 없기를 소망하던 서시의 하늘일까. 어쩌면 시인은 고개만 들면 보이는 하늘을 두고 사방이 막힌 우물 안에 갇힌 기분은 아니었을까 싶다.

다시 전시실 끝에 철문을 열면 마지막 제3전시실 닫힌 우물이 나온다. 이곳에선 윤동주 시인이 일제강점기를 살며 느꼈을 답답하고 숨 막히는 기분을 더 절절히 느낄 수 있다. 열린 우물과 달리 천장이 그대로 있기에, 문을 닫으면 하늘은커녕 빛조차 보기 힘들다. 이보다 작고 엄혹했을 형무소에서 시인은 어떤 시간을 보냈을까.

형무소를 떠올리게 하는 제3전시실 닫힌 우물
형무소를 떠올리게 하는 제3전시실 닫힌 우물 ⓒ김윤재

제3전시실에선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반까지 매 15분 간격으로 한 번씩 윤동주 시인의 일생과 시 세계를 담은 영상물을 상영한다. 11분 가량의 짧은 영상을 본 뒤 철문을 열고 나와 하늘을 보니, 형무소에서 세상을 떠나 조국의 독립을 보지 못했던 시인의 삶이 더 안타깝게 느껴졌다.

 서울이 내려다보이는 시인의 언덕
서울이 내려다보이는 시인의 언덕 ⓒ김윤재

문학관을 나와 바로 옆 계단을 오르면 '별뜨락'이라는 카페가 있다. 계단을 더 오르면 오른편 너머로 창의문이 보이고, 왼편 오르막을 오르면 윤동주 시인을 기려 만든 ‘시인의 언덕’이 나온다. 윤동주 시인이 산책하던 길이라던데, 시인은 이곳에서 서울을 내려다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시인이 떠난 자리에 덩그러니 남은 그의 시비를 보며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는' 삶이란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했다.

 윤동주 시인을 대표하는 서시가 새겨진 시비
윤동주 시인을 대표하는 서시가 새겨진 시비 ⓒ김윤재

연세대학교는 윤동주 시인이 생활했던 기숙사 건물 핀슨관 전체를 윤동주기념관으로 새롭게 개관한다. 오는 3월 일반에 공개하며 다채로운 문화행사도 선보일 예정이라고 한다.
75년 전 세상을 떠난 시인을 기리며, 그의 흔적이 남은 공간들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 다가오는 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시인이 사랑했던 그 하나하나를 새롭게 느끼는 경험이 될 수 있을 듯하다.

■ 윤동주문학관
○ 위치 :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의문로 119(청운동)
○ 교통 : 버스 1020, 7022, 7212번 이용 '자하문 고개, 윤동주 문학관역' 하차
○ 관람시간 : 화요일~일요일 10:00~18:00
○ 휴관일 : 매주 월요일, 1월 1일, 설날·추석 당일
○ 입장료 : 무료
○ 홈페이지 : https://www.jfac.or.kr/site/main/content/yoondj01
○ 문의 : 02-2148-4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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