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계 N잡러 유현준, 서울을 이야기하다

시민기자 민정기

발행일 2020.02.13. 13:26

수정일 2020.02.24. 17:18

조회 1,970

‘교토삼굴(狡兎三窟)’, ‘꾀 많은 토끼는 굴을 세 개 만든다’라는 말이다. ‘위기가 발생하기 전에 미리 대비해야 한다’라는 뜻의 사자성어다. 현대사회는 점점 더 불확실해지고 복잡해지고 있으며, 그에 따라 직업 시장도 크게 요동치고 있다. 4차 산업혁명과 AI의 발달로 인해 산업구조는 상당한 변화를 겪고 있고, 노동시장의 불확실성도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 발맞춰서 다양한 능력을 개발하며 변화를 대비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소위 말하는 ‘N잡러’들이 이들이다.

‘N잡러’란 2개 이상의 복수를 뜻하는 ‘N’과 직업을 뜻하는 ‘job’, 사람을 뜻하는 ‘~러(er)’가 합쳐진 신조어로 ‘여러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는 뜻이다. 본업 외에도 여러 부업과 취미활동을 즐기며 시대 변화에 언제든 대응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이들을 말한다. 현대사회에는 이미 성공적인 ‘N잡러’들이 많은데, 그중 건축계의 대표적인 ‘N잡러’ 유현준 건축가를 만나보았다.

웃고 있는 유현준 건축가의 모습

웃고 있는 유현준 건축가의 모습 ©민정기

“요즘 사람들을 하나의 직업으로 정의할 수 있을까요”

‘유현준 건축사 사무소’ 대표 건축가이자 홍익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베스트셀러 작가인 유현준 건축가는 ‘알쓸신잡’, ‘양식의 양식’ 등 방송에서도 종횡무진 활약하고 있다. 그는 스스로를 ‘건축가’라는 직업이 가지는 고전적인 정의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저는 직업란에 하나의 직업만을 적으라고 하는 것은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이라고 생각해요. 요즘 사람들을 하나의 직업으로 정의할 수 있을까요? 정의가 내려지기 어려울수록 그 사람의 삶이 성공적인 삶이라고 생각해요. 바야흐로 멀티플레이어의 시대가 온 것이죠. 저는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가고 싶어요. 다양한 일들을 하고 있지만, 공통분모는 ‘건축’을 통해 사람들과 교감하고 선한 영향력을 풍기고 싶다는 것에 있어요.”

유현준 건축가는 tvN 프로그램 '알쓸신잡'에서 '셜록'이라는 별명으로 활동했다

유현준 건축가는 tvN 프로그램 '알쓸신잡'에서 '셜록'이라는 별명으로 활동했다 ©민정기

창문없는 고시원, 주거공간 중 가장 안타까운 공간  

유현준 건축가에게 지금의 유명세를 가져다준 건 tvN 예능 ‘알쓸신잡’에서의 신선하고 솔직한 발언과 그가 쓴 책에서 보여준 ‘남다른 사고방식’이다. 이번 인터뷰에서도 그의 새로운 사고방식은 색다른 재미와 충격을 주었다.

“우리나라에 나쁜 건축물들이 많지만, 그중 ‘고시원’이 제일 안타까운 공간이에요. 언제부터 창문이 없는 집이 주거공간으로 인정이 되었나요? 이건 인간의 기본권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저는 반지하도 허용하면 안 된다고 봐요. 그럼 누군가는 ‘그렇게 되면 많은 사람들이 길거리에 나가서 살아야 한다’라고 말하는데, 저는 생각이 달라요.

최근에 온라인 커머셜(상업)이 활성화되고 있기에 오프라인에서 많은 상업공간들이 비고 있어요. 도시구조가 총체적인 재배치 상태가 되고 있는 거죠. 도시의 연면적이 100이라고 생각하면, 사무실을 포함한 상업공간들이 20~30 정도 되는데, 비어 있는 상업공간을 주거공간으로 용도변경을 하고 이를 활용하면 돼요. 건물주가 싫다고 한다면 높이 제한이나 층수 제한을 풀어줘서라도 하게 만들어야 해요. 건축법규란 더 좋은 도시를 만들기 위해서 존재하는데, 법이 그걸 막는다면 법을 바꿔서라도 진행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유현준 교수는 tvN 프로그램 '알쓸신잡'에서 '셜록'이라는 별명으로 활동했다

열정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유현준 건축가의 모습 ©민정기

청년들이 자신의 주거공간을 가질 수 있도록 제도가 뒷받침 되어야

현재 한국 사회의 청년들은 많은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다. 저성장과 낮은 취업률,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노력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청년들에게 주어지는 선택지는 줄어만 가고 있다. 그중 주거문제도 청년들에게 많은 어려움을 주고 있다. 이에 대한 유현준 건축가의 생각도 들어보았다.

“청년들의 주거문제는 심각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어떻게든 빨리 청년들에게 자신만의 주거공간을 소유하게 해주고 싶어요. 청년 주거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 중 하나로 역세권에 임대주택과 원룸을 배치해서 살게 해주는데 이는 임시방편일 뿐이라고 생각해요. 대한민국 사회가 근대화에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아파트를 많이 지어서, 많은 사람들이 아파트를 살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에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동산 자본은 통화량이 늘면서 그 가치가 올라가는데, 임대만 시키는 건 그 차이에서 나오는 이익을 청년들이 가질 수 없도록 만드는 거예요. 하루빨리 청년들이 자신만의 주거공간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 공동체와 지역사회를 발전시킨다고 생각해요.”

유현준 건축가의 사무실에 있는 그를 닮은 인형

유현준 건축가의 사무실에 있는 그를 닮은 인형 ©민정기

“아이들에게는 도시를 탐험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해요”

유현준 건축가는 저서인 ‘어디서 살 것인가’에서 ‘학교 건축은 교도소’라며 지금의 학교 공간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학생들이 공간으로부터 제약받은 창의성을 회복하기 위한 활동에는 무엇이 있을지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아이들에게는 도시를 탐험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해요. 저도 고등학교 때 학교-집-독서실의 반복적인 생활패턴을 가졌었지만, 그 시기에 한강 다리나 강북의 뒷골목도 가보면서 저희 동네와는 다른 분위기를 느끼고 새로운 자극을 받았었어요. 지적인 자극이 텍스트로도 얻을 수 있지만, 새로운 환경이나 공간을 통한 창의적인 자극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아이들에게 좋은 공간이나 새로운 환경을 탐험할 수 있는 시간을 준다면 엄청난 자극을 줄 거예요.”

강연, 건축 프로그램, 방송 등에서 건축을 이야기하고 있는 유현준 건축가

강연, 건축 프로그램, 방송 등에서 건축을 이야기하고 있는 유현준 건축가 ©민정기

유현준 건축가는 국민들이 건축을 보는 안목이 높아져야 한다고 말한다. 국민들이 건축을 보는 안목이 높아지면, 그만큼 좋은 공간에 대한 수요가 늘어날 것이고, 이는 국민들의 삶의 질을 높여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꿈은 건축계의 노벨상인 ‘프리츠커상’을 받는 것이라고 한다. 국민들에게 ‘건축가’란 직업과 ‘건축’에 대한 인식을 높인 그가 세계적인 건축가로 발돋움하여 전세계에 ‘한국의 건축가’와 ‘한국의 건축’에 대해 널리 알릴 날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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