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현준 건축가 “알아두면 쓸모있는 서울공간 이야기”

대학생기자 박서희

Visit870 Date2020.02.13 14:04

인터뷰를 하고 있는 서울시민기자단과 유현준 서울홍보대사
인터뷰를 하고 있는 서울시민기자와 유현준 건축가

“제가 건축가라는 고전적인 직업 정의에 부합하는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저는 남들이 안 간 길을 가고 싶거든요. 지금 강연도 하고, 글도 쓰고, 방송도 하면서 나를 표현하고 있지만  ‘건축을 이야기한다’는 공통분모는 있어요. 건축을 통해서 나를 표현하고, 사람들과 교감하고, 세상을 보다 좋게 만드는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어요. 중심이 잡혔기 때문에 다른 일을 하더라도 선순환이 되는 것 같아요. 인터뷰를 하면서 하는 말이 책을 쓸 때 도움이 되기도 하고, 작품에 영감을 주기도 하고요. 보편화된 단어 하나로 자신의 일을 정의 내리기가 어려울수록 그 사람의 삶이 성공적이라고 생각해요.

2월 5일 서울 시민기자들은 건축가 유현준을 만났다. 홍익대학교 교수, 건축사사무소 대표, TV프로그램 출연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는데, 그는 ‘나는 표현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학창시절엔 미술로 자신을 표현했고, 대학에서는 건축설계, 지금은 다양한 매체를 통해 사람들과 만나고 있다. 워낙 유명한 분이라 실제 모습은 어떨지 궁금했다. 어떤 질문이라도 진지하게 듣고, 솔직하게 자신의 생각을 얘기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훌륭한 건축가가 되려면 다양한 경험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독서, 여행 등 다양한 활동 중에 어떤 활동이 가장 도움이 될지 궁금합니다.

그건 사람마다 다른 것 같아요. 어떤 사람은 게임을 하거나 혼자 골방에서 만화만 봐도 영감을 얻을 수 있어요. 저는 100명의 건축가가 있다면 100가지 색깔을 가진 서로 다른 건축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려면 각자 영감을 받는 자기만의 방법이 있어야 하죠. 훌륭한 건축가가 되기 위해 딱 한 가지 방법만 있는 게 아니에요. 자기만의 길을 찾는 게 중요하고, 그건 그냥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 되는 거예요. 제가 건축학과를 선택한 계기는 특별한 거 없어요. 고등학교 3학년 때 좋아하는 과목을 고르고, 싫어하는 과목을 빼니 남는 게 건축과밖에 없었어요. 외우는 걸 싫어해서 문과를 안 갔고, 수학이 싫어서 공대를 제외했고, 결국 남는 건 건축과밖에 없었죠. 제가 제일 좋아하는 과목이 미술이었고 미술, 지리, 지구과학, 물리 4개 과목만 좋아했거든요. 딱 맞는 게 건축과였어요.

강남구 논현동에 있는 유현준 건축사사무소 전경
강남구 논현동에 있는 유현준건축사사무소 전경 ©박서희

처음 건축가 일을 시작할 때 임금이 적다고 알고 있습니다. 진로를 정할 때 금전적인 고민은 안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대학교 2학년 때 선배가 ‘부모님이 부자가 아니면 건축하지 마’라고 했어요. 그때는 그 이야기가 뭔지 몰랐어요. 건축가가 얼마나 배고픈 직업인지 몰랐던 거죠. 언제 처음 깨달았느냐면 대학원을 마치고 첫 직장을 얻었는데 이렇게 월급을 적게 줄 수도 있구나 싶었어요. 그때 갈등이 많았죠. 제 친구들 중 그때 건축계를 떠난 사람이 많아요.

그런데 저는 어느 시점에서 결정을 내렸어요. 건축을 계속하면 좋은 점이 월드클래스를 노릴 수 있다는 거예요. 언어의 장벽이 없으니까 잘 되면 세계적인 건축가가 될 수 있는 거죠. 대한민국에서 세계적인 사람이 되는 방법은 건축가로 성공하는 거라고 생각하고 되던 안 되던 목표를 세웠어요. 그때는 국제 아이디어 공모전에 당선되고 용기도 얻어서 ‘적게 벌어도 이 일을 하면 재미있겠다. 결혼만 안 하면 되지’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저희 아내가 돈을 적게 벌어도 살 수 있는 검소한 분이시더라고요. ‘세상에 예쁘고 착한데 검소한 사람도 있네!’하고요(웃음). 금전에 관한 위기는 그렇게 넘겼죠. 

세미나실 한쪽에 자리한 책장에는 수많은 책과 상장이 놓여 있다
세미나실 한쪽에 자리한 책장에는 수많은 책과 상장이 놓여 있다 ©박서희

현재는 건축 관련 상도 받으시고 다양한 분야에서 성공을 거두셨습니다. 이렇게 잘 될 거라고 예상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사실 제 성에는 안 차요. 제가 젊었을 때 ‘정말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수준은 프리츠커상을 받거나 그 후보에 올라가는 건축가가 되는 거였어요. 사실은 안도 다다오(Ando Tadao) 같은 세계적인 건축가가 되고 싶죠. 그런 목표였기 때문에 현재 건축가로서 대단한 성취를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그동안 많은 프로젝트를 하셨는데 그중 가장 애착이 가는 건물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섣불리 말하기가 힘든 것 같아요. 어떤 건 디자인은 마음에 드는데 시공이 별로고, 어떤 건 사진으로 보면 괜찮은데 직접 가보면 별로고. 평균적으로 괜찮다고 느껴지는 작품은 2개가 있는데, 첫 번째는 거제에 있는 ‘머그학동’이에요. 일거리가 없다가 하게 된 작품인데 주요 건축상을 받기도 했고, 9개월 넘게 설계할 정도로 고생이 많았던 작품이죠. 두 번째는 세종시에 있는 ‘산성교회’에요. ‘더 잘할 수 있었을 텐데’하는 아쉬움은 남지만 처음으로 저희가 설계한 지하주차장이 들어간 건물이거든요(웃음). 지금은 많이 바뀌었지만 사실 대학교에 다닐 때 꿈은 멋있는 교회 건축을 하는 거였어요. 신도가 아닌 사람도 들어가서 인생을 되짚고 명상할 수 있는, 인간의 존재와 가치를 향상시킬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어렸을 때 꿈을 어느 정도 이룬 기회였죠. 

서울의 좋은 건축물과 나쁜 건축물은 무엇인가요?

‘내가 설계했어도 저렇게 했을 것 같다’ 생각하는 건물은 아모레퍼시픽 사옥이에요. 한옥 같은 느낌으로 설계해 군데군데 마당이 있어요. 아모레퍼시픽 사옥은 직원들끼리의 공동체를 생각한 건물이에요. 일반적으로 회사원들이 쉴 수 있는 곳은 옥상인데 그런 장소를 곳곳에 배치하고, 비상계단이 아닌 다른 계단을 만들어 층간의 소통이 있게 했어요. 탕비실도 아일랜드 키친이 되게 만들고 좋은 위치에 배치했고요.

제일 나쁜 건축물은 고시원이라고 생각해요. 언제부터 창문이 없이 집이 주거로 인정이 됐는지 모르겠어요. 이건 인간의 기본권 중 하나에요. 저는 반지하도 안된다고 생각해요. 도시 전체로 봤을 때 전자상거래가 성장함에 따라 오프라인의 많은 상업 공간이 비거든요. 지금 도시 전체가 총체적인 재배치 상태에요. 그걸 주거로 용도변경하고, 용적률이나 층수 제한을 풀어서라도 반지하를 없앴으면 좋겠어요. 

여러 서적과 강연, 인터뷰에서 광장과 벤치를 강조하시는데 그 이유는요?

한국인은 ‘집은 남향 배치’라고 생각하죠. 저는 마당과 광장, 벤치에 대한 국민의 의견 일치가 그 정도 수준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마당과 광장, 벤치처럼 무료로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익명성의 상태에서 소셜 믹스(Social Mix)가 일어나요. 사회적, 경제적 배경이 다른 사람들이 섞이려면 익명성의 상태에서 섞이게 해야 돼요. 그런데 현재 사람들이 앉아서 쉴 수 있는 곳이 커피숍밖에 없는 데다가 경제 상황에 따라 들어가는 커피숍이 달라요. 돈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이 같은 추억을 가질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 해요.   

2018년 12월, 유현준 건축가는 서울홍보대사로 위촉되었다
2018년 12월, 유현준 건축가는 서울홍보대사로 위촉되었다 ©박서희

현재 청년 공간들 중 관심 있게 보고 계시는 곳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관심 있게 보고 있는 건 힙지로(영어 ‘Hip’과 ‘을지로’의 합성어)에요. 청년들이 적은 돈에 자기들만의 공간을 찾아서 만들고 자신을 표현하는 거죠. 과거에는 내가 소유한 공간으로 표현했다면 힙지로는 특이한 방법으로 표현하거든요. 제게 힙지로는 정말 독특한 경험이었어요. 을지로에 딱 갔는데 카페가 어디 있는지 모르겠고, 힘들게 찾아서 4층까지 걸어 올라가니까 거기 있더라고요. 마치 ‘해리포터’에 나오는 9와 3/4 승강장처럼 아는 사람만 아는 거예요. SNS를 통해 정보를 얻어야 한다는 접근의 허들을 세워 자기들만의 공간을 만드는 거죠. 청년들이 도시 공간을 재조직하고 도시의 위계를 바꾸는 거예요.

홍익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계신데요. 건축대학에서 우수한 성적이나 성과를 보여준 학생들의 공통점은 무엇이며, 고등학교에 다닐 때 자신의 적성이 건축학 전공에 맞는지를 어떻게 알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건축대학에서 우수한 성적이나 성과를 보여준 학생들의 공통점은 자존심을 걸고 한다는 거예요. 그 학생들은 작품을 제출할 때 성적을 받기 위해서 하지 않아요. 딱 보여요(웃음). 성적 얻으려고 하는지, 진짜 자기 자존심을 걸고 하는지. 시키지 않은 일도 해오는 학생들이 잘하는 것 같아요. 

사인하고 있는 유현준 서울홍보대사
사인하고 있는 유현준 서울시홍보대사 ©박서희

‘이게 딱 건축가다’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정리정돈을 잘하는 성격이면 좋겠어요. 건축이라는 건 관계를 정리하는 일이거든요. 건물 하나를 지으면 동선과 이면, 주변의 복잡한 관계 등을 재정립해야 돼요. 그런데 책상 하나 정리하지 못하면 건축하기 어렵거든요. 책상 서랍이든 뭐든 정리를 하려면 자기만의 규칙을 만들어야 하잖아요. 건축이 바로 그거예요. 건축가의 가치관에 따라 주변과의 관계 및 순서를 정하는 거예요. 그런 일을 잘하고 즐겨 하는 친구들이 건축가를 잘할 거라 생각해요. 저는 학창시절에 강박적으로 정리를 했거든요(웃음). 정리하면서 생각도 정리되고 스트레스도 푸는 거였어요. 물론 다니엘 리베스킨트(Daniel Libeskind) 같은 해체주의 건축가는 정리를 좋아하지 않죠. 하지만 기본적으로 정리 정돈을 잘 하고 자기의 환경을 배치할 줄 안다면 도시를 만들 때 왜 여기에 공원을, 건물을 놓아야 하는지 생각할 수도 있어요. 일맥상통한다고 봐요.

저서 ‘어디서 살 것인가’에서 아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스머프 마을 같은 학교’를 제안하셨지만 우리나라에는 아직 그런 학교가 부족한 것 같습니다. 현재 상황에서 학생들이 창의성을 회복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활동을 추천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지금의 상황에서 그나마 할 수 있는 방법은 시간을 갖고서 도시를 탐험하는 거예요. 서울이란 도시는 워낙 크기 때문에 자신이 사는 동네와 다른 분위기의 공간을 많이 찾을 수 있어요. 지적인 자극을 책에서도 얻을 수 있지만 새로운 공간과 환경에 처해서도 얻을 수 있거든요. 학생 때 시간이 된다면 한 달에 한 번은 낯선 시내버스를 타고 낯선 동네에 가서 경험하면 좋겠어요. 

도시 탐험, 내가 사는 도시를 낯설게 보고 생각을 정리하는 것. 시간이 날 때 한 번쯤 서울이라는 도시를 둘러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과 방송으로 만났던 건축가를 직접 보고 이야기도 들어보니, 한 마디 한마디가 새삼 의미있게 다가왔다.
인터뷰를 마치고 서울시민기자들은 개인적으로 소유한 유현준 홍보대사의 책에 사인을 받았다. ‘학교 건축과 도시를 바꿔주세요’라는 사인 문구가 한층 진정성 있게 느껴졌다.  날은 추웠지만 개인적으로는 잊지못할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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